1월 24일(목)

니제르 강에 있는 가장 큰 항구 중에 하나로 인 몹티(Mopti)는 바니강과 니제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있으며 말리왕국 시절 황금, 소금, 상아의 집산지로 발전했으며 현대에도 무역의 거점인 도시이다.  

강변으로 나가니 생기가 넘친다. 아낙네들이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며 수많은 카누가 유유히 떠다니고 있으며 시내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선착장에는 붉은색 항아리들이 선적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대리석 같은 소금덩어리들이 꽤 보인다.

숙소에서부터 수많은 삐끼들이 접근을 하는데 자신은 좋은 가이드라고 말하며 통북투나 도곤 컨트리 관한 가격을 제시한다.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로부터 꽤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도곤컨트리로 가는 차편은 아침에만 있으며 통북투로 가는 차편은 25000CFA를 부른다.

통북투로 가는 배편은 론니 정보에 의하면 10명이 타는 사설 선박에 1인당 45000CFA를 내고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무슨 수로 10명을 모으나?

선착장에 가니 ‘너 통북투로 가지 않을래?’라고 말하며 삐끼가 한명 붙는다.

혹시나 해서 ‘15000CFA에 갈 수 있으면 갈게’라고 말하니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뭐? 정말?

대신 오늘 출발하는 배라고 이야기 한다. 이곳에는 거의 매일 통북투로 향하는 화물선이 있으며 2박 3일이 걸린다고 이야기한다.

순간적으로 어제 피곤한 것도 잊었는지 어느새 오늘 통북투로 가는 배에 타는 것이 목표가 변했다.

돌아와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서는데 호텔에 죽치고 있는 삐끼가 어디 가는지 묻기에 15000CFA에 통북투로 간다고 이야기했다.

‘15000CFA는 말도 안 되는 가격’라며 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확인하자고 말한다.

선착장에 가니 삐끼는 매표원에게 마치 자신의 손님을 가로챘다는 듯 항의를 한 뒤 나보고 20000CFA에 표를 끊으라고 이야기 한다.

‘싫어. 아까 약속한 그 애와 거래할거야. 왜 웃돈 주면서 너와 거래하기 싫어’
몇 번 강압적으로 이야기하던 청년은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자고 이야기 한다. 선착장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니 그럼 이곳까지 오토바이로 태워다 준 값을 내라고 한다.

참내~ 다시 걸어오고 말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그 청년의 얼굴도 안쳐다보고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뒤편으로 ‘기름 값은 줘야지.’라는 말이 귓가에 울린다. 정말 뻔뻔한 삐끼다.

강변을 걷는데 또 다른 삐끼가 붙는다.

‘어이 My Friend. 내가 통북투로 가는 배 정말 스페셜하게 싼 가격에 해 줄게.’ 라고 말하며 다가온다.

‘얼만데?’

‘놀라지마.. 정말 스페셜 가격 45000CFA'

쇼를 한다. ㅡ.ㅡ

'Go Out(저리가)‘

이 분위기 파악 못하는 친구는

‘오 이런~ 이 가격도 마음에 안 들어 그럼 40000CFA에 해주지.'

‘(버럭)Go Out(저리가)‘

외면하고 걸으니

‘그래. 그럼 이번에는 보기만 해. 정말 스페셜 가격 30000’

화를 버럭 내고 나서야 떨어진다.

선착장에 가니 약속한 삐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무슨 일 있었어? 네가 싸운 가이드는 웃돈을 챙기려고 한 거야. 내 말을 믿어’

‘뭐 상관없어. 15000CFA에 통북투로 가는 것 맞지?’

결국 15000CFA와 식비 2500CFA를 추가해 17500CFA에 합의를 봤다. 표를 끊자 삐끼가 부탁을 한다.

‘배에는 서양 친구 두병이 탔는데 그 애들은 35000CFA를 내고 탔거든, 그러니 절대 17500CFA를 내고 탔다고 이야기 하면 안 돼~.’

배에 오르니 스위스인 커플로 모니카와 파비앙이다. 인사를 건네자마자 멋지게 생긴 파비앙이 얼마를 주고 탔는지 묻는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주고 싶었으나 삐끼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응. 나는 배가 출발하고 나서 흥정하기로 했어.’

‘그래? 우리는 50000CFA에서 35000CFA으로 깎았거든. 더 깎을 수 있을 거야.’

아.. 불쌍한 중생이여.

화물선 시설은 물론 형편이 없다. 바닥은 양철 철판으로 되어 있으며 바닥은 숯가루로 인해 시커멓다. 그냥 맨발로 편하게 다니는 것이 좋다.

화장실은 배 뒤편에다 구멍 하나 뚫어 놓은 게 전부인데 흔들리는 배에서 조준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냥 큰 것은 2박 3일 동안 참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3시에 출발한다더니 역시나 오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배에 누워 주변 강변을 관찰했다. 그물 낚시를 하는 할아버지와 양을 씻겨주는 청년, 빨개 벗고 목욕 하는 아이들.. 정겨운 풍경이다.

오후 5시에 배가 출발하나 싶었는데 한 사람이 급히 배를 잡는다.

‘왜 발목 잡는 거야?’

처음에는 승질이 났지만 이내 환희로 변했다. 매트리스를 추가로 실었는데 깔고 앉으라고 승객들에게도 하나씩 나눠준다. 덕분에 양철판이 아닌 매트리스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

결국 6시간을 기다린 오후 6시에 배가 출발했다. 출발 직전 멋진 일몰이 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새들의 군무도 보너스로 보인다. 사진을 찍으니 예술 작품이 나온다.

파비앙이 계속해서 가격을 물어보는 바람에 스위스인 여행자들에게 결국 배에 탄 요금을 알려줬다. 충격이 큰 듯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저녁 식사가 나왔다. 밥에 생선 반찬이 나올 것이라는 삐끼의 설명과 달리(뭐 믿지도 않았지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밥이 담겨 있고 소스가 약간 친 것이 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의 개밥수준이라 생각하지만 밑바닥 여행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뭐 먹을 만 했다.

저녁이 되자 꽤 쌀쌀해진다. 준비해온 것은 얇디 얇은 항공기 담요뿐인데.. 걱정이 되었지만 할 수 없다. 그냥 잠드는 수밖에..


1월 25일(금)

  니제르강(4180Km)은 나일강, 콩고강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긴 강으로 이 강 유역에는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살고 있다.

  18~19세기 유럽인들은 서아프리카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을 가나, 말리 제국이 번영을 누릴 때 아랍인들에 의해 남겨진 기록을 근거해 믿었다. 때문에 니제르강과 통북투는 유럽인 탐험가에게는 낭만적인 야심의 대상이 되었다.

포르투갈이 15세기에 엘미나에 성채를 쌓기 시작한 후 해안지역은 일찍이 유럽 세력이 정착을 했지만 서아프리카 특유의 풍토병과 정글 환경은 유럽인의 내륙 탐험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니제르강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지 못했으며 했다.  

1793년 영국의 아프리카 협회는 니제르강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1788년부터 1793년간 세 탐험대를 내륙으로 파견하지만 모두 실패를 했다.

협회는 네 번째 시도로 뭉고 파크를 대장으로 1795년 파견을 해서 세구의 니제르강에 도착한다.

파크는 1805년에 두 번째 탐험대를 조직했는데 목수, 항해사 및 군인 등 39명의 다른 유럽인과 함께 탐험에 나섰지만 바마코에 있는 니제르강에 도착했을 때 10명을 제외하고 모두 열병으로 사망한다.

파크와 네명의 생존자들은 카누로 니제르강을 내려갔지만 급류로 인해 전원 익사했다.

1822년 월터 우드니 박사와 휴 클레퍼톤 중위로 구성된 탐험대가 파견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아랍 무역상들이 개척 해 놓은 지금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사하라를 횡단하여 니제르강을 향한다. 우드니 박사는 도중에 병사했으나 클리퍼톤은 최초로 대교역 도시인 카노(지금의 나이지리아)에 도착했지만 당시 훌라니 제국의 군주 벨로의 반대로 니제르강 탐험은 하지 못하고 영국으로 귀환한다. .

클리퍼톤은 두 번째 탐험대를 조직해서 탐험을 시도했지만 1825년 말 부사의 니제르강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다  사망을 하고 클레퍼톤과 젊은 종인 리차드 랜더만 살아남았다.

클리퍼톤 역시 1826년 4월 사망을 하고 리차드 랜더만 영국으로 돌아온다.

탐험의 욕구는 죽음의 위협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가보다. 랜더는 그의 형 존 랜더와 함께 1830년 6월 부사에서 카누를 띄운 후 최초로 니제르강 하구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뭉고 파크, 클래퍼톤 및 덴함, 그리고 랜더 형제들의 노력의 결과 니제르강의 정체가 밝혀지고 서아프리카 지리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그 이후에도 니제르강은 유럽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는데 1832~4년 리버풀의 상인인 맥그리거 레어드는 두척의 증기선에 리처드 랜더를 안내인으로 한 탐험대를 파견했고, 1841~2년 세척의 증기선이 파견이 되었지만 모두 실패를 했다. 48명중 랜더를 포함한 38명이 사망했다.

비크로프트는 니제르강 상류까지 여행에 성공 했고, 곧 영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탐험대를 지위하기로 했지만 탐험대가 출발하기로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해군 군의관인 바이키에 의해 지휘되었다.

바이키의 탐험대는 1854년 니제르강 및 베뉘강을 탐사하여 차다강과 베뉘강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무엇보다 말라리아에 대한 적절한 대처로 대원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니제르강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탐험가들이 목숨을 바치며 갖은 고생을 하였는데 명성답게 나 역시 편하게 여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간밤에 자는데 침낭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추웠다. 견디다 못해 매트리스 하나를 빼고 덮었지만 추위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밤을 새다 시피하며 아침을 기다렸다. 그 최악의 와중에도 한 가지 다행인건 매트리스가 있다는 것이다. 매트리스마저 없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전 6시 20분 경..

날씨가 춥기는 해도 일출하나는 멋지다. 담요를 두른 채 멋지게 떠오르는 태양을 봐라봤다.

오늘 같은 추위를 하루 더 겪어야 된다는 생각에 막막한 기분이다. 뭐~ 어떻게 되겠지.

해가 뜨자마자 배에 시동이 걸리고 곧 출발한다.    

물살을 가르며 니제르강을 헤쳐 나가는 것을 상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배가 모래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건기라 수위가 낮은 것도 원인이지만 화물을 지나치게 무식할 정도로 많이 들여놓은 것이 더 큰 원인이다.  

오전 내내 배를 꺼내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 결국 정오쯤 주변의 나룻배를 불러짐을 분산시킨 다음에야 겨우 배를 꺼낼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출발!!

...

젠장 얼마 못가 모래에 또 걸린다.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오후 2시 반이 되어야 제대로 출발했다.

배에서 바라보는 니제르강변의 모습은 제법 멋지다. 그물 낚시를 하는 어부부터 강변에서 설거지와 빨래를 하는 아낙과 배가 지나가자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풍경이 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

강변의 대부분의 집은 움막집이나 흙집으로 되어 있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니제르강은 모든 것을 안겨주는 소중한 터전이다.

식사는 예외 없이 소스나 말린 생선을 약간 섞은 밥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식사는 제시간에 제깍 나온다. 난 먹을 만하지만 스위스인 여행자인 파비앙과 모니카는 영 적응이 되지 않는가보다. 이들에게 조각 치즈를 건네니 꽤 고마워한다.

  내 바로 옆에 앉은 총각 아미드는 한글에 관심이 많다. 한글로 이름을 적어주니 아예 공책을 가져와 온 가족의 이름을 다 한글로 적어달라고 부탁한다.

  아미드로서는 알파벳 이외의 글자가 무척 신기한가보다. 서아프리카는 언어가 5000개가 넘지만 독자적인 문자가 없고 알파벳만 사용한다.

독자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아랍인들에 의해 잠깐 소개된 역사가 이곳 역사의 전부이고 다른 역사는 망각의 그늘 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그에 비해 한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아미드에게 알파벳 옆에 한글을 적어주고 그대로 붙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파비앙 역시 흥미로운지 설명해달라고 청한다.

‘파비앙. 한글은 꽤 쉬워. F인 ‘ㅍ’에 A인 ‘ㅏ’를 그대로 붙이면 되. 비는 B링 ‘ㅂ’에 Y인 ‘ㅣ’를 붙이면 되고, 모음 뒤에 자음이 또 오면 밑에다 붙이면 된단다.’

아미드와 파비앙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나 스스로도 한글이 정말 쉬운 글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니~ 한문과 일본의 가나는 불가능 할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한글을 어린 시절에는 영어 보다는 촌스럽다고 느꼈지만 여행을 하면서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자랑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이 될 무렵 배는 또 모래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내일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모래에 갇히면 선원들이 차가운 물에 뛰어 들어 온 힘을 다해 배를 꺼내려고 노력한다. 나야 한번만 여행하면 되지만 선원들은 매일 일상이 저럴진대 참 고생을 많이 한다.

그 와중에도 강 저편으로 지는 일몰은 멋지기만 하다. 니제르강 여행의 보너스이다.

파비앙은 자신은 침낭이 있다면서 잠바를 벗어 건네준다. 또한 아미드는 함께 담요를 덥고 자자고 청한다. 덕분에 어제보다는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