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월)

2박 3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배 여행이 어느덧 4박 5일로 접어들고 있다. 새벽 2시에는 디레(Dire)에 도착했고 잠시 정선을 한 후 출발했다.

새벽에 일어나니 배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으며 승객들은 거의 다 내려 한산한 분위기이다.

오전 9시 30분경..

드디어 코리우메(Korioume)가 보인다. 코리우메는 통북투에서 18Km 떨어져 있는 항구로 통북투의 입구이기도 하다.

통북투는 유럽 여행자들에게 그러했듯 나에게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고행길이기에 그 감격이 더 했다.

항구에 내리자마자 많은 삐끼들이 달려든다. 차량들은 통북투까지 가는데 2500CFA를 부른다.

모니카와 파비앙은 35000CFA를 내면서 통북투까지 가는 택시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하지만 뭐~ 뻔한 상황 아닌가..

그 둘에게 여행을 하면서 수업료를 지불 한 것이라고 위로를 했다.

결국 1000CFA에 통북투로 들어오는 차량을 탈 수 있었다.

통북투..

나에게는 그 이름 자체가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말리 제국 당시 통북투는 사하라 횡단 루트의 중요 지점이었으며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리처드 기어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위노나 라이더에게 의미심장한 대사를 말한다.

“통북투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유럽인들에게는 통북투’는 남미의 엘도라도와 비견될 만큼 황금의 도시로 인식이 되어 있다.

내가 통북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 ‘대항해 시대’ 시리즈 게임을 하면서이다.

대항해 시대는 코에이서 만든 게임으로 15~16세기 발견의 시대에 직접 배를 운행하며 상단을 꾸리고 탐험을 하는 게임으로 많은 20~30대 남성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게임이다.

이 시리즈에서 꼭 빠지지 않는 발견물이 바로 통북투이다.

‘어떤 도시이기에 저토록 빠지지 않고 등장 하는 거지?’

게임을 접하며 언젠가는 직접 통북투를 가고 말리라 다짐을 했는데 오늘 그 목표를 달성했다.

통북투는 1324~5년간 말리 국왕인 만사무사의 메카 순례를 계기로 알려졌다.

만사무사는 대규모 인원을 인솔하여 카이로를 경유하여 메카에 성지 순례를 하였는데 인원이 수만명에 달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금과 값비싼 예물을 가는 곳마다 뿌려 이슬람 세계에 말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받았다.

시종만 8000명을 대동했으며 수많은 금을 가지고 여행을 하여 카이로의 금값이 12%나 하락을 했다. 그의 명성은 매우 높아 서구에도 그에 관한 소식이 알려졌으며 자연스레 통북투는 황금의 도시로 인식이 되었고 훗날 수많은 탐험가들이 황금의 도시 통북투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건 탐험에 나서게 된다.

트럭이 통북투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첫 인상은..

황량하다

과연 황금의 도시였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말 황량하다.

온 도시가 모래 먼지에 뒤 덮여 있으며 모래 바람이 꽤 세게 분다. 눈에 모래가 들어 올 정도이다.

도시에는 낙타와 염소들이 한가롭게 다니고 있으며 흙집 사이로 움막집이 많이 보인다. 살기가 참 열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통북투에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으로 충만하다.

호텔은 시내 북서쪽에 있는 Caming la Paix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루 숙박료는 6000CFA. 더 싼 숙소가 있지만 5일 동안 고생을 했기에 좀 좋은 곳에서 푹 쉬기로 했다.   호텔 주변에는 황량한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낙타가 많이 보인다. 사막 쪽에도 짚과 천막으로 된 집들이 보인다.

비록 쇠퇴하기는 했지만 통북투는 소금무역의 중심지이다. 통북투에서 북쪽으로 740Km 떨어진 Taoughout에는 소금 광산이 있는데 지금도 낙타로 소금을 운반한다. 지구상에서 거의 남지 않은 낙타 캐러반이 아닐까 싶다.

소금은 대리석 모양으로 한 덩이에 60Kg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8000CFA에 거래가 된다고 한다. 내가 타고 온 화물선도 이곳에서 소금을 싣고 몹티로 내려간다.

매일 쉬지 않고 왕복 36~40일을 낙타를 타고 가야하는 무역이며  650000CFA~700000CFA를 내면 캐러반과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와 식량 낙타 세 마리가 주어진다.

끔찍하게 고생스러운 여행이 되겠지만 언제 한번 해봐야겠다는 도전 욕구가 오른다.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곧장 시내 탐방에 나섰다. 모래바람이 시내 전체를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웃음까지는 덮지 못한다.

시내를 쭉 가로질러 14세기에 지어진 가장 오래 된 Dyingerey모스크에 갔다. 한창 공사중으로 사하라 양식의 멋진 외관이 인상적이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모스크안의 현지인들이 화를 낸다. 외국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인가보다.

시내 남쪽으로 우체국으로 가서 엽서를 붙였다. 통부투에서 보낸 엽서는 받는이에게는 특별하게 다가가겠지?(엽서+우표값 950CFA)

우체국에서 200m를 걸어 Centre de Recherches Historiques Ahmad Baba 헉.. 헉.. 이름 길다. 아무튼 고서들이 보관된 박물관으로 갔다.

한 할아버지가 수많은 고서들을 소개한다. 1204년에 출판된 책과 1242년에 필사된 꾸란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책들을 직접 만져보게도 한다. 이 귀한 것들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오래된 고서들을 볼 수 있어 괜찮은 시간이었다.

관람을 마치자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입장료 1000CFA를 내라고 이야기 한다.

다시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독립 광장 근처의 Sidi Yahiya 모스크에 갔지만 역시나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못 들어간다.

Heinrich Barth's House(입장료 1000CFA)은 찾기가 힘들었으나 통북투를 방문한 이들은 한번쯤 들릴만한 곳이다.

1588년부터 1853년까지 43명의 유럽 탐험가가 전설의 도시 통북투를 찾았으나 4명만이 통북투를 방문했고 그중 3명만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프랑스 탐험가 르네 까이에는 1827~29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팀북투를 방문했다.

유럽인 탐험가로서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하인리히 바르트는 1853년 9월 7일 통북투에 도착했으며 바로 이 집(Heinrich Barth's House)에 숙박을 했다고 한다.

1000CFA를 내고 들어가니 하인리히의 사진과 그가 여행한 루트가 그려진 지도를 볼 수 있었다. 부연된 설명은 프랑스어라 알 수가 없었지만 사진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인리히는 영국탐험대의 일원으로 트리폴리를 출발하였고 사하라를 거쳐 1850년 아가데즈에 도착했다.

탐험대장이 곧 사망하고 다른 독일인 오베르베크와 함께 카치나와 카노를 방문했고 차드 호수를 탐험한후 남쪽의 베닝에 도착했다.

오베르크는 1852년 사망을 했지만 하인리히는 단신으로 통북투를 여행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하라를 지나 트리폴리에 온 후 1855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는 많은 양의 기록을 남겼고 그가 본 모든 것들에 정확하게 기술했기 때문에 그의 책은 서부 아프리카에 중요한 교과서 역할을 했다.

그가 묵었던 집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 내가 남기는 기록도 하인리히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곳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건물 옥상에서 통북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통북투는 고층 건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건물에서도 도시 전경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Grand March'e는 상점이 몰려있는데 큰 규모는 아니다. 몇몇 가게만이 눈에 띈다. 600년 전에는 지금과 한참 다른 환경이었겠지?  

  이곳에서 음료수는 350CFA이고 토마토 1Kg은 750CFA이다. 전체적으로 물가가 꽤 비싸다. 대신 길거리에서 파는 튀긴 반죽(개당 50CFA)과 생선튀김(200CFA)은 꽤 먹을 만하다.

호텔에 돌아오니 모니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파비앙이 꽤 아프다고 말한다. 모니카 역시 목이 잠겨 있는 것이 영 안 좋아 보인다. 4박 5일의 여정이 감내하기에는 벅찼으리라..

그러고 보면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고도 무사한 내가 이상할 정도이다. 몸은 지쳐있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통북투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아비잔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의 정점이 지나간 느낌이다.

통북투..

정말 내가 여기에 있는 거야?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황금의 도시라 불린 통북투는 실제 황금은 없었지만 황금과 같은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월 29일(화)

몹티로 가는 차량이 새벽 4시에 출발한다고 하기에 호텔 체크아웃을 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차량만 덩그러니 있고 아무도 없이 한산하다. 어떻게 된 거야? 차안에 잠든 청년을 깨워 어떻게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말이 통해야 알지..

차량 앞좌석에 앉아 자려고 하니 청년이 잠결에 담요 하나를 건낸다. 잠시 잠이 들었다.

오전 8시 반.

도대체 이곳 시스템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

혹시 주변에 몹티로 가는 차량이 있는지 알아보러 시내를 둘러보았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로 향하고 있고 출근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황량한 사막이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똑 같구나..

히치해서 몹티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700Km 이상 떨어진 지점이라 오늘 도착하기는 불가능했고 고생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내 포기했다.

그랜드 마쉐 남쪽 맞은편에 GDF 버스 사무실이 있는데 바마코로 가는 버스는 목요일 오전 9시에 떠난다고 한다. 몹티에서 내리는 것도 가능하며 요금은 12500CFA라고 한다. 혹시나 차량을 구하지 못하면 모레 이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

다시 정류장으로 가서 영어가 비교적 통하는 청년을 만나고 나서야 이곳 교통 시스템을 알 수 있었다.

몹티로 가는 차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건 맞는데 차량이 직접 승객의 숙소에 들러 싣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정류장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 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내일 새벽 4시에 출발하라고 말한다.

결론은 통북투에 오늘 하루 더 머물라는 것. 힘들게 온 만큼 좀 더 쉬었다 가라는 통북투의 배려가 느껴진다.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은 없고 그저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해질 무렵 몹티로 가는 표를 끊기 위해 다시 정류장으로 갔다. 차량은 4RW 차량인데 앞좌석은 15,000CFA, 뒤에 비좁은 좌석은 12,500CFA이다.(당연히 앞좌석)

여행자에게 유명한 Poulet d'or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스파게티(1500CFA), 오물렛(1000CFA)를 주문했는데 오물렛 모래가 섞여있는 완전 실패작이지만 스파게티는 양도 많고 맛도 꽤 괜찮다.  

식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TV 앞으로 몰린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말리와 코트디부아르와 축구 시합이 있기 때문이다.

통북투에까지 축구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다니 문명의 이기가 아닐까 싶다.

식사를 마치고 TCP 인터넷 카페에 가니 동양인이 ‘고니찌와’라고 말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처음 보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청년의 이름은 코코로 이토이며 2년 동안 자전거 여행 중이다. 사이클을 타고 이곳 통북투까지 오다니. 정말 대단한 청년이다.

  인터넷카페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여행기를 정리하러 왔다고 한다. 나와 같네. 아마 오늘 만남이 서로의 여행기에 기록되겠지?

코코로는 http://whereiskokoro.blog34.fc2.com 을 소개해주며 일본어로 적혀 있어서 읽지는 못할거라고 이야기 한다.

나 역시 내 사이트를 www.travel4edu.com 소개해주며 같은 말을 했다. 우리 둘은 피식 웃었다. 통북투에서 두 동양인의 만남 자체가 특별하다고 느껴진다.

인터넷 카페는 1시간에 1000CFA로 비싼 편이지만 속도는 통북투라는 것을 감안할 때 봐줄만 하다.

사이트에 여행기를 올리려고 하는데 아뿔싸 노트북에 쳐둔 여행기를 미처 1저장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인터넷을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투아렉족이라며 삐끼가 접근한다.

북쪽에서 낙타를 직접 몰고 이곳으로 왔다는 청년은 투아렉족 생활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준다.

청년은 호텔에서 자신의 특별한 물건을 보여준다고 한다.

‘네가 무엇을 보여주든 난 아마 안 살거야.’

‘괜찮아. 그건 네 선택이고 그저 보기만 해.’

호텔에 도착하니 마침 차량 한대가 도착해있었는데 내일 몹티로 향하는 차량인데 확인차 왔다고 한다.

표를 끊으면서 잘 찾아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이렇게 찾아와주니 안심이 된다.

아까 쫓아 온 청년은 진짜 투아렉족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호텔까지 졸졸 쫓아온 것이 미안해 물건을 사는 대신 콜라 한 병을 대접해 주니 좋아라한다.  

하루 종일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며 꽤 충전을 했다. 자 이제 남은 여행을 향해 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