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수)

곤히 잠든 시각인 새벽 네 시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정적을 깬다.

‘어이 한국인.. 몹티 가야지.’

차량은 나를 태운 후 다른 손님을 찾으러 통북투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흔들리는 차량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뒤에 깨니 많은 차량이 선착장 입구에 서 있는 상태이다. 도강하는 선박은 동이 터야지 운행한다고 말한다. 동이 틀 무렵 니제르강의 풍경은 수채화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외국인들인 담요를 둘러메고 일출을 감상한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수채화 같은 풍경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노숙하는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주변에 추위에 떨고 있는데 아이는 추운날씨에 필사적으로 울어대고, 여인은 아이를 달래기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키울 자신이 없으면서 왜 낳은 거야.’

모든 생명이 존엄하고 고귀하다고 하지만 저렇게 아이를 맨 추위에 노출 시키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가족계획을 기대하기 힘든 이곳 서아프리카에서는 여성의 평균 출산 횟수가 7.9명이다. 말리, 니제르 같은 최빈국은 연 인구 성장률이 3%에 20년마다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고 있다.

경제 수준은 이 아이들을 수용할만한 국가적인 시스템은 기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결국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거리로 내 몰린 상황이다.

도강을 하고 나서는 사막 도로를 쭉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지금은 차량으로 빠르게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낙타로만 통과가 가능했으리라.

앞좌석에 앉아 편할 줄 알았는데 차량 운전석에서는 매연이 난다. 역시나 편한 여행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통북투에서 95Km 떨어진 지점에 잠시 정차를 했다.

론니에 보니 통북투에서 두엔자(Douentza)까지 538Km가 남았다고 표시 되어 있으니 아직 440Km 정도 남았다.

같은 차량에 탄 프랑스 부부에게 두엔자까지 440Km 남았다고 이야기 하니 무슨 소리냐며 펄쩍뛴다.(왜 흥분 하는 겨?)

두엔자까지는 100Km 정도가 남았다며 길에 세워진 표식을 가리킨다.

다가가서 보니 정말 100Km 밖에 안 남았다. 프랑스 아저씨는 론니가 유명한 것은 알지만 다 맞는 것이 아니라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이정도 거리면 어제 히치가 가능했는데..  

11시 53분에 두엔자에 도착했다. 두엔자는 말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바마코(Bamako)와 가오(Gao) 도로상에 있으며 차량으로 통북투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이다.

교통의 요지라 복잡할 줄 알았는데 차량 몇 대가 지나갈 뿐 한적한 분위기이다.

몹티에는 오후 4시에 도착했다. 1주일만의 재회이군.

호텔은 1주일 전과 동일한 Ya Pas De Problem에 체크인 했다. 물론 호텔 앞에 진을 친 삐끼들은 가볍게 무시해줬다.

오늘 환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침에 반디아가라로 출발하는 차편을 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환전이 발목 잡은 셈이다.

1월 31일(목)

어제 저녁 호텔 레스토랑에서 맥주한잔을 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7일. 아비잔에는 반드시 6일에 도착해야 한다.

론니에는 ‘도곤 지역(Dogon Country)은 죽기 전에 반드시 여행해야 할 곳.’이라 되어 있지만 3일을 걸어야 하는 일정이다.

또한 안경테가 깨져 있는 상태이여서 걷는 여행이 불편할 것이며 무엇보다 장기간의 통북투 여행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무리해서 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

결론은 안전을 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서아프리카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 안전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미토리에는 나와 일본인 여행자, 영국인 여행자 한명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 셋은 여행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는데 익살맞은 영국인 여행자 경험담이 재미있다.  

‘나는 120개국을 여행했고 아프리카는 거의 다 여행 했어. 내가 여권이 꽉 차 영국 대사관에 새 여권을 발급 받으려고 했거든. 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