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수)

밤새 기차에서 지내긴 했지만 상위 클래스 좌석이라 큰 불편은 느끼지 않았다. 단지 씻지를 못해서 답답하기는 했다.

족자카르타는 새벽 5시쯤 도착했는데 내리자마자 많은 삐끼들이 붙는다. 아직 졸린 듯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접근 하는 모습이 밉지 않아 보인다.

족자카르타의 공식 명칭은 욕야카르타(Yogyakarta)이지만 현지 사람들은 옛 명칭대로 족자카르타라고 부르며 줄여서 족자라 부른다.

족자는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16~18세기 마따람 왕국의 수도였으며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는 독립군의 임시 수도이기도 했다.

자바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고대 불교 왕국과 힌두교 왕국들이 족자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 족자 근교에는 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 사원(Borobu역)과 힌두교 유적인 쁘람바난(Prambanan)사원은 1991년 유네스코에 함께 등재 되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족자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고등교육 기광이 160여개가 밀집해 있고, 인도네시아 최고 명문 대학인 가자마다(Gadjah)대학은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인문대학에서 56위를 차지했다.

새벽 5시라 지금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 하루치를 더 내야 할 것 같아 일단 보로부두르 사원을 관람하고 족자로 돌아와 숙소를 잡가로 했다.

보로부두르는 족자에서 42Km 떨어져 있어 시내 북쪽의 Jombol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터미널까지 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고 일단 북쪽으로 20분 정도 걸었다.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눌렀다.

결론적으로 자카르타의 ‘트랜스 자카르타’처럼 이곳에도 ‘버스 코타’라는 시티버스가 있다. 정류장에서 환승도 가능함으로 이 버스로 Jombol 터미널을 비롯한 시내 전역과 17Km 떨어진 쁘람바난 사원까지 커버가 된다. 족자를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존재이다.

보로부르두 정류장에 도착하자 많은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이들 삐끼는 자신의 베짝을 타라고 하는데 베짝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운행하는 인력거이다.

속이 출출해서 정류장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4000루피아에 베짝을 타고 보로부르두 사원으로 갔다. 타고나니 정류장에서 보로부르두 사원까지 얼마되지 않는다. 걸어서 와도 충분한 거리이다.

보로부르두 사원은 현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다른데 외국인은 VIP 사무실로 가서 표를 끊어야 한다. 입장료는 11$이고 학생증이 있으면 7$이다. 사무실 안은 커피와 홍차가 무료로 제공됨으로 잠시 커피한잔의 여유를 가져도 좋을 듯 싶다.

보로부르두 사원은 세계 최대의 불교 건북물로 높이는 약 31.5m가 되며 아래로는 정방형으로 5층, 위로는 원형으로 3층을 쌓고 꼭대기에는 커다란 종 모양의 탑을 쌓은 구조이다.

서기 750년에서 850년경 중부 자바에서 번성한 샤일렌드라 불교 왕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보다 300년이나 앞서 건립되었다.

9세기 중엽 힌두교 왕조가 들어서면서 방치되었다가 1006년 므라삐 화산 폭팔로 사원이 화산재에 묻혀져 오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보로부드르 복원 사업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가 1907년~1911년까지 복구 공사를 실시했으며 1973년부터 10년 동안 대규모 복구사업이 유네스코 주도로 진행되었다.

오랜 기간 복구 작업이 벌어졌지만 사원의 일부가 소실 된데다가 도굴꾼들이 부조와 불상을 훔쳐가 완벽한 복원은 아니라고 한다.

사원에 들어서니 장엄한 모습이 나를 압도한다. 층마다 환조와 부조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어 표정까지 드러난다. 사원의 맨 윗 층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주변은 열대 나무 정글로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이곳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나보고 학생인지 묻는다. 훗~ 대학 졸업한지 벌써 한참이 지났는데~ 직장인이라고 말하며 동티모르에 갈 것이라고 하니 여행 잘 하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으신다.

보로부르드 사원 관광을 마치고 이곳까지 온 김에 므라삐 화산을 보고 족자로 내려가기로 했다.

사원에서 터미널로 오는 길에 옷가게가 보인다. 떠날 때 워낙 급박하게 떠나느라 반바지와 샌들을 빼놓은 채 여행을 시작했다. 가게에는 다양한 옷에 가격이 정찰제로 붙여있는데 생각보다 싸다. 나중에 시장가서 바가지 씌는 것 보다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옷을 샀다. 반바지 20,000루피아(2$), T셔츠 30,000루피아(3$), 샌들 45,000루피아이다.

므라삐 화산에 가기 위해서는 므라삐 화산 북쪽의 Selo로 가야 화산 분화구까지 볼 수 있다.

Selo로 가기 위해 터미널로 가니 삐끼들이 오토바이로 가라고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하니 마침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가리킨다.

Selo로 까지는 가지는 않지만 그쪽 방향으로 가는 버스이기에 흔쾌히 타고 북쪽으로 향해 출발했다. 계산을 하려 요금을 물어보니 자신 없는 표정으로 20,000루피아를 부른다. 표정을 보니 바가지 씌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정말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20,000루피아가 맞는지 물어보니 이내 10,000루피아로 꼬리 내린다.

Selo로로 가는 길은 산악 지역으로 오르막의 연속이다. 산악 지형의 특징이 드러나는 전통 가옥이 서 있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도로를 중심으로 드러난다. 끝없이 펼쳐진 밭들이 초록빛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흡사 라오스의 고산지대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버스는 무라탄이 종점이다. 확실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론니플래닛에 표기 된 Blabak 근처인 것 같다. 이곳에서 Selo로 올라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마침 하교 시간이 되었는지 교복을 입은 7~8세 되는 아이들이 버스에 오르며 노는 모습이 귀엽다.

버스는 출발해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Selo로 가는 목적은 므라삐 화산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지만 이곳 풍경이 아름다워 산악 풍광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충분이 올만한 가치가 있다.

미니버스가 종점에 다다랐을 때(5,000루피아) 기대와는 달리 아직 Selo가 아니었다. 운전사는 이곳이 질라캅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언제 Selo가 나오는 건지? 운전사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면서 포터트럭을 타고 가라고 한다.

마침 짐을 가득 실은 포터가 떠나려고 하는데 Selo로 간다고 하니 옆 좌석을 열어주며 타라고 한다.

포터에 타려는 순간.. 잠시 생각을 바꿔서..

이곳에서는 운전석보다는 포터 짐칸에 타는 게 주변 경치도 잘 감상할 수 있고 재미있다. 물론 위험하기는 하지만 이미 많은 여행을 통해서 트럭 짐칸을 타봤기 때문에 기본 안전 수칙은 몸에 베여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운 기운이 없어지고 시원함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산악 지역이라 구름도 많이 꼈고,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는데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다.

트럭은 물건을 배달하려 모를 마을을 들리는데 이곳 가옥을 자세히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Selo에 도착하고 트럭운전사에게 3,000루피아를 지불하니 정류장에서 대기하던 가이드들이 믈라삐 화산 등반에 대해 설명한다.

Selo에서 믈라삐 정상까지 등반 하는 데는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등반객은 지금 시각이 12시 40분. 돌아오면 저녁이 되기 때문에 등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산악 지형이라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무모하게 등반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믈라삐 화산과 Selo 마을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포스 믈라삐 Pos-Merapi를 등반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외길이라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걷다보면 밭에 손질을 하는 아낙과 땔감을 지고 내려오는 노인네. 낮잠을 자고 있는 청년 등 한적한 시골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

농부들 손에는 낫이 들려있는데 우리 속담에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 속담이 그대로 통용될 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잠시 헛소리 ㅡ.m)

우리의 시골과 비슷한 풍경이며 2003년 중국 윈난성 호도협 트래킹을 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이기다. 사람들과 마주칠 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면 수줍은 듯 인사를 받아주며 밝게 웃는 모습이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을 대변한다.

Selo 주변을 트래킹 코스로 잘 만들면 중국의 호도협처럼 꽤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Pos-Merapi로 향하는 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고 하지만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길은 좁아지며 갈림길은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다. 적당한 포인트에서 믈라삐 화산을 바라보니 구름으로 둘러싸여 간간히 정상이 보임에도 장엄한 분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름만 없었으면 끝내주는 풍경 이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와 숙소를 알아보니 숙박은 50,000루피아(5$) 새벽 1시부터 시작되는 트래킹 가이드는 150,000루피아(15$)이다. 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트래킹이고 뭐고 없을 텐데..

오전부터 구름이 많이 낀 걸보니 내일 비올 확률이 커 보인다.

비가 오면 이도저도 안될 것 같아 아쉽지만 다시 족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화산은 뒷날 숙제로 남겨둔 채.

오후 2시 족자를 향해 트럭을 타고 내려오니 오를 때와는 다른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질라캅에서 미니버스를 잡아 문을 여니 무라탄에서 질라캅까지 태운 운전사가 밝게 웃는다. 이런 인연이~

미니버스가 내려오는 도중에 여중생들을 태운다. 인도네시아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교복을 입는데 이슬람 국가답게 여중생 교복은 머리에 하얀 천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여중생들은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나에게 써 먹는다. 이리저리 즐겁게 대화하다가 직업이 뭔지 묻기에 초등학교 교사라고 하니 잠시 분위기가 싸해진다.

여기 학생도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군.

족자에서 Mageang으로 가는 메인도로에서 큰 버스를 잡아타면 된다. 친절한 경찰의 도움으로 버스를 잡아 족자로 돌아 올 수 있었다.(7000루피아)

족자 Jambol 터미널에서 아침에 이용했던 코타 버스를 타고 쉽게 소스로위자얀(Sosrowijayan)지역으로 올 수 있었다. 12시간만의 해우로군.

소스로위자얀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과 분위기가 비슷해 배낭여행객을 위한 숙소와 기반 시설이 꽤 잘 되 있다.

도시 자체도 볼거리가 많은데다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지친 여행자가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지친 몸에 에너지를 충전하며 향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좋은 곳이다.

번잡한 자카르타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라 아예 인도네시아 여행의 첫걸음을 이곳에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소스로위자얀에서도 소스로위자얀(Ji Sosrowijayan)도로에 저렴한 숙소가 몰려있지만 지금은 성수기라 론니에 표기되어 있는 숙소는 일찌감치 품절(?)되었다. 삐끼의 도움을 받아 50,000루피아(5$)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시설은 낡았지만 모기가 없어서 괜찮았다. 방은 2층인데 아래층에는 이곳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팝송과 현지 노래를 부르는데 아는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말리오보로(Ji Malioboro)에는 도로 양쪽으로 한쪽에는 수많은 상점들 나머지 한쪽은 노천 식당이 몰려있다. 노천식당이라고 하지만 종업원 여럿 거느린 레스토랑이며 계산을 하면 영수증을 주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 걱정은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한끼에 10,000~13,000루피아, 음료는 3,000~4,000루피아 정도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