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월)

오늘은 하르게이사를 떠나 국경부근인 보라마(Borama)로 이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일치감치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 잠시 짐을 맡기고 하르게이사 시내를 둘러보았다.  

시내 구경이라 할 것도 없다.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전쟁박물관 앞의 Mig기가 약간 인상적이고 바로 옆 건물은 500실링 앞면에 그려진 중앙은행인데 화폐에 새겨진 건물이라 하기에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냥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곳의 관람거리이다.

문제는 내가 이곳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간간히 말을 거는 사람 중에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심지어는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하르게이사에 얼마 안 되는 외국인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다. 또 다른 경우는 내가 기자인지를 계속 물어본다. 아마 이곳을 여행지이기 보다는 외국인 기자들이 많이 찾음을 알 수 있다.

토모미와 같은 경우는 여자 혼자 다녀서 그런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욕설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여자 혼자 시내를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배구를 하는 청년들이 있어 같이 배구를 즐겼다. 우리의 땅따먹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 꼬맹이들이 있기에 같이 놀이를 했다.

문제는 어떤 활동을 하던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하르게이사에서 연예인이 된 느낌이다.

시내의 한 학교를 방문해 한국의 선생님이라 소개하니 학교를 둘러보는 것은 좋지만 사진 촬영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그리 반기는 것 같지 않아 학교를 빠져 나왔다.

보라마(Borama)로 떠나기 앞서 인터넷을 잠깐 체크했다. 인터넷 요금은 1분당 75~100실링이고 한글을 쓰는 것과 보는 것 모두 불가능하다. 그저 내 홈페이지에 짤막하게 안전하다는 소식(영어)을 전하고 방명록에 새 글이 떴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명록의 글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해야 알 수 있겠지?

잠깐의 문명을 맛보고 밖을 나서 과거로 돌아갔다. 힘겹게 삶을 사는 사람들과 동시대의 일행이 되었다. 내가 소말리아에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보라마(Borama)로 가는 차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작은 트럭 뒤편에 자리가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20,000실링을 부른다. 돈을 지불하고 출발하기를 쭉 기다려도 트럭은 움직일 줄 모른다. 기다리는 동안 더욱 많은 사람들이 트럭 뒤편에 자리를 잡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대로는 지부티까지 가는 여정이 고행이 계속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토모미와 상의를 해서 가까운 에티오피아로 넘어가기로 하고 국경 마을인 와잘레(Wajaale)로 가기로 했다.

와잘레(Wajaale)로 가는 차량을 타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다. 서로 손님을 빼앗아 가려고 곳곳에서 삐끼들이 우리를 귀찮게 했으며 결국 13,000실링에 승용차에 올랐지만 그 승용차 기사도 출발할 때쯤 되자 30,000실링으로 말을 바꾼다.

오후 2시에 정류장에 와서 4시간이 훌쩍 지났다. 운전기사와 삐끼들에 이리저리 치여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은 국경까지 가기가 불가능 할 것 같아 토모미에게 호텔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했다. 호텔에 돌아가는 도중에 토모미가

‘Park.. 오늘 여기서 하루 지내봤자 내일 아침에 또 어려움을 겪을 거야. 그냥 와잘레(Wajaale)로 가자’

토모미의 말이 일리가 있어 다시 정류장으로 갔다. 말을 바꾼 택시는 손님을 구하지 못해 출발을 못했다.

우리 둘만 타면 출발할 수 있지만 기사가 괘씸스러워 다른 차에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두 차 모두 출발할 생각을 안 한다. 멍하니 차에 대기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주먹다짐을 한다.

결국 우리 둘이 아까 택시에 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정이 안가는 기사는 타자마자 ‘Money, Money’하고 외치며 돈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 28,000실링을 그대로 줘버렸다.

3명이 탈 수 있는 좌석에 토모미와 나.. 그리고 뚱뚱한 아줌마 2명이 더 타 비좁기 그지없다. 자세가 바르지 않아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저려온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어서 120Km 떨어진 와잘레(Wajaale)에 도착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오후 11시가 안되어 와잘레(Wajaale)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사가 Immigration 문을 두드려 직원을 부른다. 우리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에티오피아로 넘어 갈 것이라 이야기 했다.

승용차 기사는 근처 호텔로 우리를 데려가 방 사정을 알아본다. 그런데 두 사람이라서 두 방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값도 1인당 11달러를 부른다. 우리는 한쪽에 매트리스를 깔아도 좋다고 이야기해도 호텔 직원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다른 호텔에 가서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다. 두 사람이면 두 방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그런데 운전기사는 처음에는 한사람에 22,000실링을 부르더니 28,000실링으로 말을 바꾼다. 토모미는 왜 계속 요금이 변하냐며 짜증을 낸다.

오호.. 이제 알겠다.

낌새를 알아챈 내가 기사와 한명의 삐끼를 호텔 밖으로 몰아내고 호텔 직원에게 조용히 가격을 물었다. 결과는 한 방에 14,000실링(약 2.3달러)이다.

방에 들어가니 답을 알 수 있었다. 방은 고시원처럼 침대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라서 2명이 자기에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막판에 호텔을 잡아주려고 노력하는 운전기사를 보며 고마움마저 느꼈는데 정말 그의 악착함에 치를 떨 정도이다. 내전 중에 사고를 당했는데 다리가 한 짝 없는 운전기사가 왜 이리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지.. 마치 어려운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시달리고 굶어서 그런지 무척 허기가 진다. 호텔 밖을 나서 와잘레(Wajaale)마을을 돌아봤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간간히 비추는 불빛 아래로 땅바닥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나마 우리를 발견한 사람은 돈을 달라고 붙는다. 정말로 호러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좀비들의 도시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든다.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 저녁 먹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장의 비상식량을 배낭에서 꺼냈다. 바로 전투식량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전투식량이 참 요긴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3000원 정도면 쉽게 구입 할 수 있는 전투식량은 극한 상황에서 큰 힘이 된다. 찬물만 있어서 비빔밥을 먹을 수 있으며 왜 더 준비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될 정도이다.

마지막 전투식량을 찬물에 불리고 예멘에서 산 참치 통조림을 깠다.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내일 에티오피아로 넘어가면 사정이 조금 나아지겠지?

이제 여행을 할 수 있는 날도 19일이 남았다. 에티오피아를 돌고 지부티까지 가면 여행이 마무리 되겠지?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에리트리아까지 둘러봤을 텐데 한국이 무척 그리운 와중에서도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쉽다.

그래도 상상만 했던 소말리아를 짧지만 실제로 여행했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임에 틀림없다.  
  

1월 16일(화)

오전 9시 반에 호텔을 나서 에티오피아 국경으로 향했다. 와잘레 마을을 지나치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너무 급하게 여행하느라 사진을 충분히 찍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된다.

Immigration 오피스로 가는 도중 엄청난 규모의 데모대가 우리 앞을 지난다. 1000~20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소말리아랜드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하고 있다.

외국인인 우리가 사진을 찍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우리를 완전히 둘러쌓아 자신들의 구호를 외친다. 외국인인 우리가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 외부에 알리기를 원하는 것 같다.

시위대가 우리 앞에서 점점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자 급히 토모미를 데리고  Immigration 오피스로 갔다.

오피스에서 출국 스탬프를 받은 후 에티오피아로 길을 나섰다. 시위대의 몇몇 젊은이들이 우리와 대화를 하기를 원하지만 경찰들이 제지를 한다.

무엇이 이들을 격렬한 시위로 몰아넣은 것인가? 소말리아에 개입한 에티오피아에 대한 항의표시인지, 민주화 요구인지? 아니면 굶주림에 치친 사람들의 외침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곳 사회가 어수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국경은 바로 200m 앞에 있다. 혼란스럽고 열악한 소말리아와는 달리 국경 중간의 나무에는 많은 새들이 평화롭게 둥지를 틀고 있다.

짧지만 강렬했던 소말리아 여행이 끝났다. 여행기에는 소말리아의 열악한 면만 쓴 것 같은데 사실 외국인이라서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고 말은 안 통해도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원래 모두가 잘해도 못하는 몇 명이 이미지를 완전히 망치는 법이 아닌가? 여행기에는 소말리아의 열악함만을 강조해서 척박한 속에서도 인간적인 삶을 이어가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뺀 것에 대해 읽는 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결코 여행지로서는 추천할 수 없다. 소말리아 중에서도 이곳 소말리아 랜드만 여행이 가능하며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랜드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정보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즉.. 극소수의 모험적인 여행자만이 여행하는 곳이다.

열악한 모험을 즐기고 혼란한 사회를 체험하고픈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볼만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