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금)

잠시간의 휴식이 끝나고 이제 에티오피아 최대 기독교 유적인 라리벨라(Lalibela)로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지도상으로 보면 가까운 거리지만 산악지형에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만만찮은 여행이 될 것이다.

곤다르에서 라리벨라(Lalibela)로 향하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한참 돌아서 가기 때문에 곤다르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바히르다르와 라리베라 갈림길이 있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으면 라리베라로 가는 길이다.

터미널에서 데브레 타볼(Debre Tabor)로 가는 버스를 찾으니 역시나 힘들다.

일단 갈림길로 가서 히치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한 미니버스 기사가 데브레 타볼 근처까지 간다고 하기에 35Birr을 주고 탔다. 비싼 금액임에는 틀림없으나 데브레 타볼을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2시간 정도 바히르다르 쪽으로 달리더니 한 마을에서 나를 내려준다. 여기서 데브레 타볼을 어떻게 가냐고 따지니 알아서 가라는 식으로 몸짓하며 무책임하게 떠난다. 곤다르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이 정도면 20Birr이면 충분한데 악덕 기사에게 속은 셈이다.

그보다 갈림길을 찾아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갈림길이 이곳에서 멀지는 않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무리라고 말한다.

더 정확한 길을 묻기 위해 마을에 정차한 트럭에 다가가니 기사는 유창한 언어로..

‘너 운이 좋네.. 우리가 지금 데브레 타볼로 가는 길이니 트럭에 타.’

데브레 타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니 가파른 경사에 비포장도로가 펼쳐진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수목들도 울창해지고 간혹 원숭이 떼도 눈에 띈다.

기존의 트럭에 츄레라를 한대 더 동원해 지부티로 향하는 트럭이라 느리기 짝이 없다. 3시간 정도 달린 오후 2시 45분에 데브레 타볼에 도착했다. 갈림길에서 45Km 정도를 왔으니 한 시간에 15Km를 온 셈이다.

친절한 트럭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서 다른 차편을 구하기로 했다. 아쉬워하는 기사는 혹시 지부티로 갈 때 일정이 맞으면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번호를 남긴다. 시간만 있으면 같이 갈 텐데..

차를 갈아탄 것은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이곳에서부터 평지라 트럭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동쪽으로 가는 차가 없다는 것이다.

30분을 기다리니 지나가는 미니버스를 잡을 수 있었다. 5Birr을 내고 20Km를 달려 한 마을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마을에 주변 초지에는 소와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이곳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외국인이 신기한지 ‘You, You’하면서 졸졸 쫓아다니며 돈을 달라며 손을 벌린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싫은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꼬맹이들은 외국인만 보면 습관적으로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린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대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보니 아예 아이들을 상대하지 않는 지경이 이르렀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어제 만난 KOICA 단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것은 외국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한다. 불쌍하다며 한두푼 주다보니 아이들은 외국인만 만나면 습관적으로 손을 벌린다. 일을 해봤자 많은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편한 동냥이 습관화 되어 있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꼭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파리 떼처럼 돈을 달라며 극성인 아이들을 피해 마을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길을 걸었다. 그래도 여전히 집들은 이어지고 새로운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면 ‘You, You’하면서 따라다니며 손을 벌린다. 너희들이 우리 학교 아이였으면 한대 쥐어박았을 것이라 생각 될 정도이다.

따라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히치가 안 된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꼬맹이들이 많은 곳에 차를 세우는 것은 번거롭기 때문이다.

한 청년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떼어 놓을 수가 있었고 겨우 도요타 트럭을 히치 할 수 있었다. 도요타 트럭은 30Km 정도를 가서 한 마을에 나를 내려놓는다.

이 마을도 사정이 비슷하다. 꼬맹이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오며 돈을 달라고 한다. 그저 외면하는 수밖에.. 지겹다. 지겨워..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 외곽에서 히치를 시도했지만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오늘 가쉐마(Gashema)로 가는 것은 포기했지만 이곳에서 50Km 정도 떨어진 필라킷(Filakit)까지만 갈 수 있다면..

다행히 해가 질 무렵 랜드크루져 한대가 내 앞에 섰다. 나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운전기사를 둔 부자 할아버지 가족이 탄 차량이며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이야기 한다.

1시간 정도를 달려 한 마을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가족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 하신다.

미파스 뮤차(Mifas Mewcha)마을로 론니 지도상에는 나와 있지 않다. 꽤 번화한 마을로 많은 버스와 트럭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쉬다 간다.

이곳에서 가쉐마(Gashema)까지는 75Km 정도이고, 가쉐마에서 라리베라까지는 63Km로 총 138Km가 남았다.

버스 정류장 옆 호텔(20Birr)에서 여장을 풀고 식당에서 스파게티(10Birr)를 먹었다. 스파게티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꽤 맛있어서 흡족하게 먹었다. 사실은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1월 27일(토)

미파스 뮤차(Mifas Mewcha)에서 라리베라까지는 140Km 정도 남았다. 오늘의 목적지를 라리베라로 잡고 8시에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어제 그 많던 버스가 한대도 없다. 모든 버스가 새벽 6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마을 한 가운데 도요타 트럭이 서 있는데 동쪽으로 가는 김에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모양이다. 가쉐마까지 가는지 물어보니 20Birr을 내라고 한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네?

어제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서 버스 요금이 18Birr이라는 것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트럭에 탔다. 비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린다.

이곳 길은 긴 산맥을 따라 길이 나 있어서 주변의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아름다운 신록이 쭉 이어진다.

9시 30분에 어제 목표로 했던 필라켓(Filakit)에 도착을 했고 10시 19분에는 가쉐마(Gashema)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라리베라와 울디아(Woldia) 가는 길로 나눠지는데 라리베라는 북쪽으로 63Km를 가야한다.  

트럭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내리자마자 삐끼들이 달라붙는다. 유창한 영어로 차편을 찾아준다고 하지만 모든 삐끼들의 목표는 어떻게 하든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마을에 죽치고 앉아서 삐끼들에게 시달리는 것 보다는 라리베라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삐끼들은 걸어서 가기는 불가능하다며 말리지만 누가 걸어서 간대냐?

잠시 길을 걷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름답고 장엄한 산악풍경이 쫙 펼쳐진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감상에 젖으니 버스 한대가 지나간다.

매표원이 라리베라까지 30Birr을 요구하지만 현지인을 통해서 15Birr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15Birr만 냈다. 매표원은 돈을 더 내라고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역시 이곳 여행은 사전 정보 습득이 돈이 된다.

63Km 거리이기는 하지만 버스가 산악 지역을 올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느리기 짝이 없다.

결국 오후 1시 22분에 라리베라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의 제일의 관광지답게 삐끼들이 사정없이 달라붙는다. 삐끼들에게 찾는 호텔이름을 말하면 마치 자신이 안내하는 것처럼 행동한 후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절대 호텔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참..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별 노하우가 다 쌓인다.) 따라오는 삐끼청년에게 즐겁게 축구 이야기를 하며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Roha호텔에 가니 주인아저씨께서 반갑게 맞아준다. 라리베라 시내와 유적지가 한눈에 보이는 더블룸을 선택하니 70Birr을 부른다.

분위기를 보니 나 이외에는 투숙객이 없다. 내가 극히 유리한 상황에서 40Birr까지 깎을 수 있었다. 게스트북을 보니 1월 18일 이후에는 아무도 이곳에 투숙하지 않았다.

라리베라는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이 극성인 지역이지만 지금은 비수기라 그런 것이 거의 없다. 모든 식당과 호텔을 제 값을 받거나 오히려 더 깎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명절이나 성수기 때는 모든 요금이 2~3배로 오른다고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호텔 바로 옆에는 큰 시장이 있는데 토요일에만 열린다고 한다. 마침 오늘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모처럼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짐을 싣는 당나귀들이 시장에 모여 있고 여기저기에서 흥정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라리베라 석조교회 관람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푹 쉬기로 했다. 시장에서 토마토 1Kg(4Birr), 바나나 1Kg(5Birr)을 사가지고 와서 영양 보충을 했다.

해발 2630m 지역이라 그런지 밤에는 날씨가 꽤 쌀쌀하다. 또한 호텔 투숙객이 나 밖에 없기 때문에 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노트북에 있는 영화를 감상하며 푹 쉬었다.


1월 28일(일)

라리베라 석조교회는 11개의 성당으로 되어 있으며 12~13세기에 지어졌다. 모든 교회가 암반에 굴을 파서 만든 성당이며 팔레스티나와 이집트 기술자들이 120년에 걸쳐 만들었다. 이곳은 제 2의 예루살렘, 제 2의 페트라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 기독교의 성지이며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모든 무슬림이 평생에 한번 메카(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듯이 모든 에티오피아 교인들이 평행 한번 정도는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성지라고 말한다.

관람에 앞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Seven Oliver 호텔에 환전을 하러 갔다.

라리베라에는 은행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환전을 해야 하며 론니에는 이 호텔의 환율이 나쁘지 않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50$를 환전하면 1$에 8.2Birr을 쳐주고 10$를 환전하면 1$에 8Birr을 쳐준다고 한다. 공식 환율이 1$에 8.803Birr임을 염두 하면 거의 날로 먹자는 환율이다.

환전은 내일하기로 하고 석조교회 매표소에 가니 입장료 200Birr(21500원)을 내라고 한다. 작년에는 150Birr인데 올해 올랐다고 한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니 몇몇 청년이 가이드를 쓸 것인지 물어본다. 이곳만큼은 영어 가이드를 두고 관람하고 싶었지만 현재 내게 남은 현지돈은 70Birr이다. 이걸로 내일까지 버텨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론니플래닛에 의지하며 관람하기로 했다.

라리베라 석조교회는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있는데 매표소에서는 북쪽지역이 가깝다.

Bet Medhane Alem은 이곳에서 세로 33.5m, 가로 23.5m, 높이 11m인 이곳에서 가장 큰 교회이다. (여기서 수학 문제.. 이 교회의 부피는 얼마나 될까요? 6학년 수준^^)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침침하기는 하지만 경건한 분위기이다. 34개의 기둥이 있으며 각 기둥은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다음은 Bet Maryam교회로 갔다. 정면 입구에는 기사상이 있으며 내부에 들어가니 역시 아치형 기둥과 15세기에 그린 벽화가 보인다.  

다음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남쪽 교회를 먼저 관람 한 후 이곳으로 다시 오기로 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사실 교회의 겉모습만 보려면 입장권을 끊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겉모습만 보고 가려는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모든 교회 앞에서는 입장권을 검사하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자.

Bet Gabriel-Rufael 교회는 천국, 지옥 가는 길을 형상화 했다는데 가이드가 없는 나로서는 어떤 것이 형상화 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의미가 있는 교회구나.’라고 이해할 뿐이다.

Bet Merkorios로 가려면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반드시 후래쉬가 있어야 한다. 나처럼 없는 경우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인물 사진 찍는 모드로 맞춰놓으면 사진 찍기 앞서 붉은 빛이 쏘아지는데 그것을 후래쉬 삼아 이용했다.

Bet Amanuel 하나의 바위를 조각해서 만든 악슘 양식의 교회로 붉은빛을 띠고 있다.  

Bet Abba Libanos는 고대 기독교 지하묘지를 본 따서 지은 건물이라 느낌이 어째 으스스하다. 내부에 들어가니 관리하는 목사님께서 교회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라리베라 왕은 두 아내가 있는데 그 중에 한 아내인 Meskel Kebra의 교회라고 말한다. 특히 천정부근에 눈을 형상화한 조각이 마치 누군가 감시하는 느낌을 줘서 인상적이다.  

남쪽 지역 관람을 끝내고 따로 떨어져 있는 Bet Giyorgis 교회로 갔다. 이 교회는 라리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이며 십자가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건물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미이라이다. 교회를 사랑해서 죽어서도 교회에 남겠다는 어느 성직자의 미라라고 하며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부가 그대로 남아있다. 미이라는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면 원한다면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있다.(글세? 만져보는 사람은 있을까?)

좀 더 서쪽에는 7명의 성인 부조가 있는 골고다미카엘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십자가로 장식한 같은 모양의 창이 2개씩 있으며 창문 위는 이슬람식 아치로 장식하였다.

마지막으로 아까 못 봤던 Bet Golgotha, Bet Mikael, Bet Selassie를 둘러보았다.

Bet Golgotha에는 예수의 제자들의 부조가 보관되어 있으니 꼭 보도록 하자. 여성의 출입이 제한된다고 알고 있지만 나보다 앞서 이곳에 온 서양 여성이 Bet Golgotha에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을 봤다.

교회를 관람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신앙심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고지대인 이곳에 바위를 깎아서 교회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기독교 시각을 벗어나서 권력을 잡은 라리베라 왕이 확고한 권력 기반을 잡기 위해 이곳에 대역사를 이루지 않았나 싶다. 고려의 팔만대장경, 이집트의 피라미드, 진시황의 만리장성,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등 대공사를 통해서 권력기반을 확고히 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산등성이에 세워진 라리베라는 마을 자체가 큰 볼거리이다. 경사진 길거리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지나가며 말을 걸고 양과 염소가 온 마을을 휘저으며 먹을거리를 찾고 있다. 또한 당나귀들이 짐을 싣고 바쁘게 지나간다. 모든 사람들은 인사를 하면 잘 받아주며 친절하다. 한 가지 문제는.. 역시나.. 거지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 이번 여행에서의 유적지 관람은 라리베라가 끝이다. 마지막으로 지부티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다. 2월 4일에 두바이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1주일 안에 두바이로 가야 한다.

최다한 빨리 지부티로 가서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 표를 확보해야 한다. 과연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신발끈 부쩍 동여 메고 내일부터 강행군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