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목)

야즈드로 가는 버스가 오후 8시에 있기 때문에 오늘은 시간이 넉넉한 편이다.(오히려 너무 남는 듯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쉬라즈에서 54킬로 떨어진 지점에 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세 번째 황제인 다리우스 1세가 기원전 518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50여년 동안의 대공사 끝에 완성한 궁전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같은 이름의 왕조가 2번 더 일어났다. 가장 처음 일어섰던 아케메네스(Achaemenes)페르시아는 기원전 7세기부터 알렉산더에게 멸망당한 기원전 330년까지, 아르다시르(Ardashir)가 세운 사산왕조 페르시아 제국(Sasanian Persia)은 서기 208년부터 651년까지 이곳을 지배했고, 마지막으로 이슬람 문화의 기치를 내걸은 사파비드(Safavid)페르시아 왕조는 1502년부터 1722년까지 지속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2500년전 문명의 새벽에 꽃을 피웠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의해 건설되었다.

처음 페르세폴리스를 만든 다리우스1세(Darius I : 522-486 BC)에 대해 알아보니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리우스 1세는 전왕인 캄비세스 8촌 동생으로 캄비세스가 후계자가 없자 즉위하여 페르시아를 지배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왕위에 즉위한 만큼 주변의 반반도 많았을 것이다. 각지에서 반란이 끊이질 않자 손수 1만명의 친위군을 조직하여 19차에 걸친 전쟁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비록 2번에 걸친 그리스 정복(마라톤 전쟁)은 실패했지만 많은 그리스 폴리스(도시국가)를 지배하였다.

  다리우스는 정복왕 답지 않게 내정에서 충실했는데 광대한 영토를 20개주로 나누고 각 주마다 사트라프(Satrap)라고 하는 장관을 두어 세금과 병역을 맡겼고, 군사권은 군 사령관에게 대왕에게 전달하는 기록은 비서관에게 그 권한을 나누게 하여 권력을 분산시키고 서로 견제를 하게 하였다.

‘왕의 눈’이라고 하여 샤트라프의 행동을 감시하고 중앙정부에 연락을 담당하는 관리를 두었으며, 이를 보좌하는 ‘왕의 귀’를 두었다.

중앙집권형정부에서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교통과 통신이다.

다리우스 1세는 ‘왕의 길’이라 하여 수도 수사와 소아시아의 사르디스 사이에는 2,400 km의 길을 건설하였고, 역전제를 도입하여 각 역에는 말을 두고 역과 역 사이를 릴레이식으로 연결하여 신속하게 중앙정부의 명령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왕의 길’은 평상시에는 상인들이 이용하는 상업도로이고 전시에는 군용도로로 유용하게 쓰였다. 이 길이 실크로드의 초석이 되지 않았을까?

또한 다리우스는 화폐제도를 도입하였다. 화폐가 발달한 것은 경제적 규모가 무척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좁은 나라에서도 조선시대(1392년)에 와서야 도입한 제도를 다리우스는 무려 2500년전에 도입한 것이다.

다리우스 1세는 조로아스터교의 대한 신앙이 깊었다.

전국 각지의 기술과 재료를 총 집결시켜 파르스의 페르세폴리스에 여름 궁전을, 에람의 수사에는 겨울 궁전을 웅대하게 만들었는데 그 여름궁전이 바로 페르세폴리스이다.

정치적 수도는 수사에 두었지만 국가적인 행사와 군대 출병식 등 중요 행사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를 점령한 알렉산더는 술에 취해서 페르세폴리스를 몽땅 태우고 만다.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서론이 너무 길었네..^^;;

쉬라즈 버스터미널에서 마르브닷쉬(Marvdasht)까지 향하는 미니버스(2500리얄)을 타고 40분쯤을 가면 마르브닷쉬 시내에 내린다.

시내의 메인도로를 따라 1Km 정도 가면 커다란 로타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택시(1대당 10000리얄)를 타고 12킬로를 더 가면 페르세폴리스가 나온다.

입장료는 론니에는 30000리얄로 나와 있는데 정작 가보니 1인당 5000리얄이다. 이란 정부는 2004년부터 외국인 차별 요금 제도를 폐지하여 모든 입장권 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페르세폴리스를 보기 전 잠시 홍차를 마실 때 히로가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여행자라며 한 일본 여행자를 소개해준다.

이름은 덴도이고 나와 동갑이다. 원래는 오늘 페르세폴리스를 본 후 테헤란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냥 우리와 함께 행동하겠다고 한다. 일행이 4명으로 늘었네..

페르세폴리스에 들어서자마다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사진이나 TV에서도 자주 봤지만 정작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페르세폴리스의 유일한 입구는 크세르크세스(Xeres' Gateway)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입구에는 거대한 황소상 한쌍이 지키고 있는데 모든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위세를 느낄 수가 있었다.

입구에서 왕에게 경의를 표한 사신은 100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Palce of 100 column)로 안내되어 왕을 접견했다.

Palce of 100 column과 Hall of 32 columns는 각각 100개의 기둥과 32개의 기둥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다음은 다리우스의 보고(Treasury)에는 수많은 기둥과 파편들이 널려져 있는데 이곳에서 고고학자들은 커다란 석판을 발견했다. 처음 석판을 봤을 때는 다리우스 왕이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내용인줄 알았는데 론니에 보니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인부들에게 급료를 준다는 내용이다.

보고라 함은 창고를 뜻하는 것 같은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이곳에 왔을 때 3000개의 낙타 쌍두마차가 필요했다고 한다.(보물을 옮기기 위한 듯)

페르세폴리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파다나 궁전과 계단이다.(Apadana Place & Staircase)

다리우스 왕이 건설을 시작하여 크세르크세스 때 완공했다. 72개의 기둥 중 13개가 남아 있으며 특히 다리우스 왕과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석판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궁전의 주춧돌에는 계단이 있는데 다리우스 왕이 직접 새긴 옛 페르시아 글귀가 있다.

주춧돌 오른쪽에서부터 쭉 보니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제일 오른쪽에는 곡물이 있고, 다음은 토론을 하는 학자의 모습, 다음은 군인들이 대치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름대로 해석하기로는 많은 물자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고 많은 학자들이 페르시아의 발전에 기어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혼자만의 해석임^^;;)

다음 왼쪽에는  23개 민족의 사신이 공물을 바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당시 위세를 떨쳤던 페르시아에 대해 주변 국가들은 영원한 충성의 증표로 은과 금제품, 무기, 보석, 가축, 옷감 등 지역의 특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물건 하나하나와 사신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잘 살아있다.

또한 내가 알기로는 야만족이었던 스키타이 민족은 결국 정복하지 못했다고 되어 있지만 특이한 투구를 쓴 스키타이 민족의 모습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 궁전(Place of Darius)과 크세르크스 궁전(Xerxes' Place)을 둘러보니 기둥만 남아 있을 뿐 폐허가 되어 있었다.

옛 전성기 때는 이곳에서 매일 풍악이 울리고 잔치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궁전을 보면서도 이곳에서는 난방은 어떻게 했으며 화장실 규모와 쓰레기 처리 방법 등이 궁굼해진다.(고고학자들이 밝히기 힘든가?^^)

다음은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박물관(5000리얄)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중요한 유물들은 테헤란 역사박물관에 있다고 한다.(히로와 마크는 그래서 박물관 관람을 안했다고 함..^^;;)

페르세폴리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알타크세르크스 2세(Tome of Artaxerxes II)와 알타크세르크스 3세(Tome of Artaxerxes III)의 묘이다.

위에서 바라본 페르세폴리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요하고 아름답다. 예전에는 시끌벅적하고 분주했을 것인데..

문뜩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화려했던 시절의 이곳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강대하고 잘나가던 국가들도 언젠가는 기울어지게 되는 법..

미래에는 어느 민족이나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잡을지 사뭇 궁굼해진다.

쉬라즈로 돌아와서 피자(18000리얄)로 점심 겸 저녁을 하고, 오후 6시까지 인터넷 카페에서 여행기를 올리고 메일을 체크했다.

그리고 오후 8시에는 나와 마크, 히로 그리고 새로 합류한 덴도는 야즈드(Yazd)로 향하는 버스(18000리얄)을 탔다. 일행이 4명으로 늘어나 든든하다.

거리와 시간에 비해서 버스 가격이 싸다고 생각되었는데 Volvo 버스가 아니라 일반 로컬버스이다.

버스를 타니 20대 초반의 이란 청년들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외국인이라고 조소를 한다.

핵문제 이후 이곳 젊은이들은 외국인에 대해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을 반증하는 듯하다.

이란을 여행하기 전 모든 이란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들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비를 거는 청년들 심지어 아이들도 봤다.

뭐.. 참아야지..    

이제 며칠 안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또 바쁜 일상이 시작된다. 또한 머릿속에는 다음 여행의 설계가 시작되고 있다.

무엇보다 여행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산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올 때에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한다.

여행 끝머리에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할 시기.. 하긴 이곳에는 낙엽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