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목)

1980년대를 기억해보면 매년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회는 여러 나라 팀들을 초대하면서 한국 A팀, 한국 B팀이 나간 것이 기억이 난다. 그 중 아프리카에서 온 잠비아라는 나라를 보며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세계 지도를 찾아 봤었다. 때문에 잠비아라는 나라는 어린 시절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 나라를 찾아 올 줄이야..

잠비아는 북서부에 원류가 흐르는 잠베지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854년 리빙스턴이 이곳을 탐험했으며 1890년대에 대부분의 잠비아는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British South Africa Company (BSAC))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의 지배하에서 잠비아는 1911년 북부 로데시아(Northern Rhodesia)가 된가 동시에 막대하게 많은 구리광석 매장량이 중북부 지역에서 발견된다. 1924년 영국의 직학식민지가 되었다가 1964년 잠비아 공화국으로 독립을 하였다.

주변 나라에 비해 특이할만한 관광자원이 없는 편이라 배낭여행객들은 케냐, 탄자니아에서 남부아프리카로 넘어가기 위해 잠깐 방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전 9시 버스 탑승 전 근처 마켓에서 아침거리를 샀는데 도넛이 1250콰차, 요거트 큰병이 4800콰차로 물가가 싼 편이다. 이곳은 동전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작은 화폐 단위도 지폐로 거슬러 준다. 지폐는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어 찢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버스는 지정좌석제이며 정원이 차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안내원이 따로 있으며 신문, 음료수, 과자를 제공한다. 덕분에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쾌적한 버스 여행을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잠비아는 평온한 모습이다. 우기라 그런지 사방이 푸른 빛이 사방에 생기를 불러 넣고 있다.

15:12 루사카에 도착했다. 루사카는 잠비아의 수도로 인구가 130만명이다. 1931년부터 잠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낡은 고층 건물들이 눈에 띄고 많은 사람들로 분주한 분위기이다.

버스가 터미널에 멈추자 많은 이들이 다가와 ‘Hay Taxi?' 하면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쿠옴보카 백패커스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배낭을 찾고 걸어갔다.

쿠옴보카 백패커스에 가니 도미토리가 50000콰차이다. 이곳에서는 1$ 환율이 4750콰차 선이지만 편하게 5000콰차를 1$로 친다. 도미토리에 들어가니 여행자 배낭만 몇 개 있을 뿐 아무도 없다.

배낭을 살펴보니 아이폰 충전기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잭이 남아 있어 컴퓨터에 USB를 꼽아 충전이 가능하지만 충전을 위해 매번 컴퓨터를 켤 수는 없는법.. 일단 루사카에서 아이폰 충전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시내의 큰 시장인 Town Centre Market에 가니 노점상들이 있는데 중국산 아이폰 충전기를 팔고 있다. 이거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되는데? 일단 가격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80,000콰차를 부르더니 어느새 50,000콰차로 내려간다. 일단 급할 건 없으니 내일 와서 구입하기로 했다.

숙소에 레스토랑이 있기는 하지만 35000콰차 선으로 비싼 편이다. 역 근처에는 큰 마트가 있어 저녁거리를 사는데 동양인이 많이 보인다. 분명 한국인 것 같아서 말을 거니 한 여행사의 인솔하에 한국인 여행자 29명이 오늘 루사카에 도착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 한가운데 이렇게 많은 한국인과 마주치게 될 줄이야.. 이제 한국 여행문화가 아프리카까지 닿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숙소에 오니 어제 함께 이야기를 했던 네덜란드 청년 두 명이 도미토리에 있다. 이렇게 인연이 될 줄이야. 청년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다음일정에 대해 물어보니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에 문제가 생겨 내일 돌아가야 된다고 한다. 오늘 리빙스턴에서 루사카까지 운전을 하고 와서 그런지 많이 피곤해 보인다.  

네덜란드 여행자와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 여성 한명과 마주쳤다. 대구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케냐 나이로비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여해하는데 원래 일행이 한명 더 있었지만 탄자니아에서 포기하고 돌아가 혼자서 여행한다고 말한다.

나미비아 받기 위해 정보를 묻는데 나 역시 오늘 이곳에 온지라 알 수가 없었다. 아까 쇼핑몰에서 만났던 한국 여행자들은 차차차 백패커즈가 묵고 있다고 했었다. 우리가 묵는 쿠옴보카 숙소를 돌아서 가면 차차차 백패커즈가 있는데 루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이다.

차차차 백패커즈로 가니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있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며 인솔자를 찾아 나미비아 비자 정보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행팀에서는 나미비아 비자를 한국에서 미리 받아왔기 때문에 이곳의 비자 상황은 모르신다고 말한다.

별 소득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내일 비자를 받지 않으면 토요일, 일요일에는 대사관이 문을 닫음으로 난 말라위 비자를 대구 선생님은 나미비아 비자를 반드시 받아야 시간적인 손해가 없다. 두 비자 모두 국경에서 발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접국 대사관에서 받아야 하며, 말라위 비자 같은 경우는 비자를 받는데 3일이 걸리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내일 신청하면 다음주 화요일에 발급 받을 수 있다.

유럽, 일본, 미국.. 심지어 홍콩 여행자들은 무비자로 갈 수 있는데 유독 한국 여행자에게는 비자를 요구를 한다.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한국 여행자가 겪어야 되는 고충이 아닐까 싶다. 이곳이 알려져 더 많은 관광객이 오게 되면 보츠와나처럼 한국인에게도 무비자를 적용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월 14일(금)

오늘 최대 미션은 말라위 비자를 바로 발급 받는 것이다. 오전 7시 10분에 말라위 대사관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면 5$에 말라위 대사관으로 갈 수 있지만 내 여행 사전에 급하지 않는 한 현지 버스를 최대한 이용한다.

숙소의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기차역 근처에 Kulima Tower Station이 있는데 거기에서 현지 미니버스들이 출발한다고 한다. 거기서 가부롱가(Kabulonga)로 가는 버스편에 타면 된다고 이야기 하며 3500콰차를 내면 된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정류장에 걸어가니 많은 미니버스들로 분주했는데 사람들에게 가부롱가라고 말하니 손짓으로 버스 타는 곳을 알려준다. 지갑에 50000콰차 지폐만 있어 식사도 할 겸 정류장 앞 가게에서 계란 햄버거 2개(2,500×2)를 사서 먹었다. 말라위 대사관은 Malawi High Commission 이라고 하는데 버스 승객들에게 물어보니 서로 길을 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곳의 미니버스는 정해진 장소에만 정차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번잡하지 않고 안전한 편이다. 그래도 모객은 필사적으로 한다.

가부롱가에 도착했을 때 버스 보조원 청년이 내리라고 하는데 승객들은 거기가 말라위 대사관이 아니라며 더 가야 한다고 말하며 내리는 것을 말린다. 애꿎은 보조원 청년만 욕을 먹었다.

가부롱가를 지나고 1km쯤 가다보면 길 양옆에 주유소가 있는 사거리가 있다. 이곳에 버스가 정차를 하면 내리자마자 곧장 왼쪽 모퉁이를 돌아(북쪽 방향) 곧장 1Km 정도 걸어가면 말라위 국기가 그려진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이 말라위 대사관이다.

8시 30분에 사무실을 여는데 시작시간에 거의 맞춰서 갔다. 방명록을 보니 어제 이곳을 방문한 손님은 6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오늘 비자를 받을 수 있겠다. 대사관에는 돈과 여권만 들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물품은 경비실에 맡기고 들어갔다.

접수창구의 여직원은 까탈스럽지만 비교적 까다로운 서류 2장을 작성하는데 상세히 알려준다. 여권 카피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다른 대사관을 갈 때는 꼭 여권 카피를 준비해 오라며 직접 복사를 해 준다.

비자피 100$를 내고 사무실에서 대기를 하지 10시 정도에 말라위 비자가 나온다.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오늘 비자를 내줬다. 그 쾌감이란.. 한국 여행자만 느낄 수 있겠지?^^

대사관에서 돌아와 잠비아 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 2$를 내고 들어가니 1층에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비교적 평범한 유물들이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박물관 근처의 터미널로 가 내일 말라위로 출발하는 버스편을 알아보았다. 말라위로 가기 위해서는 국경 근처인 치파타(Chipita)까지 가야하는데 요금은 115,000콰차이다. 삐끼가 붙어 혹시 요금이 더 붙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다른 버스 회사도 같은 금액이다. 내일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입하고 터미널 핸드폰 가게에 USB 콘센트를 팔고 있어 20,000콰차에 샀는데 숙소에서 아이폰에 접속을 하니 되지 않는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보니 대구 선생님이 숙소에 돌아왔다. 나미비아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면서 빅폴로 가 폭포를 보고 곧장 남아공으로 간다고 하신다. 빅토리아폭포 도시인 리빙스턴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기 위해 함께 여행사를 찾았다. 여행사 입구에는 루사카~요한네스버그 99$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240$ 정도 한다. 리빙스턴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항공권도 비슷하다.

여행사에 들린 김에 중국산 아이폰 충전기를 구입하고(40,000콰차까지 깍았음) 숙소로 와 대구 선생님이 보관한 컵라면과 즉석밥을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의 맛을 보니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립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가면 많이 먹어야지.^^

루사카에서 볼거리가 없고 할 수 있는 활동은 별로 없다. 대구 선생님과 함께 숙소로 온 캐나다 여성은 일정상 모레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할 게 없어 지겹다고 한다. 전날까지 영국 여행자와 이야기 하다가 오늘은 영국 여행자마저 떠나자 숙소 바에서 흑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구 선생님의 여행 루트를 함께 고민하면서 둘이 있다 혼자가 되었는데 여행하다가 외롭지 않은지 물어봤다. 혼자라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덕분에 현지인들과도 친해질 수 있게 되었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혼자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며 웃는다.

‘혹시 집에서는 아프리카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 알아요?’

‘집에서 알면 난리 나요. 인도 여행 갔을 때에도 집에서 위험하다고 한바탕 했는데 아프리카에 혼자 있다고 하다니.. 지금 가족들은 제가 일본 여행하는 줄 알고 있어요.’

1달 동안 일본 여행을 했다고 집에 말하고 매일 일본에 있는 것처럼 문자를 보내는 그녀를 보면서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미토리로 돌아오니 흑인 친구들이 많다. 이 숙소는 외국인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이 이용을 하는 숙소이다. 덕분에 흑인 몇몇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며칠 비를 맞아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감돈다. 또한 내일 새벽 5시 차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뜨거운 물 샤워를 하고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