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화)

일찍 잠든 탓인지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양옆의 두 여성 역시 팬티바람으로 자고 있다. 도미토리 문화라지만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문화권인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상황. 짐을 챙기고 로비로 나왔다.
로비에는 TV가 켜져 있어 채널을 돌리는데 마침 BBC를 켜니 한국의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뉴스를 이렇게 볼 줄이야. BBC에서도 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새벽 3시 20분 어제 직원이 말한 대로 일찍 정류장에 나가니 청년 2명이 있다. 한 청년에게 마푸토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물으니 손을 벌리며 돈을 달라고 한다. 보자마자 돈부터 달라고 하다니.. 꽤 불쾌했다. 계속되는 구걸을 애써 무시했다.

영어가 조금 되는 옆의 청년에게 말을 거니 자신도 마푸토에 간다며 새벽 4시 차가 있다가 말한다. 일단은 안심.. 3시 40분이 넘자 차들이 속속 들어오고, 사람들이 첫차에 탑승했다. 난 일찍 온 편이라 가장 앞자리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정확히 새벽 4시가 되자 버스는 출발한다. 마푸토까지는 Mtc375(약 11$). 버스는 인함바네에서 사람들을 더 태운 후 M1 도로에 들어서는 속도를 낸다. 길은 일부 공사 중인 구간을 제외하면 꽤 괜찮다. 얼마전까지도 길상태가 나빴지만 중국의 지원으로 깨끗하게 다졌다고 한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쉬는데 아침 식사 용도로 500ml 초코 우유를 샀는데 우유가 아니라 요거트이다. 500ml를 다 먹어도 속에는 이상이 없겠지?

오전 7:20 Xai-Xai를 통과했다. 이제 마푸토까지 210Km.. 마푸토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과 차량들이 늘어난다.

오후 1시 45분에 마푸토에 도착했다. 운전사에게 기차역을 묻자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운전사는 걱정이 되는지 배낭을 챙기고 길을 건너는 나를 끝까지 지켜본다.

마푸토는 모잠비크의 수도로 남쪽 끝부분에 있으며 남아공과 스와질란드와 맞닿아 있다. 대항해 지도 중요 항구로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이어갔지만 20년간의 전쟁과 그에 따른 파괴로, 수도는 폐허가 된 건물과 지저분한 거리 등, 몹시 황폐한 해졌다.

도시에 들어서니 오래 된 건물이 눈에 띄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푸토 기차역을 중심으로 시내를 잠깐 둘러보았다.

기차역은 1910년에 지어졌으며 뉴스위크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건축물 10선에 뽑힌 건물이다. 이 건물의 디자인은 알렉산드라 에펠이 했다. 에펠탑을 설계한 그 사람이다. 건물 앞에는 대형 동상이 서 있다. 유서 깊은 건물이지만 지금도 활발하게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기차역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돈박물관(National Money Museum)이 있다. 멋들어진 포르투갈 양식의 하얀 건물에 들어가니 입장료 Mtc20를 받는다. 입장료를 내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마푸토에 도착할 때부터 배가 아팠는데 오전에 주유소에서 사먹은 500ml 초코 요거트 덕분에 배변활동이 활발해졌나보다. 다짜고짜 화장실에 갔는데 안에는 화장지가 없다. 청소하는 직원에게 화장지를 달라고 하니 웃으면서 가져다준다.

돈박물관은 오래 전 모잠비크에서 통용되었던 화폐는 물론 상아, 금, 철 등 현금으로 대신 쓰였던 화폐들도 전시가 되어 있다. 대륙별로 돈이 전시가 된 부스가 있는데 아시아 지역에 우리나라돈은 없고 중국 돈들로 가득하다. 중국, 홍콩, 일본 돈은 있는데 우리나라 돈만 없네? 괜시리 자존심이 상한다.

마침 배낭에 신권 10,000원짜리와 1,000원짜리가 있는데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꼭 전시하겠다고 말한다. 여행 전 정리하지 못한 한국 돈이 이렇게 의미 있게 쓰일 줄은 몰랐다. 동전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혹시나 이 여행기를 보는 분 중에 마푸토를 방문하시는 분은 동전을 챙겨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으면 한다.

뿌듯한 마음으로 돈박물관을 나와 마푸토성(Maputo's Fort)로 가니 입장료는 없고 약간의 기부금을 달라고 한다. 부담 없이 Mtc15을 기증하고 관람했다. 성은 작은 규모로 19세기에 지어졌다. 성안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조를 이뤄 관광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 대형 유람선이 정박한 것을 보아 그쪽 사람들인 것 같다. 다른 건 별로 볼 게 없고 작은 박물관이 볼만했다.

성 앞에는 많은 잡상인들이 있는데 특히 휴대폰을 사라는 친구는 꽤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휴대폰이 이미 있다고 말하니 더 좋은 거라며 싸게 준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보여주자 꽁지를 내리고 물러난다. 보아하니 누군가로부터 훔친 휴대폰을 파는 것 같은데 이곳 치안도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마푸토 항구에 들어가려니 경비가 삼엄하다. 경비원에게 항구를 둘러 볼 수 있는지 묻자 둘러보는 건 좋지만 사진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번잡한 항구를 둘러보고 잠깐의 마푸토 관람을 종료했다.(오후 12시 20분)

역 북쪽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스와질랜드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니 만지니까지 Mtc450라고 한다. 지금 지갑 상에 Mtc415밖에 없는데.. 사정을 설명하고 Mtc415에 1$를 언져 줘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어제 인함바네에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Mtc1500를 인출했는데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버스는 1시에 스와질란드를 향해 출발을 했다. 서둘러 스와질란드로 향하는 이유는 그동안 휴대폰 로밍이 되지 않아 주변에 연락을 하지 못해서이다. 다른 나라 여행자들은 그 나라의 심카드를 사서 자유롭게 통화를 하지만 내 휴대폰은 락이 걸려 있어 로밍이 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지금껏 내 휴대폰은 남아공을 제외하고는 시계로서의 기능만 했을 뿐이다. 통신 회사에서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로밍이 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기에 믿었건만 속은 기분이다.(결국 스와질란드도 로밍이 안 됨. ㅡ.ㅡ)

미니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더니 잠시 정차해 인도인 사내 4명을 태운다. 사내들은 자기네들끼리 왁자지껄 떠드는데 짜증 날 정도로 시끄럽다.

오후 2시 40분 국경에 도착했다. 이민국에서 출국 스탬프를 찍고 스와질란드로 넘어가려는데 경찰이 부른다. 경찰 2~3명이 모여 있는데 한 경찰이 처음에는 ‘Money~'하면서 돈을 요구하는데 거부하자 강하게 검문을 한다.

뻔히 여행자인줄 알면서도 휴대 가방의 지갑, 수첩, 휴대폰을 검사하더니 계속해서 폭탄 없는지 물어본다.

이 녀석 뇌물 안 줬더니 쓸데없이 꼬장 부리네.. 부아가 나서 매고 있는 가방을 풀어 경찰한테 휙 집어 던졌다. 주변 사람은 물론 경찰 자신도 놀란 모양.

‘너 왜 날 공격 하는 거야?’

이런 어이 상실한 발언데

‘공격? 공격이 아니라 그렇게 검사하고 싶으면 가방 전체 검사하면 되잖아. 너 때문에 모잠비크의 좋은 기억이 다 없어졌어.’

주변 사람 들으라고 크게 이야기 하니 경찰은 가방을 황급히 돌려주며 통과시켜준다. 꼭 강하게 나와야 알아듣나보다.(이 글을 본 분 중에 국경에서는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됨. 나 역시 상황 봐가면서 한 행동임.)

스와질란드 쪽 입국 스탬프를 받고 목이 타 음료수를 사먹으려 하는데 이곳에서는 환전이 되지 않는다. 어느 국경이든 환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스와질란드의 가장 큰 도시인 만지니까지는 차로 2시간거리인데 내가 탄 차량의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 같이 버스에 탄 모잠비크 청년 말로는 뒤늦게 버스에 탄 4명의 인도인의 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오랜 실랑이를 거쳐 4명의 인도인이 모잠비크 출국 도장을 받았지만 결국 스와질란드 입국이 거부되었다. 결국 국경 도착 1시간 반이 지난 4시가 돼서야 버스가 출발 할 수 있었다. 인도인 때문에 시간 지체하고 국경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들은 운전사는 신경질이 났는지 음료수를 사 벌컥 마시더니 빠른 속도로 만지니로 향한다.

만지니로 가는 도중 경찰의 검문이 심한데 차량 번호가 모잠비크 번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여행자인 나는 금방 통과하지만 보따리 잔뜩 챙겨 온 아줌마들은 검문을 강하게 받는다.

스와질란드는 남아공과 모잠비크에 둘러싸인 작은 내륙국가로 스와지민족의 국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인간이 110,000년 전부터 살고 있었으며 18세기 중반 다른 부족이 드라미니 왕인 응와네 3세를 공격해 남부인 현재의 퐁골라 강(Pongola River) 주변인 남부 스와질란드로 이동했다.

줄루족의 침입과 보어인들의 이동으로 압력을 받게 되자 1848년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1893년 영국·트란스발 협정으로 보어인들이 통치를 했다. 1903년 보어 전쟁 후 영국 지배로 들어가고 1906년에는 영국 보호령이 되었다.

1964년 국왕 소부자 2세 때 자치를 인정받았으며 많은 국토가 외국인의 소유였으나 라봇시베니 왕은 스와지인에게 토지를 사서 되찾도록 했으며 토지의 직접구매와 영국 정부에 의한 반환으로 왕국은 결국 땅을 되찾았고 1968년 독립을 얻어 2/3의 국토를 스와지인이 직접 통치하게 된다.

1978년에는 국왕이 입법 및 행정에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1990년 무렵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해 지며 1996년 1월에 스와질란드 노동조합 연맹이 주도하는 대규모 동맹 파업이 일어났고, 1997년 2월 동맹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계기로 총선거를 실시했다. 지금은 정세가 안정되어 있다.

수도는 음바바네이지만 스와질란드의 경제적 중심지는 만지니이다. 오후 5시 40분 만지니에 도착해 ATM에서 500릴랑게니를 뽑았다. 스와질란드 화폐 단위는 릴랑게니로 남아공의 화폐와 동일하며 남아공 화폐가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만지니에서 곧장 로밤바행 미니버스를 탔다. 로밤바(Lobamba)는 수도인 음바바네에서 약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며 현재 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Mlilwane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손젤라(Sondzela) 백패커스로 가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다. 손젤라 백패커스는 로밤바에서 국립공원 쪽으로 한참은 떨어져 있다. 시간이 없다.

로밤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다. 돌아갈 교통도 끊겼고, 난감한 상황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봐 근처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서에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하자 숙소를 알아봐 준다며 어느 정도 가격의 방에 묵을 것인지 묻는다.

‘한 200아니면 300까지?’

경찰은 그 가격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론니에 나와 있는 숙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곧바로 숙소에 전화를 했다. Matenga Craft Centre 인근에 Legends 백패커스에 전화를 하니 도미토리가 100R라고 한다.

친절한 경찰은 호송차량에 나를 태워준다. 비록 죄인은 아니지만 창살 있는 차량을 타니 기분이 묘하다. 같이 탄 청년에게 왜 경찰서에 왔는지 물어보니 휴대폰을 누가 훔쳐가서 경찰서를 찾았다고 한다.

Legends 백패커스는 꽤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무엇보다 모기가 한 마리도 없다.

숙소 주변으로는 숲이 울창해 우리나라의 자연휴양림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가장 깔끔한 숙소가 아닐까 싶다. 또한 차와 커피가 구비되어 있어 마음껏 투숙객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레스토랑과 바가 없는 것이 흠이다. 결국 안내를 받아 인근 숙소의 바에서 맥주와 콜라를 비싸게 샀다. 안내 해준 경비원에게 콜라 한 캔을 건 냈다. 오늘 이 숙소에 머무는 손님은 나 밖에 없어 도미토리이기는 하지만 거의 독방을 사용하는 샘이다.

말라위에서 강원화 선교사님과 헤어질 때 스와질란드 근처에서 활동하시는 선교사님을 소개해주신다며 메일을 선교사님에게 보냈는데, 아직 메일을 열어보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내일 메일을 체크해 스와질란드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님과 연락이 되었으면 그쪽으로 가고 그렇지 않다면 남아공으로 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