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화)

어제 밤늦게 여행기를 쓰느라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어제 자기 전에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은 타이난 시내를 관람 계획은 어렵지 않게 세울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 어디로 갈지 고민이 되었다.

타이완 제 2의 도시 카오슝, 타이완 최남단 컨딩, 동부의 중심지 타이둥(臺東)중에 오늘 어디까지 가야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일단 카오슝은 제외를 했다. 타이완의 가장 큰 항구이기는 하지만 큰 도시라 배낭여행하기에는 알맞지 않고 앞으로 남은 시간(4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컨딩과 타이둥이다. 컨딩을 들른 후 타이둥으로 갈 것인가 곧장 갈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컨딩은 제외 시켰다. 컨딩은 아름다운 해변과 풍광을 자랑하지만 명소가 몇Km 단위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타이완 동부 해변에 더 충실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프런트에 짐을 잠시 맡겨달라고 하니 흔쾌히 맡아준다.

우리나라의 경주, 일본의 교토가 그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라고 한다면 타이완에는 타이난이 있다. 1590년 중국인들에 의해 건설 되고 네덜란드인에 의해 발전 1885년 타이베이로 수도가 옮겨질 때 까지 타이완의 중심 도시 역할을 했다.

300년 이상 된 건물을 비롯해 수많은 유적과 볼거리들이 타이난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워킹투어(걷는 여행)코스를 참고하되 내가 묵은 호텔에서 가까운 유적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타이완 여행을 하면서 들고 다니는 가이드북은 ‘Lonely Planet Taiwan’과 ‘Just go 대만’을 들고 다닌다. 정확한 정보(교통, 숙소)와 지도는 론니플래닛을 보고 한글 설명은 Just go를 참고한다. 한권만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둘 다 들고 다니는 것이 더 유용하다.

오전 9시 50분에 호텔을 나와 남쪽으로 걸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쳉후앙먀오(城隍廟)로 도심 안에 위치한 화려한 사원이다. 몇몇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내부도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다.

다음으로 간곳은 Dongyue Temple이다.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는 사원이다. 타이완의 사원은 시내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위치한 것을 보아 이곳 사람들에게 불교가 생활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사원이 주로 산중에 위치해 있어서 불교가 생활화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Dongyue 사원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하러 Just go 책자에 소개된 ‘유청샤런러우위안?p커덴’ 긴 이름의 식당에 들어갔다.

이 식당은 샤런러우위안 전문점으로 새우 살을 경단처럼 빚고 쌀가루로 만든 피로 싸서 찐 음식으로 유명하다.

샤런우위안(35원)과 면(45원)을 시켰는데 역시 소문대로 제법 맛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워킹투어에 나섰다. 여신들이 모셔진 Lady Linshui's Temple은 이름답게 많은 여성들이 사원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러 온다고 한다.

바로 옆에 옌핑쥔왕츠(延平君王祠)는 명나라 애국지사로 1661년에 침입한 네덜란드인을 격퇴한 정성공(鄭成功)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타이완에서는 드문 중국 푸저우(福州)식 건축물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입장료 50원)

1624년에는 네덜란드인이 타이완 섬을 침공해서 37년간 지배를 했으나 1661년 본토로부터 당시 명나라의 영웅으로 추대 받던 정성공이 이끄는 군사에 의해 한족정부가 들어선다. 때문에 정성공은 ‘대만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파후아스(法華寺)는 300년이 넘은 사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부다상이 보이는데 아랫배가 과도하게 나왔다. 비록 불상이지만 비만이 무척 걱정이 된다. 이곳에서도 불룩 나온 배가 인덕으로 여기나 보다.

우페이먀오(五妃廟)는 새로운 청나라를 섬기기를 거부하고 그들의 왕자와 함께 자살한 한 다섯 후궁을 모시고 있다.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마침 유치원 아이들이 이곳으로 소풍을 왔는데 어디서나 유치원 아이들은 귀엽다.

이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옛 성벽(Old Wall)으로 갔다. 멋들어진 성벽을 기대했지만 건물에 둘러 싸여 겨우 형태만 유지할 뿐이다.

다이난먼(大南門)은 타이난에 있었던 14개의 성문 중에 유일하게 남은 성문이다. 일제시대에 도시 정비를 한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성문과 성벽이 헐렸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지만 옛 화포들을 볼 수 있고 성문 위로도 올라갈 수 있다.

쿵쯔먀오(孔子廟)는 타이완 최초의 공자사원으로 1655년에 창건되었으며 타이완 최초의 학교이기도 하다.(입장료 50원) 타이완 어디를 가나 공자묘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가 이곳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공자를 부정하던 중국도 최근에는 공자 띄우기에 열을 올릴 정도로 공자는 중국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쿵쯔먀오 앞에는 공원이 있는데 거대한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공원에서 쉬는 모습이 보인다. 타이난에서 부러운 것 중에 하나가 도시 어디에 가든지 시민들이 쉴만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것은 많이 배웠으면 한다.

티안탄(天壇)은 나쁜 일은 가고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오는 사원이다. 이곳에 인상적인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지전(종이돈)이다. 중국인들은 기도를 하면서 신에게 바칠 돈을 직접 태우지는 못하고 돈 대신 지전을 태우는 관습이 있다.

행운을 비는 사당답게 어마어마한 양의 지전을 바치고 있다. 다른 곳과 달리 티안탄 사원 앞에는 많은 지전가게들이 보인다.

쓰덴우먀오는 바로 관우사원(關帝廟)이다.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대단하다고 여겨진 인물이 바로 관우이다.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는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어 한나라의 부흥을 꿈꾸며 온갖 무용과 야사를 이끌어내지만 결국 100개의 화살을 맞으며 장렬하게 전사를 한다.

중국인들에게 관우는 무용, 예절, 절개, 용맹의 상징으로 신처럼 모셔지고 있다. 여기저기에 관우가 모셔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츠칸러우(赤嵌樓)는 타이난에서 가장 오래 된 건축물로서 1653년 네덜란드인들이 민중봉기를 두려워하여 쌓았다고 한다. 타이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명, 청, 일제, 국민당의 지배자들이 거쳐 갔다.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많은 서양 여행자들이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벌써 2시간 동안 걸은 나도 음료를 즐기며 잠시 쉬었다. 한국은 지금 가을이라 서늘한데 타이완은 아직 한 여름이다. 여행을 하면서 음료수 값이 만만치 않게 나간다.

츠칸러우 정면에는 청나라시대에 제조된 9개의 비석이 돌로 된 거북이 위에 서 있다. 건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계단 앞에는 다리가 잘린 석마(石馬)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말은 밤만 되면 백성들을 괴롭혔는데 다리가 잘린 벌을 받은 후에야 나쁜 짓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시멘트로 다리가 새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 안에는 네덜란드 통치 시기의 유물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통치자와 정성공의 초상도 볼 수 있다.

다톈허우궁(大天后宮)은 바다의 여신 마조(?祖)를 모시는 사원이다. 화려한 5개의 사원은 각각의 신을 모시고 있다.

여신은 양쪽에 천리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눈과 바람이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는데 이 눈과 귀는 한때 악령들이었으나 마조의 가르침에 의해 감화를 받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마조가 선행을 베푸는 것을 도와주는데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두 번째 신은 월하노인이다. 일종의 중매신으로 미혼남녀들 사이에서 숭배되고 있다. 이들은 이 중매신에게 "빨간색의 혼인실(紅線)"을 간구하거나 그의 앞에서 연지를 바르기만 하면 금방 결혼상대자를 만나게 된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그렇게 할까 하다가 나의 상대는 신에게 부탁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구하는 것이 더 떳떳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관람은 끝났지만 해안 쪽의 안핑(安平)에도 볼거리가 있기에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기차역에서 2번 버스(18원)을 타고 15분 정도를 가다보면 더지양항(德記洋行) 입구에 도착한다.

더지양항은 1867년에 영국 무역상이 세운 무역 사무소로 설탕과 장뇌를 수출했고 아편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두 가지 볼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거대한 나무가 건물 전체를 집어삼긴 집이다. 나무가 거대하게 자라면서 건물 전체를 덥게 되고 건물은 서서히 무너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다.

두 번째 건물에는 옛 타이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꾸며놓은 전시관이다. 밀랍인형이 매우 생동감이 있다. 타이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사진도 전시 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오래 머물며 더위를 달랬다.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안핑구바오(安平古堡)이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인이 건축한 3중 성곽과 대포를 갖춘 성새 터이다. 전망대에서 주변의 모습을 훤하게 볼 수 있고 옛 화포를 볼 수 있다.

건물 밑 공원에는 옛 성새 터가 있는데 마치 구석기 시대의 집터를 발굴했듯이 세세하게 발굴이 되어 있다. 짧은 역사를 지닌 타이완으로서는 300년 된 성채 터도 귀중한 문화 유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전 9시에 시작한 타이난 관람은 오후 2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제 타이둥으로 가야 하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혹시 뭐가 잘못된 것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 기다리다 보니 2번 버스가 보인다.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버스 회사에서 배차 간격을 넓혔나보다.

호텔에 가서 맡긴 짐을 찾은 후 곧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타이난에서 타이둥(臺東)으로 가는 기차를 찾으니 오전 8시쯤에 한대가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가오슝(高雄)으로 가서 타이둥 행 기차를 찾아야겠다.

가오슝으로 가는 오후 3시 42분 기차(83원)를 타고 30분을 달려 가오슝에 도착했다. 곧바로 타이둥으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니 오후 6시 50분에 타이둥으로 출발하는 기차(280원)가 있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기에 가오슝 시내로 나가보았다. 도심은 타이완 제 2의 도시답게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번잡하게 다니고 있다.

점심 식사를 거른 상태가 배가 무척 고팠다.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뷔페식 식당이 있는데 우리 입맛에도 맞는 반찬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계란프라이, 미트볼, 옥수수샐러드, 두부조림을 고르니 80원이 나온다. 저렴한 가격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혹시 가오슝 역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꼭 가보기 바란다. 역 2층의 고가 도로를 이용해서 역을 나온 후 남쪽으로 길을 건너 바로 보이는 골목으로 50m를 걸으면 五福自??館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가게이다.

오후 6시 50분 타이둥으로 떠났다. 저녁이라 차창 밖을 못 보는 아쉬움도 잠시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한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오후 9시 42분에 타이둥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지금 내린 역은 타이둥 신역으로 새로 지어진 역이다. 7Km 정도 떨어진 옛날 역에는 열차가 정차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심은 옛 역 주변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하는데 비싼 택시를 이용하기는 싫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관찰하니 역에서 나오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버스가 정차해 있다. 22원을 내고 시내로 가는데 버스 종점이 옛 역이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가면 된다.(나는 혹시 잘못 내릴지 몰라 조마조마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백패커들이 찾는다는 Gringo Hostel에 갔지만 아무도 없다. 도미토리가 200원으로 싸기는 하지만 주변이 시끄럽고 시설도 열악해 지낼만한 곳은 못된다.

옛 역 바로 서쪽에 있는 충타이(中泰)호텔으로 가니 주인아줌마가 600원을 부른다. 호텔에 손님이 거의 없는 것을 눈치 채고 간단하게 500원으로 깎았다. 아줌마는 ‘아리가또’라고 말한다.

호텔 주인아줌마를 포함해서 타이완의 거의 모든 사람은 나를 보며 일본인이 아닌지 물어본다. 내가 일본인처럼 생겼는지 일본인 여행자가 많아서 그런지 아리송하다.

여태껏 보았던 도시들과 달리 타이둥은 한산한 분위기이다. 타이완 동부는 평야지대가 없고 가파른 산악 지형이기 때문에 서부보다는 사람들이 덜 사는 듯하다. 시장에 가니 열대 과일을 3봉지에 100원에 팔고 있다. 비타민이나 보충해볼까? 모처럼 과일로 포식을 했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썼다. 이제 여행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많은 것을 얻는 여행이 되도록 다시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