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수)

타이둥은 동남부의 중심도시로서 중국인들의 초기 정착지이다. 뒤로는 거대한 산맥을 끼고 있고 앞으로는 태평양이 활짝 펼쳐져 있다.

오늘 역시 갈 길이 멀기에 오전 8시 40분쯤 호텔을 나왔다. 호텔 프런트에 아무도 없기에 짐을 맡기지 못한 채 그냥 들고 나왔다.

첫 목적지는 타이둥에서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톈허우궁(天后宮)이다. 바다의 여신 마조(媽祖)를 모신 사당으로 어제 타이난에서도 본 사당이다. 그만큼 바다에 대해 두려워하고 안전을 기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텐허우궁으로 가기 위해 쭝싼루(中山路)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타이완의 거의 모든 도시의 중심도로는 쭝싼루(中山路)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중산은 바로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을 건설한 쑨원(孫文)의 호이기도 하다.

신해혁명은 1911년 10월 10일 국민당이 부패한 청나라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을 말한다.

타이완에서 특이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년도 표기이다. 타이완의 모든 버스는 요금을 내면 즉석에서 표를 뽑아주는데 처음 버스표를 받았을 때 ‘95年 10月 1日’이라 되어 있기에 인쇄한 기계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를 탈 때마다 95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알고 보니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화민국이 선포된 1911년을 민국(民國) 원년(元年)으로 삼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타이완에서만 볼 수 있는 연호이다.

15분을 걸어 텐허우궁에 도착했다. 화려한 외관과 내부는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식상함마저 느낀다. 이곳에서 특이한 것은 마쭈 여신상은 유리로 보호되어 있는데 오직 얼굴부분만이 뻥 뚫려 있다. 왜 그럴까?

사원 바로 옆의 식당에서 만두와 햄버거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다시 온 길을 되돌아왔다.

도중에 타이완은행(Bamk of Taiean)에 환전을 하러 들어갔다.

쉽게 환전이 될 줄 알았는데 서류를 꾸며야 하고 결재를 맡아야 환전이 가능하다. 의외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타이완은 외환보유고가 세계적인 국가인데 환전이 왜 이리 까다로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폐쇄 된 옛날 기차역으로 가니 선로는 제거하고 그 위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기차역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침이지만 많은 노인들이 나와 가라오케로 노래를 부르고 장기를 두고 있다.

산 정상에는 타이둥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높은 산맥과 끝없는 바다.. 이 둘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타이둥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속초도 비슷한 환경이다.)

이제 화리엔(花蓮)으로 향할 차례이다. 타이둥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화리엔(花蓮)까지는 해안선 길이는 300km으로 해안선 바로 옆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늘어서 있다. 때문에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과 깎아지른 벼랑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곧장 화리엔으로 향하기보다는 해안의 절경을 둘러보면서 가기로 했다.

역 앞 버스터미널에서 거의 매 시각마다 버스가 해안도로로 통과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망설일 것 없이 출발.(만약 하루에 출발하는 버스가 몇 대 안되면 곧장 화리엔으로 가야만 했다.)

10시 35분에 샤오예리유(小野柳)로 향하는 버스(38원)에 탔다. 버스를 타면서 기사에게 샤오예리유에서 내린다고 이야기를 해 놓으니 목적지에 도착하자 친절히 알려준다.

샤오예리유는 타이베이 북쪽의 관광지 예리유(野柳)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기암괴석이 해변에 융단처럼 깔려 있다. 마침 먼 바다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파도가 높았기 때문에 더욱 장엄해 보였다.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주변에는 야자수가 늘어서 있어 이국의 풍취를 느끼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주차장 입구에서 다음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2시 23분이다. 지금 시각이 11시 37분이니까 5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미리 버스 도착 시각을 알았더라면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12시 31분에 버스를 타고 쳉궁(成控)으로 향했다.(129원, 의외로 비싸다.) 해안도로는 타이완 동해안의 작은 항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7번국도(동해안 도로)와 비슷한 모습과 역할을 한다.

쳉궁은 타이둥과 화리엔 사이에 있는 항구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수많은 어선들이 드나들어 해산물이 풍부한 도시이지만 오늘은 파도가 높아서 그런지 많은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다.

5m~7m(정확하지 않음) 높이의 방파제 위에 올라가니 높은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쳉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주변을 감상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구조대원 2명이 나에게 다가온다. 혹시 높은 파도에 내가 쓸려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오토바이를 타고 방파제 위로 온 것이다.

구조대원이 더 걱정을 할까봐 방파제를 내려왔다.

다음 차례는 싼시엔타이(三仙台)이다. 쳉궁에서도 보이는 암초인데 버스 정류장과 시간을 몰라 걸어서 가기로 했다.

열대나무들이 빽빽한 시골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차한대가 앞에 서더니 강아지 2마리를 내려놓은 채 그냥 떠난다. 기르던 강아지를 버리다니..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강아지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달려온다. 잠시간의 길동무가 생긴 것은 좋지만 내가 이 강아지들을 책임져줄 입장은 되지 못하기에 외면을 했다.

결국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던 현지인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강아지를 바라보더니 거두어간다.

1시간을 걸어 싼시엔타이(三仙台)에 도착했다.(오후 2시 30분) 싼시엔타이는 산신령들이 살았다고 전해져오는 암초로서 돌출된 해갑과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육지와 섬 사이에는 붉은색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 타이완 가이드북에는 빠지지 않고 소개가 된다.

직접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리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거대한 파도들이 부딪치며 굉음을 내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싼시엔타이 입구로 돌아오니 오후 2시 45분이다. 입구에서 식당을 찾았지만 보이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생선튀김 2개(1개 30원)를 사서 배를 채웠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빠시엔둥(八仙洞)으로 가야 한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빠시엔둥은 오후 5시까지 관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30분 내로 북쪽으로 가는 버스가 와야만 한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북쪽으로 가는 버스가 온다.(오후 3시 10분, 빠시엔둥까지 요금 102원) 승차하려고 하는 찰나 알리산 기차를 타면서 만났던 서양 여인 두 명과 다시 마주쳤다. 두 여인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연휴를 맞아 타이완으로 여행을 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들의 일행도 4명으로 불어나있다.(남자 1명 여자 3명인데.. 남자가 정말 부럽다.) 잠시 영어공부(대화)를 하고 다시 이별..

버스를 탄지 50분이 지나자 푸른 나무와 거대한 기암괴석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절벽이 나온다. 바로 빠시엔둥이다.

빠시엔둥(八仙洞) 12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구석기 시대 유적지이다. 지질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곳의 지형은 지표 상승과정 중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동굴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각각의 동굴은 절벽위에 걸쳐 있으며 관람로가 잘 설치되어있다.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절벽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동굴을 둘러보았다.

원시인들의 주거지터를 상상하며 동굴로 향했지만 지금은 절로 용도가 변경되어 있다. 아마 수천년이 지난 후 미래의 사학자들은 이 동굴들을 21세기 사람들이 사용하면 절터라고 설명하겠지? 대신 절벽위에서 주변이 한눈에 보인다. 글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장엄한 해안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빠시엔둥을 끝으로 오늘의 미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는 화리엔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후 5시이기는 하지만 서쪽의 산들이 워낙 높아서 금새 어두워졌다.

이러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히치를 시도했지만 무심한 차들은 그냥 지나쳐만 가고..

이러다 잠잘 곳도 못 찾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할 때 화리엔으로 향하는 버스(229원)가 도착했다. 휴.. 정말 안심이다. 버스에 승차하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걸은 거리가 상당하다.)

오후 7시 25분 화리엔(花蓮)에 도착했다. 화리엔에 도착하면 먼저 중산로(中山路)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정차 한 후 기차역으로 가는데 버스터미널이 도시의 중심지이고 숙소가 이곳에 몰려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린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거대한 함성소리가 들린다. 집회를 열고 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바로 천수이벤 대만 총통을 하야시키기 위한 집회이다.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보이는 뉴스가 천수이벤 반대 집회 내용이다. 폭력적이지도 않고 규모도 크지 않은 것 같은데 TV에서는 반대 집회를 라이브로 방송을 해 줄 정도로 호들갑을 떤다. 타이완의 주요 도시를 돌면서 집회를 하는데 오늘이 마침 화리엔에서 집회를 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TV를 켜니 오늘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뉴스로 나온다.)

분위기는 우리의 촛불 집회와 비슷하기는 한데 규모면에서는 훨씬 작다.(5000명 정도) 집회장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은 후 숙소를 찾으려고 가이드북을 펼치려는데..

어? 가이드북이 없어졌다. 론니와 Just go 둘 다 없다. 어디 갔지? 아까 버스에서 내릴 때 두고 왔나? 혹시나 해서 아까 탄 버스가 정차하는 기차역으로 향했지만 너무 멀어서 중간에 가다가 포기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가이드북을 잃어버리다니.. 이제 어쩌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혼자 여행을 하면서 짬짬이 가이드북을 봐왔기 때문에 내용을 대충은 기억하고 있다. 또한 내일은 여행사를 통해 타이루거 협곡을 여행을 해서 가이드북이 필요가 없고, 타이베이는 노트북에 들어 있는 정보가 풍부하기 때문에 여행하는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지도와 숙소인데.. 뭐 한번쯤 가이드북 없이 여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버스정류장 주변 호텔에서 600원에 숙소를 잡았고, 여행사에 타이루거 협곡 대해 문의하니 상세하게 스케줄을 알려주면서 내일 아침 8시 10분까지 오라고 한다.(1사람에 1000원)

허기진 배를 채우러 시장에 가니 만두집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만두와 면을 주문하니 양도 많고 꽤 맛있다. 역시 식당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오늘 역시 힘들게 여행한 날이다. 걸어간 거리도 꽤 되고 가이드북도 잃어버리고..

그래도 발품을 팔았기 때문에 타이둥에서 화리엔까지 중요한 지점은 다 돌아볼 수 있었다.  힘들게 여행한 만큼 오늘의 경험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이 값진 것이다.

비록 물질적이지는 않지만 난 여행을 보물이라고 여긴다. 여행에서의 경험은 바로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어떤 보물을 건질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보물은 더 많아지게 되고 마음은 더욱 부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