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토)

노트북을 찾아서 그런지 다시 여행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이란을 떠나는 것 보다는 다음 이란 여행 때 여유 있는 여행할 수 있도록 한쪽을 미리 봐두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여행은 서쪽인 터키에서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동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테헤란은 오래 머물기에는 정말 지옥 같은 도시이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명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길을 건널 때 대부분의 차량이 신호를 지키지 않고 보행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와 사인이 잘못 맞으면 차에 치일 가능성이 크다.

오죽하면 론니에서 이곳에서 길을 건너는 것은 러시아룰렛(6개의 권총 구멍에 총알 하나를 장전한 후 돌려서 머리에다 쏘는 게임)이라고 할까..

어서 테헤란을 떠나고 싶지만 그전에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여행사가 모여 있는 Darvazeh Daulat역 주변으로 갔다. 이란 지하철은 최근에 지어졌고 한국 못지않게 깨끗한 시설이다.

이란 정부 역시 테헤란의 교통 문제가 심각함을 인식하여 지하철로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지금은 1,2호선과 5호선 일부가 개통되었고 앞으로 9호선까지 만든다고 한다.

여행사에 가서 서울행 비행기티켓을 알아보니 가격이 다 비슷하다. 제일 싼 티켓은 이란항공으로 4720000리얄(522$)이다. 1년 오픈 왕복 티켓은 9150000리얄이다.

한국에서 이란 행 편도가 70~80만원, 왕복이 130만원선임을 감안할 때 무척 싼 금액이다.

이란항공은 매주 일요일 19시 50분에 서울행 비행기가 뜬다. 그러고 보니 내일 서울로 떠나는 비행기가 있네.. 그냥 내일 갈까?

잠깐의 유혹이 있었지만 다시 마음을 다지고 2월 5일(일)에 출발하는 티켓을 끊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

비행기 표는 신용카드로 결재를 하려고 했는데 이란에서는 미국과의 정치적인 문제로 비자나 마스터 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

결국 달러 현금으로 지불해야 했는데 522$를 지불하고 나니 남은 금액은 145$이다. 남은 돈으로 8일을 버텨야 하다니..

처음 1500$를 가지고 여행을 했으니까 그동안 840$ 가지고 30일 동안 볼 것 다 보면서 잘도 여행을 했다.

역시 이번 여행도 끝까지 나에게 미션을 준다.

이번 미션은 ‘8일 동안 145달러를 가지고 열심히 여행하기..’

여행사 근처에 있는 은행에서 100$를 환전을 하니 1$에 9127리얄은 준다. 보통 1$에 9050을 주는 것에 비해 많이 주는 편이다.

테헤란에 와서 처음 이란피자를 먹었는데 맛이 꽤 괜찮다. 피자, 콜라2잔, 감자튀김 이렇게 시켜먹으니 35000리얄이 나온다.

한끼 식사로는 먹을 만하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챙긴 뒤 곧바로 남쪽 버스터미널로 갔다.

이란 남동쪽에 있는 유적지 쿠이카제(Kuh-e-Khajeh)에 가기 위해서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테헤란에서 자헤단(Zahedan)까지 버스를 타고 20시간을 가야하고 자헤단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자볼(Zabol)까지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더 가야하는 여정이다.

오후 2시..

자헤단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도 버스에서 자게 되었다.


1월 29일(일)

이제 버스에서 선잠을 자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한 자세로만 자게 되면 허리와 관절에 좋지 않으므로 자주 앉는 자세를 바꿔가면서 자면 된다.

오전 9시쯤 자헤단에 도착했다. 자헤단은 파키스탄 국경에 인접한 도시로 오래 전에 세워졌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다.

터미널에서 곧바로 자볼(Zabol)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자볼로 향하는 길은 산악지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중앙아시아와는 달리 이란은 도로가 잘 닦여 있다.

북쪽으로 4시간을 달리자 자볼이 나온다. 자볼은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도시이고 여행자들은 거의 오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에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모여든다.

목적지인 쿠이카제(Kuh-e-Khajeh)까지 가야 하는데 택시기사들은 30000리얄~70000리얄까지 부른다.

반대편 대로에서 쿠이카제 마을까지 가는 미니버스(1000리얄)를 찾을 수 있었다.

미니버스은 30분을 달리니 종점에 도착한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론니 플래닛을 보니 종점에서 4킬로를 더 걸어야 목적지인 쿠이카제까지 갈 수 있다고 써 있다.

아스팔트길이 쭉 나있기는 한데 모래 폭풍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사막의 미아가 되는 것 아니야?

그런 걱정도 잠시.. 30분 정도 걷자 저 멀리 거대한 산이 나타난다. 그러나 산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쿠이카제섬이다.

지금 내가 걸어 온 길이 사막길인 줄 알았는데 사실 사막길이 아니라 바로 하만(Hamman)호수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온 것이다.

지금은 건조기라 호수가 말라 있지만 우기가 되면 다리 밑까지 물이 차오른다.

쿠이카제는 중국 신장지역에서 시작되는 천산남로의 끝머리에 위치해 있으며 섬 전체가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다.

섬에 바로 들어서면 파괴된 옛 도시를 볼 수 있는데 바로 2000년 전 파르티나인들의 도시인 가가사르 이다.

투르크멘에 위치한 멜브, 니사유적지와 마찬가지로 가가사르는 오직 폐허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찾는 이가 거의 없고(오늘 외국인은 나 하나인 듯) 거의 방치 되다시피 하다.

진흙으로 지어진 성과 집들은 오랜 세월 비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집과 성벽과 건물의 형태는 어느 정도 남아있다.

유적지 중앙에 들어서자 노란색 텐트가 보인다.

다가가니 현지인들이 반겨준다. 그들은 테헤란 북쪽 도시에서 놀러왔으며 마침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이 케밥(양고기)를 먹자고 했지만 일단 섬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어 나중에 내려와서 먹겠다고 했다.

쿠이카제가 외진 곳이기는 하지만 2000년 넘은 소중한 유적지인데.. 지키는 이 하나 없고 피크닉 온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다니..

정상에는 또 다른 성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섬 주변 풍경이 다 보인다.

마치 호주의 에어즈록(가본적은 없지만) 보는 듯하다. 섬에서 주변을 관찰할 수 있으며 호수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중요한 군사 요지였을 것이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평소와는 달리 유적지에 오면 고고학자나 역사 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나름대로의 가설과 추리를 세우고 유적지를 둘러보며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여행의 또 하나의 재미이다. 가끔은 저널리스트(기자)가 되기도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자 아까 만난 젊은이들이 텐트에 들어와 케밥(양고기)를 먹으라고 한다.

오늘 한끼도 안 먹은 상태라 반가웠다.

하늘이 나를 위해 이렇게 식사를 대접해 주는구나..

그들은 양고기와 난을 대접해 주면서 분홍색 음료를 나한테 내민다.

이게 뭐지? 라벨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기는 한데..

컵에 따라서 한잔 쭉 들이키는 순간...

헉... 보드카다..

이란에서 술을 먹을 줄이야..(금지되어있음)

또한 그들은 식사를 마치자 텐트 입구를 잠그더니 담배 비슷한 것을 꺼내서 흡입한다.

나보고도 흡입해보라 하지만 마약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사코 거절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마을을 향해 걸었다.

올 때는 몰랐는데 꽤 긴 다리이다.(4Km)

다시 마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계속 나를 따라다니면서 알 수 없는 말로 뭐라고 하고 자꾸 내옷과 배낭을 잡아당긴다.

일단 무시를 하고 계속 걸어가니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

이것들이..

한국 같았으면 가만두지 않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곳이라 얼른 피했다.

다행히 한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바람에 겨우 상황이 종료되었다.
저녁이라 그런지 미니버스가 오지 않는다. 자볼까지 히치를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사막에서 밤을 새는 건 아니겠지?

1시간을 더 걷자 차 한대가 내 앞에 선다.

아까 케밥을 나눠먹은 청년들이다. 그들은 여기까지 걸은 나를 보며 눈치이다.

덕분에 자볼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자볼에서 자헤단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니(10000리얄) 오후 5시..

테헤란 기준으로는 늦은 시각이 아니지만 한참 동쪽에 있는 이곳에는 이미 어둠이 깔린 시각이다.

다시 4시간을 달려 자헤단에 도착하지 저녁 9시..

곧바로 택시(8000리얄)를 타고 시내 외곽에 위치한 Abuzar Hotel(40000리얄)에 자리를 잡았다.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같은 건물에 식당이 있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 알뜰한 여행자들은 지낼만 하다.

국경도시라 그런지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출현에 경찰까지 떴다. 뭐 잘못한 것은 없으니까..

여권을 맡겨야 한다는 호텔 종업원의 말에 여권을 던져주고 방안에 들어가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