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수)

새벽 6시쯤에 쉬라즈에 도착했다. 지금 곧바로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 것은 돈 낭비이다.(어제 날짜 체크인이 됨으로)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날이 밝은 후 체크인을 하면 오늘날짜 체크인이 되기 때문에 내일 하루치 숙박비만 내면 된다.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1시간이 늦었지만 버스를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되어서 고마웠다.

도중에 버스를 장시간동안 검문한 경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의외로 검문이 심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안 건드린다.)

버스 짐칸에서 짐을 꺼내자마자 일이 발생했다. 버스안의 기름통이 업질러져 내 배낭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배낭과 그 배낭을 메느라 잠바가 기름 냄새로 진동했다. 여행 마지막 액땜이라고 생각해야겠다.

터미널에서 시내 중심까지는 1.5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택시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없었다.

숙소는 시내 중심에 위치한 Tools Hotel에 잡았다. 3명이 머물 수 있는 방이 90000리얄(1만원)이니까 한사람 앞에 3만리알씩만 내면 된다. 여러 명이 여행하면 이런 점이 좋다.

짐을 풀자마자 샤워를 하고 기름 묻은 배낭과 옷을 세탁했다.(그래도 여전히 기름냄새가 남)

쉬라즈는 테헤란에 비해서 도시 분위기가 쾌적한 편이다. 차량 숫자도 적은 편이며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아침은 샌드위치로 떼웠다.

이란은 교통비와 더불어 먹거리 역시 저렴하다.

샌드위치는 2500리얄(300원)에서 4000리얄이면 먹을 수 있으며 음료수는 1000리얄(110원)에서 2000리얄 사이이다.

피자는 작은 크기가 10000~12000리얄 사이이며, 우리나라 레귤러 사이즈의 피자는 18000~20000리얄(2000원정도)이다.

특히 이란 피자는 직접 만들어서 구워내기 때문에 피자헛 같은 인스턴트 피자에 비해 더욱 맛있다.

이란인들에게 어느 도시가 가장 멋진지 물어보면 많은 이란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도시가 바로 쉬라즈이다.

페르시아 문화를 담뿍 담고 있는 쉬라즈는 일찍이 실크로드의 요지로서 교육, 의료, 시, 장미, 와인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사산조 페르시아부터 시작해서 중요 도시로 성장했으며 특히 몽고, 티무르 시대 때는 성공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른 실크로드 도시보다는 파괴가 덜 되었기 때문에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나와 히로와 마크 이렇게 다국적 3인방은 아침식사를 하고 쉬라즈 관람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카림카니 아르게(Arg-e Karim khani)이다.

밤성도 아르게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이란에서는 성을 아르게라고 부른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르크라고 부르니까 성을 부르는 호칭에도 약간의 민족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멋진 외형을 관람한 후 성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히로와 마크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혹시 입장료 아낄려고 하나?

나 혼자 2000리얄(210원)을 내고 들어가니 페르시아식 건물과 정원이 멋들어지게 나를 맞이한다.

건물 안에는 왕이 외국 사신을 영접하던 밀랍인형 전시실이 있어서 볼만했다.

흑백사진 전시실에서는 수많은 옛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안내원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나를 전시실 안의 컴퓨터로 안내해준다.

컴퓨터를 켜니(모니터가 LG라 자랑스러웠음) 각 건물과 사진을 클릭하면 그에 대한 영어 설명이 쭉 펼쳐졌다.

밖에서 마크와 히로가 기다리지만 않았어도 더 보고 가는 건데..

14m 성벽으로 둘러쌓인 성벽을 바라보다 한 성루(탑)가 기울어진 것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을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이곳에서도 부실공사가 이루어졌나보군..(그래서 지질 검사는 중요한 것이여)

다음은 아르게 바로 옆에 있는 Pars 박물관으로 갔다. Pars는 지방 이름으로서 페르시아라는 어원도 바로 Pars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많은 소장품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지만 마크와 히로는 테헤란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가면 충분하다며 발길을 돌린다.

1773년 카림 칸이 레전츠(Regent's Mosque)모스크는 아름다운 청색 타일로 덥혀 있으며 남쪽 건물에는 48개의 기둥과 아치형 천장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점심시간이라 몇몇 사람들이 모스크에 와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크와 히로에게 남쪽의 모스크와 메드레사가 있는 유적지로 가자고 하니 다른 지방에서 모스크와 메드레사를 많이 봤다면서 내일 차편을 알아볼 겸 터미널로 가자고 한다.

그래도 쉬라즈까지 왔는데..

이들은 나와는 여행스타일이 완전히 틀리다.

하지만 어쩌겠어.. 지금 와서 따로 행동하기는 곤란한 입장이다.

쭉 걸어서 터미널까지 왔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란의 버스는 회사제로 되어 있어 차편을 예약 할 수 있다. 내일 쉬라즈에서 야즈드로 가는 오후 8시 버스표를 끊었다.

이제는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쭉 걸었다. 2월이기는 하지만 기온이 20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어느새 잠바를 벗고 반팔차림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맘자데혜 알리 이브네 함즈(Imamzadeh-ye Ali Ebn-e Hamze)<--이름 길다..^^;;

10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계속 고쳐지어졌는데 지금의 모습은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건물의 돔은 양파 모양과 파란 타일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료들은 사진만 찍고 곧바로 북쪽으로 출발.. 나도 따라서 출발..

북쪽의 Quran 스퀘어에서부터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낮인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연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곳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인 듯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거의 650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숫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까먹었음.. 그 정도 될 것임)

땀을 흠뻑 흘리며 정상에 올라가니 쉬라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에서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와글거리는 소리로 항상 시끄러운데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쉬라즈는 고요 그 자체이다.

아름다운 쉬라즈 시내를 사진에 담고(물론 가슴에도 담고) 산 중턱의 카페에 가서 차한잔을 했다.

산 중턱에는 동굴이 있는데 이곳을 꽤 멋들어진 카페로 꾸며 놓았다.

많은 연인들과 젊은이들이 카페에 와서 차와 담배를 즐긴다.

여기서 말하는 담배는 이란 특유의 문화인 것 같은데 호리병 같이 생긴 병에다가 액체를 집어넣고 호수를 통해 흡입을 하는 것이다.

꽤 대중화 되어 있는데 어떤 맛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이란 특유의 문화이다.

우리 셋은 동굴 안에서 차한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히로는 일본에 대해 꽤 자부심을 많이 가진 듯하다. 일본인이 무비자로 통과 할 수 있는 나라(생각보다 꽤 많다)를 나열하고, 일본의 회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뉴질랜드인 마크는 일본이 아프리카나 가난한 나라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서 세계에서 이미지가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히로는 중국과 북한(남한은 나를 배려해서 뺀 듯)과는 트러블이 많다고 하며 그들이 왜 일본을 왜 못살게 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난 히로에게 일본의 역사 인식과 우경화에 대해 쭉 나열하고 싶었지만 내가 열을 내고 이야기해봤자 히로의 생각이 바뀔 가능적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어 관뒀다.(영어도 서툴고..)

현지 이란인들은 우리 셋이 길을 갈 때면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어쩔 때는 귀찮기까지 하다.

특히 20대 초반을 전후한 젊은이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며 외국인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말은 툭 던지며 서로 키득거리는 모습은 보기가 안 좋다.

더 나아가 외국인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한 이들도 있다. 아무래도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몇몇 나라들이 이란 핵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이란을 건드리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이란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이사회로 넘어갔다는 뉴스를 봤다.

패권주의로 가득 찬 미국의 네오콘들이 이제 화살을 이란으로 돌리는 듯하다.

이란은 국제기구로부터 핵사찰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핵개발을 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이란을 괴롭히는 이유는 뭘까?

이란은 세계에서 4번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또한 이슬람 국가를 지향한 정치적 안정으로 주변 이슬람 국가들에게 점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중동지방에서 우방을 만들기가 힘든 입장이다. 몇십년 동안 이슬람을 배척하고 이스라엘을 지원해 온 것이 석유 확보가 중요해진 지금에 와서는 미국에는 해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군사적으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무자비한 독재자인 카리모프(우즈베키스탄), 니아조프(투르크매니스탄)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이란핵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기에는 많은 있다.

첫째, 이라크의 후세인과 아프간의 탈레반처럼 자국 국민에게 무자비하게 독재를 휘두르는 독재자가 이란에는 없다는 것. 이곳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둘째, 이라크는 10년 동안의 경제제재로 군사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쟁을 치뤘지만 이란은 이 지역에서는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이라크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과 후세인 반대파, 아프간에는 북부반군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란에는 미국이 이용할 수 있는 소수민족이나 반대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넷째, 이라크전의 거짓 문건으로 이미 미국의 정보문건에 대해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이란에 대한 문건은 과연 국제 사회에서 믿어 줄까?

다섯째, 이란과의 전쟁 발발시 석유 값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르는다는 전망이 있는데 과연 국제사회가 용인을 해줄까?

여섯째, 현재 이라크에서 빌빌대고 있는 미국이 과연 이란과의 전투를 벌일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 대한 도덕성을 상실해 군대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을 구하기가 힘들다.

일곱째, 1979년 미국을 등에 업고 국민들을 괴롭힌 팔레비 왕조를 혁명으로서 뒤엎은 이란 국민들이 다시 미국이 돌아온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다.)

여덟째, 이란정부의 통제 하에 이란 내에는 테러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은 국제사회에 대해 한번도 테러나 해악을 끼친 적이 없는데 전쟁을 통해서 새로운 테러 집단을 만들게 되면 미국이 감당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결론은 아무래도 경제제재를 통해 이란을 압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라크 쿠웨이트의 서쪽과 동쪽의 아프간, 그리고 남쪽의 걸프만으로 공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이라크의 상황이 안정적이지가 못하다.

공산체제 붕괴이후 인류는 진정한 평화를 꿈꿨지만 그보다 더 혼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사람과 국가는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1인자를 견제하거나 감독해줄 세력이 없다면 그 1인자는 언제나 폭주한다는 것..

저녁식사를 하고 곧바로 인터넷카페로 가서 밀린 여행기를 올렸다.

방안에는 아침에 버스에서 묻은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내일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페르페폴리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