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수)

출발 예정시각은 9시 30분이지만 그전에 환전을 하러 밖으로 나섰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100달러씩 모아 환전을 한 돈이 남아있지만 3주 가까운 긴 여행을 위해서는 충분한 현지 화폐를 확보해야 한다.

지방에서도 달러 환전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환율이 무척 나쁜 편이다.

환전소에 가니 1$당 1170으로 다시 올라 있었다.

UB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야인시대라는 식당이 있는데 그것에서 김치 5Kg(20000투그릭)을 샀다. 10Kg을 사고 싶었지만 식당 아주머님이 미안해하시면서 5Kg만 팔수 있다고 하신다. 식당도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나고 우리가 탈 랜드크루저 앞에서 짐을 놔두고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록 기사가 오지 않아 김사장님의 몽골인 사모님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탈 차는 랜드크루저가 아니라 러시아제 봉고차다. 이건 말이 다르잖아..

물론 랜드크루저를 어제 지불한 가격에 빌리는 것은 거의 거저나 다름없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이 다른 것은 불쾌하다.

김사장님은 이미 북경으로 떠나 안 계셨기 때문에 난 몽골인 사모님께 왜 약속이 다르냐고 물어보니 사모님 대답은 김사장님이 절대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몰아세우며 화를 낸다.

오히려 주변에 차를 기다리는 외국인에게 영어로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며 우리를 몰아붙인다. 사람 바보 만드는 건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 받기는 하지만 이미 사정이 이렇게 되었고 여행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말자며 형준이가 나선다. 다행히 대화 도중에 몽골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오셔서 중재를 잘 해주신다.
이제 와서 취소하기도 그렇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와 함께 할 기사는 이름이 에케메이고 옆집 아저씨를 보는 듯한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다. 에케메는 자신의 가족들도 같이 여행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3주 동안 외국인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몽골인 기사에게는 고역이리라. 자동차 여행은 무엇보다 기사의 심리가 안정되어야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이 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또한 우리끼리 여행하는 것보다는 몽골인 가정도 함께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여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에케메 부인은 이름은 ‘나라’, 5~6세 정도로 보이는 아들은 ‘오토코’이다. 이미 여행준비는 다 해왔다.

차량에 짐을 실었으니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 차량 여행을 하면 게르(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해주지만 점심 식사를 비롯해 혹시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가 직접 해먹어야 함으로 한국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울란바토르에서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숙소에 가까운 MK마트에서 꽁치통조림, 고추장, 간장 등 한국 음식을 샀다. 또한 게르 안에서 놀거리를 위해 고스톱도 샀다.^^

다음은 현지인들도 이용하는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곳은 다른 가게에 비해 식료품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어제 회의를 하면서 사야 할 것을 미리 적어놓았다. 무분별하게 식량을 사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샀다.

마트를 둘러보니 한약방에서나 볼 듯한 보약팩이 있고 한국말로 ‘염소엑기스’, ‘말엑기스’라고 적힌 문구가 보인다.

건강과 정력에 좋다는 어떤 동물도 먹는 몬도가네 민족 한국인의 유명세가 이곳 마트까지 미친 것이다.

차량은 공항 앞 주유소에 멈추더니 기름을 넣는다. 무려 200리터의 기름이 들어간다. 에케메는 이정도 되면 1000Km 정도 갈 수 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니 끝없는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위에는 가축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12시 30분경)

마치 대관령 목장에 온 듯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대관령 목장에 비해 말도 안 되게 클 것이다.

공항에서 조금 더 가자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비포장도로라고 해봤자 초원 위에 차량들이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인데 갈림길도 많고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순전히 운전자의 경험으로 다녀야 한다. 몽골에서는 랜터카를 이용해서 다니기가 무척 힘든 환경이다.

아마 이 길은 예전에 유목민들이 중국으로 쳐들어갈 때 지나갔던 남정로 이었을 것이다.
고개 정상 위로 오르자 돌무더기들이 보이고 주변 초원이 한눈에 들어왔다.(오후 1시 50분)

여행기를 쓰면서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서 남기는 것이다. 초록빛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장관이 주변에 펼쳐졌는데 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홈페이지 사진 참조)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 3명이서 마유주를 팔고 있다. 1리터당 500투그릭이다. 마유주를 2리터를 샀다.

마침 목동들이 가축들을 몰고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차가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초원길이라서 목동들이 우리 일행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다가온 듯하다.

고개를 넘고 내려 오다보니 출출하다. 점심은 언제 먹나..?

우리의 배고품을 알았는지 기사 에케메는 초원에서 차를 세운 후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이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오후 2시 20분)

에케메 가족은 빵에다가 소시지와 피클을 얹어서 먹었고 우리 일행은 라면을 끓여먹었다. 초원의 바람에 세차서 차안에서 라면을 삶았지만 불기만 할 뿐 익지를 않았다. 그래도 시장기가 반찬이라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고 다시 남쪽을 향하여 출발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초원은 점점 녹색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서서히 고비사막으로 들어선다.(그래도 아직까지는 초원인것 같다.)

오후 4시경 저 멀리 우물이 보인다. 우물은 건조한 지역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유목민들의 생명줄이다. 그건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 유목민 청년이 양과 소를 끌어 이곳 우물에서 물을 먹인다.

양들은 물을 먹을 때 ‘킁’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차는 다시 내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계속 되는 차량 여행이 지겨워지기 작할 할 오후 6시 30분 산 정상에 멈춘다. Baga Gazrin Chuluu(해발 1768m)이다.

몽골 제국 이후 몽골 고원의 주도권을 두고 할흐족과 오이라트족이 큰 전쟁을 벌였는데 이곳이 피난처였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승려들의 수도를 하는 곳으로 쓰였다. 여기저기 커다란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은신하기에는 딱이다.

주변에는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고 위로 올라가면 커다란 낭떠러지에 다다른다.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서 주변의 아름다운 바위산과 계곡을 감상했다. 마치 그랜드캐넌을 온 듯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가 나의 감상을 망쳐놓았다. 높은 고도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재용이와 비를 맞으며 차로 돌아왔다. 그래도 멋진 감상을 했다.

오후 8시에 Sum Khokh Burd에 도착했다. 이곳은 호수 가운데 섬이 있고 10세기에 섬 가운데 사원을 세웠다. 150년 뒤에는 성을 쌓았으며 아마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바로 옆에는 호텔(6000투그릭)과 게르가 있는데 호수를 볼 틈이 없이 건물로 들어갔다. 에케메는 호텔에 6명의 솔롱고스가 있다고 한다. 솔롱고스는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뜻으로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나와 상걸이가 2인실을 쓰고 재용, 형준이가 3인실을 썼다.

우리가 동시에 도착한 서양 여행자는 3일실을 쓸까하다 게르로 발길을 돌린다. 한국인 여행자는 여자 4명 남자 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일 동안 여행하고 내일이면 울란바토르로 떠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야 시작인데..

형준이가 주최하는 저녁 만찬은 3인실에서 열렸다. 만찬이라고 해봤자 햄과 양파 김치를 넣은 부대찌개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맛은 꿀맛이다. 에케메와 오토코도 함께 와서 부대찌개 맛을 본다. 에케메의 연발되는 감탄사가 이어진다.

약 3주간의 탐험 중에 하루가 지나갔다. 어떠한 여행이든 하루가 지나면 어느 정도 여행에 대한 분위기가 파악이 된다.

험난한 사막여행이지만 대한민국의 열혈청년인 나와 형준, 상걸, 재용의 몽골 탐험은 쭉 이어질 것이다.

총 이동거리 - 26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