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목)

북쪽으로 향할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간다. 8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날 즈음에는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론니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체체르렉은 몽골역사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던 곳이다.

테무친(칭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친을 혼인시키기 위해 옹기라트족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테무친은 고난의 세월을 지내게 되고 그러한 세월이 테무친을 이곳의 대칸인 칭기스칸으로 만들고 나아가 세계적인 대제국을 만들게 된다.

오늘은 몽골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White lake(하얀 호수)까지 코스가 정해져있다.

White lake에서 2~3일정도 머물 예정임으로 체체르렉에서 식량보충을 해야 했다. 곧장 시내 슈퍼마켓으로 갔다.

2군데를 들렸는데 이곳 슈퍼마켓은 비교적 규모가 크고 계산도 바코드로 계산한다. 그렇지만 과일과 야채, 햄을 사지 못했다.

슈퍼 주변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형준이와 내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다. 정육시장에 들어가니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형준이는 코를 막으며 발길을 돌아서지만 내가 정육시장 한구석에 있는 야채가게를 발견하자 마지못해 들어온다. 양배추(1개), 감자(2Kg), 양파(1Kg)을 샀다.

햄 통조림을 발견하기 힘들었지만 시장을 돌아다니다보니 소가 그려진 햄 통조림을 살 수 있었다. 일단 6개를 샀다.

비타민을 보충해줄 과일은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번도 과일을 못 먹었다.

오전 끝없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북쪽으로 달린다. 남쪽에 비해 관광객을 실은 마이크로 버스(러시아제 승합차)들이 늘어났다. 가끔 마이크로버스끼리 속도전이 벌어지곤 한다.

쭉 관찰해보니 에케메의 실력은 상위권 정도는 된다.

12시 반이 되어 한 언덕에 잠시 멈췄다. 언덕에서 2m가 넘는 독수리가 활공을 하고 있다. 나도 저렇게 날아봤으면..

오후 2시 5분이 되어 에케메는 차를 한 식당에 멈춘다. 이곳 식당 메뉴는 국수인데 1100투그릭 씩 한다. 에케메 가족에게 2그릇 시켜주고 우리도 2그릇을 시켰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허기졌었는데 슈퍼에서 산 빵(250투그릭)과 정어리 통조림(1개당 500투그릭)을 깠다. 빵에다가 정어리를 얹어 먹으니 살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국수가 나왔는데 양고기 냄새가 심해 먹기가 힘들었다. 짬통(군대 용어로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통)이라는 별명을 가진 상걸이는 혼자서 1그릇 반을 다 먹는다.

식사를 하고 식당 밖을 나오지 저 멀리 3명의 여인이 양산을 쓰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귀부인도 아니고... 서양인인가?

서양인인줄 알고 우리끼리 흉을 보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국인이다. 저렇게 피부가 탈것이 걱정되면 왜 몽골 여행을 하고 다니는지.

오후 3시 56분에 Chuluut canyon(출루웃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으로 뛰어가니 아슬아슬한 절벽이 펼쳐진다. 미끄러져 떨어질 때에는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오랜 세월 강의 흐림이 단단한 용암대지에 계곡을 만들었을 것이다. 멋진 장관 뒤로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계곡에서 20분 정도 달리니 파란색 하닥(이곳 사림들이 소원을 빌 때 나무에 거는 긴 천)아 잔뜩 걸려있는 나무에 도착한다.

주변 나무에 비해 큰 나무라 무척 오래되고 이곳 사람들에게 신성시 되는 나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한 모습이다.

하닥 사이로는 많은 돈들이 걸려있다. 저걸 다 걷으면 꽤 많은 금액이 나올 텐데.. 잘 못 걷었다가는 신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겠지~

오후 5시 36분 Tariat(타리앗)마을에 도착했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이스크림은 딸기 맛이기는 하지만 마유주 맛이 난다.

차간누르(Tsagann Nurr)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다. 1인당 3000투그릭이지만 약간의 아양으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편법이라 여행기에 자세히 못 실음^^)

도로가 점점 험해진다. 오후 6시에 산악을 올라가던 에케메가 차를 멈추더니 산위를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한다.

Khorgo Uul Volcano은 화산 폭팔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주변은 현무암지대로 되어 있고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산 정상으로 가면 거대한 분화구를 볼 수 있다. 후배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산을 뛰어 올라갔더니 폐가 ??길 듯이 아프다.

높은 고지대에서 뛰는 것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 앞으로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분화구는 깊게 패여 있어 내려가기가 힘들었지만 분화구 위에 서 볼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약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형준이는 힘들어서 위에서 쉼)

분화구 중심은 많은 오보(돌탑)들이 쌓여 있다. 나도 몇 개의 오보에 돌을 쌓았다. 내가 쌓은 오보는 수 백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겠지?

분화구 주변에서 작은 돌들을 모았다. 여기 돌들은 화산이 폭팔 할 때 나온 현무암들이 그대로 있다. 무게가 꽤 가볍다. 돌아가면 우리반 아이들 과학 교재로 쓸 것이다.

오보를 쌓으면서 나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는 기분이 든다. 다시 정상에 올라와 보니 저 멀리 아름다운 호수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인 Tsagann호수에는 오후 7시가 넘어 도착했다. White Lake라고 불리며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자랑한다.

저녁 식사는 김과 햄 통조림을 밑반찬삼고 양배추를 삶아 고추장에 찍어먹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만찬을 뚝딱 준비하는 형준이의 솜씨에 다시한번 감탄했다.

총 이동거리 - 170Km


8월 4일(금)

투어를 하면서 겔에는 1인당 4000투그릭을 준다. 여기에는 아침, 저녁 식사 1000투그릭이 포함되어 있는데 양도 적고 메뉴도 열악하다. 아침, 저녁 식사가 제공 되더라도 다시 우리가 식사를 해서 먹는다.

때문에 앞으로는 겔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1인당 1000투그릭이니까 하루 4000투그릭이 절약되는 셈이다.

모처럼만에 차량이동을 하지 않는 날이라 마음껏 늦잠을 잤다. 나도 그렇지만 E4대원 모두 그동안 장거리 여행을 하느라 피료가 누적되어 있었다.

일어나 산보를 하니 주인이 머무는 통나무집 앞에서 염소를 잡고 있다. 역시 염소피를 흘리지 않고 잡는다. 두 번째 보는 거라 그냥 게르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로 라면을 먹은 이후에는 모두 침대에 누워 이야기만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여행했는데도 이야기 주제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오전에는 비가 오다가 오후 들어서 날씨가 좋아진다. 호숫가를 산책하다보니 한국인 여행자 3팀이 이곳에 와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용이와 상걸이와 함께 게르 옆 바위산을 등산했다. 보기와는 달리 꽤 높은 산이 쉬엄쉬엄 올라갔다.

정상위에서는 넓은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데 정말 장관이다. 특히 호수 동쪽으로 용암이 흐르다 멈춘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또한 게르와 주변 사물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능선을 타고 호수 쪽으로 내려오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오후 8시 40분(아직 저녁이라 해가 떠 있음)에 호수 수영을 하러 갔다. 사실 수영이라기보다는 옷을 다 입은 상태에서 빨래를 하는 것이다.

일단 옷과 몸에 비누칠을 하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추웠지만 수영을 하다 보니 적응이 되었다.(수영과 빨래를 하는 1석 2조 효과)

잘 때에는 게르 안에서 난로를 피웠다. 장작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게르 안이 찜질방에 온 것처럼 더웠지만 추운 것 보다는 낫다.

오늘은 동생들을 위해서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난로에 장작을 넣으며 지켰다. 내가 하는 것에 불만 한번 말하지 않으며 여행을 하는 든든한 동생들..

이럴 때 대장으로서의 동생들의 추위를 막아줘야겠지.

새벽에 게르 밖으로 나왔다. 주변은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밝은 반달이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호수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새벽에 숨겨져 있었다.


8월 5일(토)

2학기 때 할일과 앞으로의 미래 등 이것저것 생각하며 잠을 설치고 있을 새벽 3시쯤.. 바깥에 2대 오토바이가 우리 게르 앞에 멈추는 소리가 났다.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랜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랜턴을 비추는 사이 오토바이족은 숨죽이고 숨어있다. 도둑인 것 같기도 한데..

랜턴을 끄고 가만히 서 있으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쪽으로 다가오자 다시 랜턴을 켰다.

이러기를 3번 정도 반복하니 상대편에서 아예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정도면 목표 달성.. 우리 게르로 들어와 훔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르로 들어오니 역시나 오토바이가 ‘부웅’ 소리를 내며 떠난다. 깨어있지 않았으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던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10시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설거지를 하러 호숫가에 가니 물이 맑았다. 어제는 녹조가 심했는데... 밤새 추위 때문에 맑아졌나보다.

상걸이와 함께 호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2킬로 정도 걸어가자 검은 현무암을 쌓아 올린 오보가 군집해 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전시간에는 날씨가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린다. 비로는 모자랐던지 우박이 내린다. 지금이 8월 맞어?

하루 종일 휴식을 하고 심심하면 밖으로 나와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저녁에는 감자볶음을 양배추 쌈에다 먹었다. 고추장, 김치가 다 떨어졌는데 음식을 해내는 형준이가 대단하다.

밤에는 4명의 사나이가 난로 주변에 모여 맥주캔을 들며 수다를 떨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니 눈꺼풀이 슬며시 감긴다. 몽골 초원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