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일)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2시간 반을 날아 새벽 1시에 창카이섹(장개석) 공항에 도착을 했다. 공항은 시내와 50Km 떨어져 있고 지금은 새벽이라 모든 교통수단이 끊어져 있기에 공항에서 밤을 새야 했다.

‘도대체 타이완(대만)에 가서 무엇을 하지?’

긴 추석 연휴를 맞아 처음에는 일본으로 여행을 하려고 했지만 배표를 구하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타이완을 여행하기로 결심한 시기가 바로 3일전이다.

여행 일정은 물론이고 바쁜 학사일정에 따라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그냥 떠나면 되겠지라고 막연한 생각으로 타이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 타이완(臺灣)은 어떤 나라인가?

타이완은 중국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3만 6천 평방킬로미터(남한의 3분의 1정도)에 인구는 2250만이다. 1평방킬로미터당 600명의 인구밀도로 세계 최고이다.(우리나라가 350명 정도 되던가?)

타이완은 명나라, 네덜란드, 청나라,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충실한 무역 기지 역할 이외에 그저 설탕을 수출하는 작은 섬이었다.

그렇지만 1949년에 중국 공산당에게 패배한 창카이섹(장개석)이 타이완을 마지막 보루로 삼음으로서 타이완 섬은 대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냉전 시대에 한국과 더불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이념의 최전선의 역할을 했고, 막대한 서방의 지원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해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용이라 불렸다.

같은 분단국가로서 한국과 형제나라로 지냈지만 우리나라가 1993년 중국과 수교함과 동시에 타이완에 대한 단교 선언으로 멀어져 간 나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타이완과의 일방적인 단교는 우리 외교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모든 나라에게 수교의 조건으로 타이완과의 단교를 요구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미 1970년대 중국과 수교한 미국, 일본은 타이완과의 단교를 단행하기는 했지만 사전에 타이완 정부에 양해를 구했고 단교 후에도 민간 교류는 끊이지 않고 발전을 거듭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처사가 아쉽다. 1993년 중국과 수교를 할 당시의 우리 정부는 깜짝쇼를 벌이기를 좋아하는 김영삼 대통령시기이다.

중국과의 수교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기는 하지만 타이완의 양해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교를 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 타이완 사람들은 지금도 한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고 반한 감정이 가장 심한 나라로 꼽힌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해 가장 열광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국민감정은 좋지 않은 복잡한 감정을 가진 타이완을 직접 관찰해 보기로 했다.

다시 공항 이야기로 돌아가서..

공항에서 시간을 떼우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목이 너무 말랐다.

자판기가 있기는 하지만 환전을 못하는 나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혹시나 해서 공항 이리저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한국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둘이서 공항 3층을 가니 ATM기계가 있었다. 그렇지.. 여기서 돈을 뽑으면 되겠구나.

이걸 대비해서 CITY 은행 국제 현금카드를 만들었었다.

헉.. 그런데 카드가 안 보인다. 아무래도 집에 놓고 온 것 같다. 일단 신용카드로 돈을 뽑았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와 짐을 챙기고 출발할 때 짐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이었다. 배낭의 내용물을 꺼내니 역시 안 가져온 게 많았다. 수건, 휴지, 현금카드, 칫솔, 치약 등.. 부실하기는 하지만 빠진 것은 현지 조달을 해야겠다.

이곳 환율은 1원(대만달러)당 곱하기 28을 하면 우리나라 돈이 된다고 한다. 이곳 100원은 한국 돈 2800원이 되는 셈이다. 여행을 하면서 30을 곱하는 것이 계산하기 편하다. 이제부터 모든 대만달러 단위는 원으로 표기하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의 원화와 헷갈리지 말기를 바란다.

노트북을 꺼내서 무선망을 체크해보았다.

창카이섹 공항은 무료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혹시 노트북을 들고 가는 여행자는 참고 하도록..

공항에는 많은 관광 안내지가 있다. 가고자 하는 지역의 지도는 꼭 챙겨두면 유용할 것이다.

오전 5시 20분 공항 안 버스터미널에 활기가 뛰기 시작한다. 이제 버스를 이용할 수 있구나..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 행 버스표를 사려는 순간 타이중(臺中)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타이중도 갈 수 있나?

공항에서 계획을 세우면서 타이베이는 가장 나중에 여행하기로 결심했었다. 타이완 국적 항공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유럽이나 태국을 여행할 때 많이 이용할 것이다. 그러면 타이베이 스톱오버(비행기를 갈아 탈 때 잠시 대기를 하는 시간)를 통해 타이베이 주변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7일 간의 시간이 주어진 나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보기위해서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왜 나의 여행은 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건지..)

첫 계획은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떠나는 것이지만 공항에서 막바로 타이중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면 당연히 타이베이는 갈 필요가 없다.

미련 없이 오전 5시 30분 타이중행 버스표를 250원(한화 7500원)에 사고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에서 밤을 새느라 피곤하긴 했나보다.. 버스를 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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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따라 시원스럽게 달린 버스는 2시간 10분 후에 타이중에 도착했다. 타이중(臺中)은 타이완 북부와 남부의 교통과 경제를 잇는 중요한 거점도시다.

타이베이 가오슝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며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과 달리 거리는 매우 깨끗하며 사람들도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 일요일 아침이라 조깅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역시 타이완은 또 다른 중국이구나.

처음 간 곳은 자연과학박물관이다. 이곳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왔다. 9시에 문을 여는데 지금 시각은 오전 8시가 안 되었다.

여유가 있으면 1시간을 기다리겠지만 그러면 전체적인 일정이 느슨해지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은 포기하고 바오줴쓰로 향했다.

바오줴쓰로 향하는 버스를 찾기 힘들어서 택시를 탔는데 기본요금이 85원이고 결국 100원을 주고 바오줴쓰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타이중의 상징인 거대한 부다이 상이 있는데 인상이 편안하고 인자해 보였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보였다. 역시 타이완에서도 처음 마주치는 외국인은 일본인이다.

바오줴쓰에서 10분을 걸어서 공자묘/충렬사에 도착했다. 타이완에 있는 공자묘 중에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며 1945년에 일본 신사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마침 몇몇 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20분을 걸으니 중산공원이 보인다. 공원에 들어서려고 하자 사람들이 기나긴 줄을 선 모습이 보인다. 무슨 일이지?

다가가니 이곳 고등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 앞에서 대기를 하는 모습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공부를 하기 위해 개포도서관에서 줄을 서며 친구들과 떠들던 추억이 떠오른다.

타이완의 산업구조는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 변변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수출로서 먹고살아야 하며 가공무역을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곳 교육열도 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주요 수출 산업인 반도체, LCD, 가전제품 등은 세계 시장에서 타이완과 경쟁을 하고 있다.

중산공원 중앙에는 비취색 호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으며 간혹 연인들이 보인다.

기차역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타이완에서 제일 큰 르웨탄 호수로 가기 위해 부리(?理)행 버스표(50원)를 끊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안되어 부리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곧바로 르웨탄(日月潭) 호수로 가는 버스표(50원)를 끊었다. 12시 버스라 잠시 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많은 종류의 해산물이 눈에 많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검은색 개구리가 인상적이다.

크기는 두꺼비만한데 그물망에서 팔딱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워서 과연 저걸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시장에서 돌아와 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리니 르웨탄으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르웨탄 호수는 산중에 있어서 강원도와 비슷하게 집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도로를 따라서 집들이 쭉 늘어져 있는걸 보니 좁은 국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르웨탄 호수는 해발 870m에 위치했고 둘레 24km, 수심30km에 면적은 900ha에 이르며 타이완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유명하다.

호수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걸어가고 있다.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호수에 와서 수영을 즐기는 건 이해가 가지만 주차한 차들로 도로가 꽉 찰 정도로 이곳이 수영하기 좋은 곳인가? 타이완 주변이 다 해수욕장인데?

해답은 저녁때 TV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수만명이 참가하는 '르웨탄 도호행사'가 바로 오늘 열린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차들이 너무 많아 주변의 볼거리를 보기가 힘들다. 이곳의 명소는 호수 주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걸어서 둘러보기는 불가능하다.

그냥 수이리(水里)로 떠날까 고민을 했지만 호수가 한눈에 보이고 장엄한 건물이 있는 ‘원우마오’만이라도 관람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니 걸어서 갈만한 거리이다. 12시 40분에 르웨탄 시내에서 출발을 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로 지나가고 있어서 긴팔 여행복장으로 다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호수에는 주변에는 푸른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물은 맑기 그지없다. 많은 보트들이 유유히 다니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타이완 정부도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여겼는지 여기저기에 선착장과 인공 수초를 놓으며 개발시킨 흔적이 역력하다.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 오후 1시 20분에 원우마오에 도착했다. 입구 좌우로 여의주를 품은 커다란 사자상이 나를 맞이해준다.

사원 전체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악비와 관우 공자를 모시고 있다.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사원 뒤편 언덕에서는 호수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반대편으로는 끝없는 산악지역을 관찰 할 수 있다.

원우바오에서 1Km 정도 떨어진 쿵췌위안을 볼까 고민하다가 시간이 별로 없다는 판단이 들어 곧장 르웨탄 시내로 향했다.

르웨탄 호수는 자가용이나 차를 대절하지 않으면 호수 주변을 둘러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관광지로 개발은 잘 되었지만 배낭족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뭐..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시내에 도착하니 오후 2시 20분이 다 되었다. 왕복 6Km는 걸은 듯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알리산(阿理)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이리(水理)로 가야 하는데 버스를 어디에서 탈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니 친절하게 알려주다 못해 버스(46원)를 타고 떠날 때까지 지켜봐준다. 30분 정도를 달려 수이리에 도착했다.(오후 3시 14분)

알리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지도상으로^^;;) 둥푸(東?)로 가는 버스가 4시에 있다. 자동 발매기에 112원을 넣어 표를 샀다.

바로 앞 언덕위에 위치한 수이리 기차역을 둘러보니 아담하게 잘 꾸며놓았다. 기차역에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오후 4시에 출발하여 버스는 끝없는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산악지역이 펼쳐진다. 이곳이 타이완이 맞나? 마치 라오스 산악지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후 5시 20분 온천으로 유명한 둥푸에 도착을 했다. 둥푸(해발 1200m)는 산중턱에 걸쳐 있는 작은 마을로 주변에는 장엄한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거의 없다. 덕분에 숙소를 저렴하게(1000원에서 800원으로 깍음)에 구할 수 있었다. 호텔 옥상에는 온천 스파가 있어 마음껏 온천욕을 할 수 있다. 더구나 오늘 호텔에 묵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은가..

따끈한 온천에서 오늘의 피로를 녹였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기분이다.

이제 오늘의 여행을 글로서 남기는 시간이다. 노트북을 꺼내 전원 코드를 꼽으려는 순간..
코드가 맞지 않는다. 타이완의 콘센트는 우리나라의 110V용과 같은 코드라 가져온 코드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신이 오늘 하루 피곤하니 푹 쉬라고 시간을 줬나보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강행군을 했다.

타이완에서의 파란만장한 첫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