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수)

장거리 여행에 지쳐가던 오전.. 드디어 소롱(Sorong)에 도착했다. 소롱은 이리안자야 교통의 허브답게 꽤 큰 규모의 도시이다.

론니에는 지도가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혼자 찾아야 했다. 길도 물어 볼 겸 외국인 등록도 할 겸 항구 앞의 경찰서로 갔다. 문을 두드리자 잠이 덜 깬 듯 경찰관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외국인 등장에 인도네시아어로 뭐라고 이야기 하지만 소통이 될 리가 없다. 경찰관에게 허가증을 내미니 시내에 있는 경찰서로 가야 한다며 차량을 잡아 준다.

시내 경찰서에 가니 비교적 영어가 되는 경찰관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소롱에 온 목적은 세계적인 조류 도래지인 살라와티섬이나 바탄탄으로 가서 새를 관찰하는 것이다. 살라와티나 바탄탄으로 가기 위한 교통편을 물어봤지만 대답이 애매하다.

배고픈 김에 식당을 물어보니 경찰서 구내식당을 안내해준다. 구내식당에서도 갑작스러운 한국인의 등장에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이다.

허가증 도장을 받고 다시 항구로 돌아와 페르니(Pelni) 사무실에 들렀다. 소롱은 비교적 많은 배가 드나들고 있어 스케줄이 다양했다. 마나도로 가기 위해서는 근처 항구인 비퉁(Bitung)으로 가야 하는데 8월7일과 12일에 스케줄이 있다. 살라와티나 바탄탄으로 가게 되면 12일에 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7일에 가기로 했다. 물론 표는 당일에 살 것이다.

항구 근처에는 호텔이 많이 있는데 가장 저렴한 숙소는 Hotel Indah로 에어컨 방이 90,000루피아이다. 저렴하기는 하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방이 꽉 찼다.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근처의 Tulip호텔(150,000루피아)에 자리를 잡았다.

호텔 바로 앞에는 해변이 펼쳐지는데 가까운 바다를 비롯해 비교적 먼 바다에서도 배가 들어오고 있다. 배의 속도가 낮아서일까. 서서히 들어오는 배마저도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려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왕래 하는 사람 거의 없고 평화스러웠던 해변은 저녁이 되면 해변에는 노점 식당들로 꽉 들어선다.  

인터넷을 하려고 시내 쪽으로 돌아봤으나 늦은 시각이라 인터넷이 되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별 수 없이 큰 마트에 먹거리를 사러 들어갔는데 신라면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신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반가운 마음에 2봉지를 샀다. 이 아이템은 다음 배 여행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그동안의 여행으로 심신이 꽤 지쳤기 때문에 오늘은 대체적으로 호텔에서 노트북에 저장 된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8월 6일(목)

오전 중 살라와티와 바탄탄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봤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가는 배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서 부담을 많이 해야 한다.

더구나 어제 도착할 때부터 날씨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칫 배가 출발하는 날짜를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텔 직원에게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곳을 물어보니 아예 인터넷 카페까지 오토바이로 태워준다. 인터넷 카페에서 1시간짜리 티켓(10,000루피아)을 끊어 접속을 했지만 한글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문 사이트만 보다가 다시 호텔에 돌아왔다.

오전부터 생각을 정리해보면 내일 마나도 방향으로 떠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그래도 소롱에 온 이상 그냥 떠나기에는 뭔가 섭섭한데..

그렇게 해변을 거닐고 있는데 페르니 보트가 정박했던 큰 항구 한 켠에 작은 배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다가가니 항구 바로 앞의 Doom섬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다.

소롱에 온 김에 작은 섬에라도 들려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배(3,000루피아)에 올랐다. 작은 배는 손님이 차면 출발을 하는데 굳이 배 안 쪽에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배 선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Doom은 작은 섬이지만 섬 전체에 집이 들어서 있는 어촌 마을이다. 마을에는 시멘트 도로를 중심으로 형성 되어 있고, 구멍가게와 한가롭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 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거리를 걷는데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진다. 준비가 되지 않은 터라 바로 옆 나무 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도 나무 집으로 오시더니 옆에 앉으라고 하신다.

혹시나 비가 계속되면 소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이곳에 갇히기 때문에 조급해 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비가 그칠 때까지 멀뚱멀뚱 앞을 보는 여유를 보이신다.

비는 20분을 내리더니 거짓말처럼 맑아진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지를 훌훌 터시더니 길을 가신다. 괜히 조급해 하던 나만 머슥해 졌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해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해변의 집은 거의 모두가 바다에 나무 기둥으로 받쳐 지표면에서 2~3미터 떨어진 공간에 지은 수상가옥이며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나에게는 평화롭게 사는 섬을 둘러보는 시간이지만 섬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등장이 신기한지 나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의 숫자가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늘어난다. 아이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주니 고맙다면서 좋아한다.

목표로 했던 새 관찰은 하지 못했지만 Doom을 둘러봄으로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하루였다.  


8월 7일(금)

오후 6시에 배가 출발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하루였다.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으로 살라와티와 바탄탄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봤지만 결과는 실패~

이제 미련을 가지지 말고 완전히 잊기로 했다.

정오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항구로 가니 경비원들이 시간이 안 됐다면서 제지를 한다. 웃으면서 갈 데가 없다며 버티니 이내 자리를 내 준다.

경비원에게 비퉁(Bitung)까지 가는 배편에 대해 물어보는데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뭐 미안할 것 있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내가 더 미안하지.

경비실 앞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 오후 4시가 되어 항구 문이 열리자마자 많은 노점상과 승객들이 몰린다.

배는 예정 시각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오후 5시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일 때는 위풍당당했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배 수준이 난민선 수준이다.

배에 문이 열리면 부두에 대기한 많은 짐꾼들이 서로 먼저 승선하려고 뛰어 든다. 그 모습이 럭비를 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재미있게 느껴졌지만 이들 중에 일부는 객실의 자리를 미리 맡아 놓고 맡아 놓고 승객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한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억지로 데리고 가더니 주변 청소를 한 후 20,000루피아를 달라고 한다. 그 모습이 밉살스러워 다른 자리로 가려고 일어서니 금새 또 다른 짐꾼이 나를 낚아채며 맡아 놓은 자리로 안내한다. 그러고 나서 100,000루피아(10$)를 요구한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50,000루피아로 내려간다. 매트리스가 없는 자리가 많기 때문에 2일의 배 여행을 편하게 하려면 이들에게 돈을 줄까도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승선한 승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역시나 출발하자마자 자리가 나온다.

매트리스에 자리를 정리하니 참 객실이 열악하다. 몇 년 동안 치우지 않는 듯 벽은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수많은 바퀴벌레가 곳곳에서 목격이 된다. 이걸 페리라고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우고 다니다니..

결국 객실에 있는 시간 보다는 밖에 나와 바다를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페리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바다를 보며 많은 시간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대본이 거의 완성이 되었을 정도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로 시작한 뮤지컬이 현재 대학원에서 전공을 하며 교육뮤지컬로 승화시키려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는 뮤지컬로 활동이 폭 넓게 전개되고 있는데 학교에 뮤지컬 동아리를 조직해서 끼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서 이미 완성 단계이며 11월 인도국제아동연극제에 초청을 받아서 뉴델리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그 놈의 인플루엔자 때문에 불확실 하기는 하지만)

반 아이들과는 우리 반 만의 스토리를 짜서 10월에 전국어린이연극대회에 출품할 예정인데 이 모든 아이디어가 여행을 하면서 나오는 아이디어이며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시간이 새벽 1시에 이르자 슬슬 졸음이 온다. 어쩔 수 없이 파리와의 한판 전쟁을 각오하며 객실로 내려왔다.
  

8월 8일(토)

계속되는 페르니 보트 여행의 연속이다. 지저분한 객실보다는 밖에서 바다를 감상하는 시간이 많다. 다행히 책과 MP3 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오전 10시 30분 망망대해만 보이는 바다에서 좁은 해협을 통과하게 되자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와 통화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배에 한국인이 탔다는 소문이 이미 나서 그런지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걸어보지만 인도네시아어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나마 영어가 조금 되는 사업가가 있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보트 매점에서 가장 많이 사먹은 것은 커피이다. 네스카페(6,000루피아)보다는 블랙커피(5,000루피아)라고 불리는 현지 커피가 짙고 맛있다.

비퉁(Bitung)에 도착해서 갈 곳은 정해져 있다. 바로 부나켄(Bunaken)섬이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이 섬은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로 손꼽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섬이다. 처음에는 마나도 근처에 괜찮은 곳 한군데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지만 페리에 탄 현지인들 모두가 극찬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서양 다이버는 물론 일본 여행객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이빙 코스가 파타야, 보라카이, 다합등 특정한 곳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원래 여행 막바지인 코타키나발루에서 다이빙을 하기로 했는데 부나켄에서 다이빙을 더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2007년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요르단 페트라 여행을 포기하고 다이빙 라이센서를 땄었는데 덕분에 여행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한 가지 옵션이 더 붙었다. 꾸준히 여행을 즐길 분은 다이빙 라이센서를 따 놓는 것이 여행을 한 단계 레벨 업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