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화)

밤새 더위와 모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모기는 10마리 이상 잡은 걸로 기억이 나는데 선풍기 바람이 모기 접근을 막지 않았다면 내 몸 전체가 벌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Kresna Homestay는 숙소로서는 정말 비 추천이다.

족자카르타로 기차는 오후 8시 4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숙소에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잠시 맡겼을 시점에는 여유 있게 시내를 둘러볼 시간이 있다.

우선 어제 못 봤던 국립박물관(Musium Nasional)에 들어가니 750루피아를 받는다. 박물관은 식민지 시절인 1862년에 지어진 건물로 입구에는 1871년 태국의 국왕이 보낸 청동 코끼리 상이 놓여있다.

1층에는 각종 불상을 비롯한 불교, 힌두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에는 금장신구 등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을 둘러보면서 이곳 지역에도 발달 된 문명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다양한 무기가 전시 된 것으로 보아 전쟁이 잦았던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쭉 전시된 석상들을 둘러보니 건물 왼편에 태국 전시실이 있다. 이곳은 태국에 관한 소개로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객이 거의 없어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태국 전시실 맞은편은 인도네시아 민속실이 있는데 마침 내가 갔을 때 민속음악 연주 촬영이 있어 민속음악을 감상하면서 둘러볼 수 있었다. 파푸아 쪽의 민속이 가장 인상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오지인 파푸아는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곳으로 TV에 자주 소개 된 곳이기도 하다. 저 곳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저녁에 돌아와 여행사에 물어보니 파푸아를 여행하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가 된다고 한다. 일단.. 꿈으로만 남겨두자.

박물관을 관람한 후 옛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Kota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Kota 지역은 국립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트란스자카르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트란스자카르타는 전용차로를 달리며 도로 중앙에 정류장에서만 타고 내릴 수 있다. 정류장에 3500루피아를 내면 카드를 주는데 입구에 카드를 꼽으면 들어갈 수 있다. 우리의 지하철과 매우 흡사한 시스템이다. 버스 내부도 에어컨이 나와 쾌적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타는데 시간 소요가 많이 된다.

자카르타는 세계 최악의 교통 공해도시에 걸맞게 하루 종일 교통지옥이다. 깔끔한 차 오래된 고물차가 여기저기 얽혀 있는데 여기저기서 정체되는 모습이다.

30분 정도를 달려 Kota 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Kota는 자카르타 북쪽의 항구에 위치해 있으며 과거 네덜란드 식민통치 시대의 중심지이다. 자카르타는 독립 전 바타비아(Batavia)라고 불렸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약칭 VOC의 중심항구이기도 했다.

16세기 초 포루투갈인들이 처음 이 지역에 나타나 고아, 말라카, 암본, 티모르, 마카오에 교역소를 설치에 거점을 마련했지만 곧이어 네덜란드가 등장하게 된다. 네덜란드는 1619년 자카르타를 공격하여 점령 한 후 식민지 총본부를 세워 이름을 바타비아로 바꿔 부르게 된다.

17세기 초에 네덜란드는 중국인 장인들을 대거 동원해 Kota 지역에 암스테르담을 본따 운하를 건설했으나 결과적으로 말라리아 모기의 서식지를 만든 셈이 되었다. 그 결과 바타비아는 백인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1800년대 초 운하 대부분을 메우고 내륙으로 4Km 옮겨졌다.

한편 네덜란드는 이곳을 거점으로 1756년에 자바섬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300년 넘게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지배와는 다른 개념이다.

흔히 식민지 하면 총독이 파견 되어 본국을 위해 모든 행정과 군사 외교적 업무를 총괄하며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런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이야기이다.

17~18세기에는 그렇게 모든 것을 장악할만한 군사력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도 선박으로 군대를 옮기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데 300년 전에는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VOC(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중심으로 거점마다 교역소와 요새를 건설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독점했다. 인도네시아는 향료가 유명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상당한 이득을 남겨주었지만 교역소 운영을 위해 만만찮은 비용을 지출했다고 한다.

후에 네덜란드는 교역소 운영에 벗어나 한 종류의 식물을 넓은 지역에 재배하는 농장을 도입했는데 돈이 될 만한 사탕수수, 염료, 커피, 차 등을 지정해서 생산하도록 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플랜테이션 농장이고 지금도 인도네시아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Kota는 바타비아 시절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자카르타 역사박물관은 VOC의 시청으로 쓰여진 건물로 Bell 타워는 162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네덜란드 총독이 쓰던 가구와 당시 풍경을 그린 회화, 옛 지도, 중국 도자기등이 전시되어 있다. 정원에는 대포가 전시되어 있으며 건물 밑 부분에는 포환이 저장되어 있다. VOC 시절의 분위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박물관에 2000루피아를 내고 들어서니 가이드 한명이 일본어로 주절히 주절히 이야기 한다. 웃으면서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미안하다며 영어로 이야기 한다. 결론은 주변 투어를 하라 는 것. 이럴 때면 영어도 잘 못한다고 웃으면 이야기 하면 된다.

가이드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자카르타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다고 소개를 한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시아는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구나..

박물관에서 북쪽으로 향하니 Chicken Market Bridge가 있다. 운하를 중심으로 17세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다리로 배가 지나갈 때 양 옆이 벌어지는 현수교이다.

항구 쪽의 해양박물관(Musium Bahari)은 1645년에 건립된 VOC의 창고로 쓰였던 곳으로 공예품과 항해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건물이 볼거리이다. 관람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혼자서 건물을 둘러봤는데 분위기에 흠취하다보니 내가 대항해 시대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타이머신을 타고 하루 정도 둘러보고 싶다.

해양박물관 옆에 시장(Basar Ikan)에 둘러보면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오래 된 집과 그곳을 사는 사람들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날이 무더워 갈증이 났는데 과일 노점상이 각종 과일을 조각내 비닐에 담는데 한 봉지에 1500루피아에 판다. 두 봉지를 사먹었다.

Kota의 하이라이트는 시계탑(Watchtower)이다. 1839년 지어진 건물로 2000루피아를 내고 시계탑에 올라가면 주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계탑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항구였는지 의심스러웠는데 시계탑에서 보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타비아 시절의 Kota 지역과 반대편의 발전 된 자카르타 지역이 한눈에 보이는 파노라마와 같은 풍광이다. 이곳을 오면 꼭 한번 올라가보길 권한다.

시계탑 앞에 코코넛 주스를 파는 상인이 있는데 3000루피아를 내고 마시니 맛이 기가 막히다. 코코넛 주스 한잔이 무더위로 지친 몸을 가득 충전 시켜주었다.

Kota 지역은 자카르타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저분하고 방치 된 느낌이다.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은 헐리고 있거나 방치되어 있다. 이곳을 잘만 개발하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좋은 관광자원이 될 텐데 지금은 오는 관광객도 막는 형편이라 외국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말레이시아의 말라카가 참 잘 되어 있는데 그곳을 벤치마킹 하는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과 맞물려 그야 말로 교통지옥이다. 트랜스자카르타 버스를 타는 데 대기하는 사람들의 줄이 꽤 길다. 더위와 맞물려 짜증이 나는 상황이다. Kota 지역이 종점이기는 하지만 종점이라고 기다리는 승객을 한꺼번에 태우지 않는다.

두 대에 한대 꼴로 태우며 그나마도 인원을 제한했기 때문에 30분 넘게 대기해야했다. 대기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다른 정류장의 승객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이해는 되었다.

교통지옥인 자카르타를 느끼며 어서 자카르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반면 힘든 와중인데도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훈훈한 풍경도 목격했다.

숙소가 있는 Jalan Jaksa에 돌아가서 식사를 하고 시간이 남아 인터넷을 하려고 찾아보니 1시간에 4000루피아(500원)인 인터넷 카페가 있다. 속도도 무척 빠르고 한글도 잘 써진다. 숙소가 통하는 골목에서 약간 남쪽에 있으며 문에 1시간에 4000루피아라고 써있다.

시간이 되자 짐을 챙기고 Gambir 역에 가서 족자카르타행 기차를 탔다. 비싼 티켓이라 자리는 꽤 아늑한 편이다. 기차를 타자마자 승무원은 기내식 비슷한 과자를 준다. 식당도 있고 가격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저녁을 해결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유용한 환경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밥에 닭고기나 생선을 곁들여서 먹는데 우리 입맛과도 잘 맞는 편이다.

이곳 사람들이 워낙 닭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스(Sars) 유행하던 시절에도 이곳 KFC는 한군데도 지점을 닫지 않았다고 할 정도이다.

그제는 공항에서 노숙. 오늘은 기차 안에서 숙박.. 여행 초반부터 힘들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족자카르타에 가서는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