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수)

새벽 4시에 일어나 숙소를 정리하고 바케트와 오렌지로 아침을 먹고 차량을 기다렸다. 차량이 올 시간이 되자 우리 세 명 사이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막연한 곳을 여행하는 긴장감이다. 원래 6시에 차량이 오기로 했는데 30분 정도 늦어졌다.

7시 박근선 지부장님 댁에 가 차량 기사와 마지막 조율을 했다. 차량비 400,000CFE(800$)와 기름 200L 140,000CFE(280$) 총 540,000CFE로 최종 합의가 되었다. 우리가 현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4400,000CFE를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 100,000CFE는 돌아와서 지불하기로 했다.

지부장님은 가이드 무사가 공무원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이며 우리의 일을 잘 처리해 줄거라고 말하신다. 이제 출발~

은자메나에서 가이드 무사집에 들린 다음 곧장 시외곽으로 나갔다. 시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과거로의 회귀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집도 벽돌집에서 진흙과 억새풀로 엮은 집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길은 2차선 도로로 중간에 움푹 파인 곳도 있지만 지나다니는 차량이 없어 달리는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전 8시 30분 마사구엣(Massaguet)에 도착해 시장의 풍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 그런데 경찰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이거 큰 실수인데.. 경찰은 화를 내면서 차량으로 다가왔는데 무사가 잘 이야기 해 위기를 모면했다. 무사는 경찰하고 군인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강조한다. 출발하자마자 문제가 생길 뻔했다.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사구엣에서 통행세를 받는 곳을 지나는데 경찰이 무사를 알아본다. 옛 친구를 만났다며 반가워하며 인사를 한다.

9시 30분 마사코리(Massakory)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무사가 나온 중학교가 있는데 꽤  잘 지어진 건물이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아 곧장 아침 식사를 하러갔다.  

식당은 움막집에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이 전부. 이곳에서 케밥을 시켜먹었다. 화덕에 구운 빵을 염소고기 소스에 찍어 먹었는데 꽤 먹을 만하다.(1인당 1,000CFE)

마사고리를 지나면서는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데 도로라기보다는 많은 차량이 지나다녀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연히 차안에는 모래 먼지가 가득하고 간혹 크게 덜컹거리며 온 몸이 솟구쳐 오른다.

사막에는 유목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염소, 소, 낙타 등을 키우며 살고 있다. 남자는 터번에 이슬람 옷을 입고 있으며 여자는 화려한 색상과 무늬의 옷과 차도르를 걸치고 있다. 여인들은 땔감을 머리에 이거나 당나귀를 타고 다닌다.    

중간에 멈춰있는 차들이 보이는데 고장이 나거나 연료가 떨어진 차들이다. 이곳에서 차량이 고장이 나면 수 십Km 또는 수 백Km 떨어진 도시에 가서 부품을 구해 와야 한다. 차드에서의 지방 여행은 차가 멈춰진 채로 하루 이틀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우리 차량만큼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 될 텐데..

10시 30분 고장난 트럭이 있어 차량이 잠깐 멈췄는데 주변에 낙타들로 가득하다. 낙타를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유목민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돈을 요구하나?

그들의 말을 들은 무사는 유목민에게 두통약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우리는 약통에 있는 정로환 2알씩을 나눠주니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북쪽으로 갈수록 사막은 점점 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물은 전혀 볼 수 없으며 식물들도 나무에서 풀, 풀에서 잿빛 모래로 변하고 있다. 자동차 요동도 점점 심해져서 처음 출발할 때는 우리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점점 침묵이 길어진다.

12시 23분 은고리(Ngouri)에 도착했다. 은고리는 우리가 탐사할 도시인 마오(Mao)와 볼(Bol)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시장에 캠코더 촬영을 잠깐 오늘의 목적지인 Mao로 향했다. 3일 뒤에는 은자메나로 돌아가는 길에 들리겠지..

오후 2시 10분 험한 사막길을 건너 마오(Mao)에 도착했다. 마오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로 예부터 주요 교역로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Kanem 왕국의 수도로서 번성하여 수단, 리비아, 나이지리아까지 세력을 뻗쳤다. 지금도 마오에는 Kanem왕국의 술탄이 살고 있다.   마침 수요 시장이 열려 많은 낙타와 당나귀가 보였다. 이곳에서 촬영을 하려고 하니 무사는 먼저 누구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무사가 전화를 해서 시내 남쪽의 교회로 가서 박근선 지부장님이 소개해 준 사무엘을 만났다. 사무엘은 이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교육장 정도 되는 것 같다. 그에게 마오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물으니 여러 사람을 불러 왜 이곳에 왔는지 알고 싶다며 통역인 무사를 통해 우리가 이곳에 온 의도를 묻는다.

우리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마오를 한국의 학생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사진이 필요하며 한국 교과서 복사본을 보여주니 사무엘은 교과서의 표범 그림을 보며 이 동물이 한국에 살고 있는지 묻는다. 긴장감 속의 잠시 웃음^^

우리의 의도를 이야기하자 사무엘과 여러 사람들은 토론을 벌이더니 결론을 내고 차량에 탑승해 같이 시내 남쪽의 경찰서로 갔다. 건물 앞의 움막이 서장실이라 사무엘은 서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허가를 받았다. 다른 관공서로 가서 다시 허가를 받고 난 후 촬영 허가가 났다.

다시 교회로 돌아오니 오후 4시이다. 결국 낙타 시장은 끝나서 못가고 사무엘은 우리를 데리고 교회 예배를 보러 갔다. 이곳은 에반젤린 교회로 학교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예배는 순서와 형식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찬송가를 부를 때 소프라노, 메조, 알토와 같은 정해진 음색이 아닌 자신이 부를 수 음역을 찾아서 부르는 것이 특이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삥 둘러앉으니 콜라, 미란다와 같은 음료수를 캔을 한사람씩 돌린다. 우리에게는 가벼운 음료지만 여기에서는 소중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음료이기도 했다. 다들 경건한 표정으로 음료수를 음미한다. 나 역시 경건하게.. ^^  

저녁 식사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큰 쟁반에 쌀을 쪄서 만든(그렇다고 떡은 아닌) 음식을 작은 쟁반으로 잘라 가른다. 손으로 쌀 요리를 뭉친 후 라불(닭고기 요리) 소스에 찍어 먹는다. 처음 먹는 현지 음식이기는 했지만 라불이 닭볶음탕과 비슷한 맛이 나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사무엘은 자시의 방과 메트리스를 양보하더니 이곳에서 자라고 한다. 우리는 침낭이 있어서 그냥 방에서도 자도 된다고 말하니 손님에게 그럴 수 없다며 양보한다.
이곳은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어둠과 동시에 잠을 자야 한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추위가 느껴진다. 달은 오아시스를 비추고 모래 바람이 부는 황량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만은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