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김사장님께 부르스터를 빌려 불고기를 먹고 있는데 늦었다고 해서 먹던 밥을 플라스틱 통에 넣고 나가보니 마이크로 버스 한대가 서 있었다. 일본인 1명, 프랑스인 1명, 캐나다인 1명, 스위스인 2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처음에 서먹서먹해서 내가 뒤에 앉은 일본인에게 혼자 여행을 하냐고 일본어로 물었더니, 자기는 휴가 중이고 이름은 이시다라고 한글로 말하는 게 아닌가? 도착 직전 스위스 여자가 대화에 끼면서 서로 소개를 했는데 유럽 사람들 이름은 헷갈려서 잊어버렸다. 우리 게르는 우리 팀 네 명과 이시다 상, 캐나다 친구 1명이 같이 쓰게 되었다. 이시다상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해서 이시다상도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단다. 롯데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어도 능숙했다. 캐나다 친구는 일본에서 4년, 하얼빈에서 1년, 카자흐스탄 등에서 영어 교사를 했단다. 우리는 비가 와서 게르 안에서 쉬면서 오후에 말을 타기로 했다. 2시나 되어야 소고기가 점심으로 나온다고 해서 우리가 가져온 김치볶음밥을 나눠먹었다. 이시다상이 한국어를 잘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날씨가 좋아져서 나가서 낙타랑 개들과 놀다 다시 비가 내려 게르로 돌아왔다. 우리에겐 안 된 일이지만, 몽골에서는 비를 몰고 오는 사람은 행운을 몰고 오는 사람이라고 하니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겠다.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에서 긴 옷을 안 가져와서 밤에 잘 때 고생 좀 할 것 같다.

  비가 계속 내려서 얘기를 하다보니 점심이 나왔다. 소고기 볶음이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 아니면 소고기여서 그런지 매우 맛있게 먹었다. 3시쯤 비가 그치고 이시다상이 밖에 구경나간다기에 같이 따라 나섰다. 마을 뒤 바위산에 올라갔는데 20세기 인민정부 시절 불교탄압 시기에 스님들이 숨어 지내던 곳 같았다. 우리가 바위에 서 있으니 재용이가 밑에서 보고 따라 올라왔다. 이렇게 평화롭고 조용했던 곳이 17세기 후반 할흐몽골족의 갈단과 청나라 강희제의 서로군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테렐지 근처 종모드에서 갈단의 군대는 청군에 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바위굴 안으로 들어가다가 이시다상의 슬리퍼가 끊어지는 바람에 이시다상은 내려갈 때 맨발로 내려가야 했다. 나와 재용이는 가시 있는 풀에 각각 다리와 손을 찔렸는데 몇 분 동안 쓰라려서 독초가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 몽골의 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질기면서도 독하다. 비가 온 이후라 바위도 많이 미끄러웠다. 게르에 곧장 돌아가려 했지만 이시다상이 자기는 괜찮다고 조금 더 둘러보고 가자고 해서 건너 마을 방향으로 내려왔다. 갖가지 꽃과 키가 크고 죽어있는 나무숲, 거대한 수 십 만개의 돌 작품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모습에서 태고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 게르에 가서 이시다상이 발을 씻고 있는데 여자아이가 운동화 하나를 빌려주었다. 엄마 것이라고 하는데 사이즈가 작아 결국 이시다상은 꺾어 신고 다녀야했다. 모기라는 남자 아이는 자꾸 나에게 와서 무엇을 먹는 시늉을 하는데 내가 이해 못하자 결국 자기 게르에 가서 병 하나를 가져왔는데 그 안에는 산딸기가 들어있었다. 먹어보니 우리나라 산딸기와 맛이 비슷했다. 그래서 이시다상, 재용이, 나, 모리, 모리의 누나가 같이 앞산으로 갔다. 나중에 프랑스 친구 파비엥이 따라왔지만 산딸기 따는 것보단 얘기하러 올라온 것 같다. 나도 10여개쯤 찾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다시 겔로 가려고 산을 다 내려오니 비가 그쳐서 산딸기 많이 못 딴 것을 아쉬워하며 가고 있는데 다시 비가 쏟아졌다.

  5시가 되자 다시 날씨가 좋아져서 이번엔 찬수형, 형준이, 이시다상, 나 이렇게 넷이 마을 앞 언덕에 오르기로 했다. 돌아다니다보니 언덕 정상에 탁자와 의자가 있어 쉬다가 형준이가 에델바이스가 많다고 해서 주위를 보니 정말 하얀 에델바이스가 많이 피어있었다. 론니에서도 여기에 에델바이스가 많다고 나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 말로는 솜다리라고 하는데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형준이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한다며 2송이를 가지고 가서 말린다고 했다. 7시가 되어서야 저녁이 나왔다. 우리나라 잡채랑 비슷했는데, 면이 질기지 않고 잘 끊어졌다. 전분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 역시 맛있게 먹었다.

  7시 반이 되어서야 주인이 말을 타자고 해서 우리는 너무 늦고 추우니 내일 아침에 타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스위스 여성이 주인에게 말을 해서 미뤄지게 되었는데 갑자기 프랑스 여자가 자기는 오늘 타야겠다고 해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나머지 7명의 남자들은 당황해서 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뒤로 물러섰다. 결국 피카소의 동전을 던지자고 해서 그 결과 오늘 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말에 올라 ‘추’,‘수’를 외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아까 일로 기분이 상해있던 스위스여자가 말을 타고 기분이 좋아진 듯 했다. 8시라고 하지만 몽골은 아직 밝았다.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높기 때문이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형준이 말의 등에서 피가 나서 말을 바꿔 탔다. 우리는 형준이의 무게 때문이라고 놀렸지만, 형준이의 말로는 안장이 철안장이어서 그랬단다. 반환점에 가서 돌아오는데 재용이가 엉뚱한 방양으로 가서 고문관이라는 놀림을 받고, 다시 게르로 향했다. 내가 탄 말은 반환점까지는 느긋하게 걷더니, 반환점을 돌자마자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일행과 너무 떨어져 고삐를 돌리려고 하니 워낙 코스에 익숙해진 녀석이라 반항을 한다. 결국 찬수형과 스위스여자가 먼저 오길래 같이 전속력으로 게르까지 경주를 했다. 말에서 내리니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형준이는 젖은 안장에 앉아서 내릴 때 엉덩이가 진물렀다.

  게르 안에 쉬고 있으니 아이락이 도착했다. 한문으로는 마유주라고 하는데, 말의 우유로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색깔은 막걸리같고, 신맛이 더 강하다. 2L 한 병에 3000투그릭인데 말의 젖을 발효시킨 음식이어서 장에 아주 좋다고 한다. 장에 있는 불순물을 깨끗하게 청소해줘서 살도 빠진다고 한다. 허나, 너무 많이 마시면 화장실에 밤새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다른 게르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놀러와서 다시 한 번 개인 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형준이, 찬수형, 재용이, 내 소개가 끝나고 옆에 프랑스 여자부터 소개를 했는데 이름은 발렌틴이고 21살의 대학생이란다. 캐나다인 알런은 해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스위스 여자 안드레아는 큰 병에 걸렸었는데 자연 치유를 경험하고 나서 영혼을 믿게 되었단다. 스위스인 파비엥은 수의사인데 순록을 고쳐주는 일을 하며, 일본인 이시다상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본 롯데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고 30살이었다. 아이락을 마시며 각 나라의 귀신 얘기도 하고,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다가 12시에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