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게르에서의 밤은 추웠다. 사방이 트인 초원의 한가운데서 부는 바람은 아무것도 막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6시에 일어났는데 차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에 밖에 나가보니 한 프랑스 남자가 침낭 안에서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책을 읽고 있으니 아침이 들어왔는데 몽골식 판케이크라고 했다. 간이 안 맞아서 어제 먹다 남은 수제비와 나라가 가져다준 수태차를 해서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다 먹어치웠다. 내가 워낙 이것저것 잘 먹으니 짬통이란 별명까지 생겼다. 아침을 먹고 나니 다시 배가 아파왔다. 어제 먹은 아이락이 맛이 약간 시어서 상한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아이락을 많이 마시면 원래 배변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짐정리를 하고 차에 오르는데 붐바예르가 울고 있었다. 단 하루뿐이었는데도 정이 깊게 들었나보다. 축구를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에 몽골 국가 대표 선수로 자랐으면 좋겠다.

  11시쯤에 Tsogt Ovoo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부터 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진흙길도 있고 언덕과 골짜기도 많았다. 길이 험해서 어떤 트럭이 떨어뜨린 것인지 몰라도, 길가에 양털 한포대가 떨어져 있었다. 에케메가 우리 눈치를 보고 주저하고 있어서 우리가 내려서 같이 차 지붕 위로 올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양털이라고 얕봤는데 한 포대를 남자 넷이서 겨우 들어 올릴 정도로 무거웠다.

  점심은 비가 약간 내리는 가운데 꽁치김치찌개를 먹었다. 우리 운전사 에케메와 프랑스 팀 운전사 보르트가 맵다고 하면서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김치꽁치찌개를 하면 우리가 훨씬 늦게 먹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빨리 먹어서 그런 건지 프랑스 팀이 워낙 느긋한 건지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결국 우리가 먼저 출발하자고 해서 가는데 3시가 되어도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다가 말의 가죽과 뼈가 보였다. 에케메 말로는 말들이 다니다가 차에 치여서 죽은 것 같다고 했다.

  4시쯤 Dalanzadgad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서 먹거리를 샀는데 한국 제품이 많아서 이런 오지까지 한국제품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4시 반에 시내로 들어와서 인터넷 카페에 갔다. 너무 느려서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을 할 동안 밖에 나와 오토코를 업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과장에 갔다가 연 날리는 것도 보고, 동물들, 탈 것 등을 발음하는 법도 배웠다. 소는 구르, 말은 모르, 양은 헌, 오토바이는 모터츠키, 트럭은 뜨락또르라고 했다. 현대 들어 새로 생긴 물건 등의 용어는 대부분이 러시아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2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70여년 간을 사회주의 국가로 지내왔기 때문에 소련의 영향력 아래 위성국가로 지내며 문물을 수용해 온 역사의 파편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차 출발 전에 인터넷 카페 여직원에게 토일렛이라고 물으니 못 알아들어서 몽골회화책자를 찾아보니 저를렁이라고 해서 물어보니 건물 2층에 가면 된단다. 화장실은 깨끗하지만, 역시 남녀 공용이라 드나드는 여자들이 신경 쓰였다. 1층에는 텔레콤 서비스 지점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들르지 못하고 곧장 숙소로 향했다.

  차로 5분 정도 가더니 목욕탕 앞에서 세워주었다. 800투그릭이라는데 우리는 굳이 아직 씻을 필요 없다고 곧장 숙소로 가자고 했다. 게르는 초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쓰는 철판과 나무로 담을 만든 마을에 있었다. 물을 받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기름통 한 드럼에 100투그릭이었다. 숙소에서 저녁이 너무 적게 나와 너구리 라면을 끓여 먹었다 옆 게리의 프랑스 사람들은 화장실 냄새가 많이 난다고 꺼리는 것 같은데, 우리들은 농촌의 화장실 같아서 잘 만 사용한다. 다른 나라에 갔을 때 불편한 것, 문화상 차이점 들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차이점을 느끼며 다니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8시가 넘어 또 비가 내린다. 워낙 비가 적게 오는 나라인데 7월에 연중 강수량의 70%가 내린다고 하니 내일 아이스밸리로 가는 길이 지창길이 되어 차가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날씨도 추워져서 속 옷, 긴 옷, 잠바를 모두 입고 자기로 했다. 늦은 시각 막 자려는데 에케메와 나라가 들어왔다. 아까 우리가 양털 올리는 것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양털을 팔아 남은 돈으로 우리 보드카를 사왔단다. 저녁 먹고 오토코가 계속 수프르마크라고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같이 보드카 고르러 가자는 말이었던 듯 하다. 보드카는 40도나 되어 너무 독해서 주스와 함께 섞어서 마셨다. 에케메도 따로 자기네 보드카를 사온 것 같아서 일부러 부르지 않고 우리끼리 마시려고 했는데 재용이와 형준이가 말 탈 때 쓸린 엉덩이 상처 때문에 나랑 찬수형 둘이서 반병을 나눠 마시고 침대로 돌아갔다. 원래는 저녁 8시부터 전기를 쓸 수 있는데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어 디카 배터리 잔량이 걱정 되었다. 단지 정전이 되어 좋았던 점은 게르의 천장을 통해 밤하늘의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