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여행기 13 여행중 휴식 타임 (1월 16일~17 말라위 릴룽궤)

1월 16일(일)

말라위는 말라위 호수를 중심인 내륙 국가로 좁은 지역이지만 인구가 1,300만이 넘는 국가로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다.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로 대부분의 국민이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에이즈가 창궐하여 전체 인구의 20%는 정도 될 것이라는 추산은 있지만 혼란을 우려해 정부에서 에이즈 검사를 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은 250$ 정도이며 반 정도의 인구가 수명이 43세가 넘지를 못한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있으면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넓은 말라위 호수로 물 걱정은 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 물 역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있어 외국인은 쉽게 수영을 하거나 마시지는 못한다.

말라위의 또 하나의 행복은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전이나 종족 분쟁 같은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독재가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정권 교체를 했다. 최근에 대선이 있었는데 지금 대통령이 93%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만약 서구 열강이 군침을 흘릴만한 자원이 있었다면 간섭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끊임없는 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을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갖는 아이러니한 불행이다. 석유가 많은 나이지리아, 카메룬, 다이아몬드의 시에라리온, 최근 우라늄이 발견된 니제르, 희소 광물이 대규모로 발견 된 콩고는 아직 내전이 진행형이다.

선교사님 댁에는 한국 진주교회에서 온 3명의 단기 선교 젊은이들이 활동하며 기거하고 있다. 해병대를 갓 제대했으며 가까운 미래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형주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한 경험을 살려 이곳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이제 30살이 된 이태희 자매는 나와 친해지자 내 행색이 지저분하다며 이것저것 잔소리다. 아직 이곳의 적응이 안 된 오수정 자매는 말이 없지만 묵묵히 활동을 하고 있다.

계란과 토스트 시리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 선교사님과 청년들과 함께 현지 교회에 지원을 나갔다. 현지 교회에 나가면서 한국에서 말라위 친척집을 방문해 함께 동참하고 싶다는 장한솔 청년을 태웠고, 선교사님이 사역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인 샘을 태웠다. 샘은 선교사님이 대학에서 현지어를 배우다가 만난 청년으로 어떤 일이든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청년이다. 샘은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학교에 스텝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곧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일당은 받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칭찬하신다. 샘은 한국 교회의 지원으로 대학에 가게 되었으며, 2년 뒤 졸업하고 나서 목사가 되어 선교사님과 함께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샘 입장에서는 선교사님을 만난 것이 하늘이 정해 준 기회가 아닐까 싶다.

현지 교회에 가니 목사님이 맞아주신다. 목사님은 공항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는 투잡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의 목사님이 계신다. 사실 목사 활동으로는 교회를 꾸리기가 어려워서 일 것이다. 마을 추장이면서 목회 활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면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님도 계신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앞자리에 좌석이 마련되어 앉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게 되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표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허름한 교회지만 그 안에는 찬송가를 부르는 어른들과 아이들로 완전히 꽉 찼다. 이곳 찬송가는 한사람이 운을 띄우면 모두가 함께 참여하며 흥을 넣는 형식의 찬송가이다. 목사님은 찬송가가 나오면 중간에 리듬을 넣는다. 마치 콘서트 장에 온 느낌이다.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는데 조는 아이들, 떠드는 아이들, 조용히 아이에게 젓을 물리는 아낙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있는 아낙의 대부분은 어리게 보인다. 이곳에서는 15세가 되면 아이를 출산하며 30살이면 손주를 보는 나이이다. 지금 난 이곳에서는 손주 볼 나이?

밖에 많은 비가 내리자 찬송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표정을 보니 기쁨에 찬 표정으로 찬송을 한다. 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들의 진심어린 찬송에 큰 감명을 받았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적으로 열악해 자식들을 잘 먹여 살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며 찬양을 할 수 있을까?

선교사님은 영어로 설교를 하시면 샘이 현지어로 번역을 해 준다. 우리 일행은 특송을 했는데 잠깐 연습한 현지 찬송가를 부르니 사람들이 함께 부르며 즐거워한다. 설교가 끝난 뒤에 헌금하는 시간이 있는데 사람들 대부분이 돈을 내지 못하며 내는 사람도 동전을 낼 뿐이다.

활동이 끝난 뒤에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 보내 온 털모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교회 안의 아이들은 물론 언제 소문이 퍼졌는지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몰려와 질서 유지를 하는데 신경을 썼다. 이렇게 구호활동을 하다가 싸움이 나는 경우도 많다고 하기에 모두가 불만이 없도록 배분을 해야 한다. 아이들 머리에 직접 모자를 씌어주는데 짱구머리라 모자가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교회 활동을 끝내고 선교사님 가족과 함께 피자를 먹은 후 집에서 푹 쉬었다. ‘이곳 말라위에서는 하루에 하나의 일만 해도 감사해요.’ 하루 일정이 타이트하게 짜인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에서는 계획대로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신다

작년에 이곳에서 촬영을 한 연예인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선교사님은 촬영 온 연예인들을 쭉 안내 하셨는데 말라위의 어려운 실상을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며칠에 걸쳐 촬영한 것을 하루에 활동한 것처럼 내 보낸 것과 숙소를 이곳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말라위 호수 주변의 고급리조트에 묵은 것을 보며 씁쓸하셨다고 말 하신다.

1월 17일(월)

월요일이긴 하지만 이곳 국경일이라 선교사님댁에서 푹 쉬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사모님은 맛난 한국 음식을 해 주신다. 그동안 무리한 일정을 진행하느라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덕분에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심리적으로도 큰 안정이 되었다.

선교사님은 이곳에 파송 나온지 2년이 되셨지만 그 동안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교사님 자녀로 10살인 평온이와 9살인 시온이다.

평온이는 3학년에 올라가야 하지만 영어에 적응을 하지 못해 다시 2학년을 다녀야 한다. 동생인 시온이와 같은 학년이 되었는데, 한국 엄마들의 특성상 자녀가 유급이 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에 처음에는 고민하셨지만 미국 선생님이 자기 자식도 적응을 못해 1년 유급하다가 다시 본래 학년으로 돌아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다시 2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씩씩한 시온이는 누나인 평온이보다 큰 위기가 왔었다. 이곳에 정착하고 1년 뒤 시온이에게 말라리아 증상이 있어 말라리아 약을 복용했는데 약 부작용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온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 시온이는 계속 피를 토했으며, 환자이면 비행기 탑승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환자가 아니게 보이느라 온 가족이 고생했다고 하신다. 다행히 현지 봉사활동을 온 의대생이 동행을 했기에 무사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병원에 가니 2~3일만 늦었다면 시온이는 실명을 했을 거라고 의사선생님이 이야기 하셨다. 3개월 정도 한국에서 휴식을 한 다음 다시 말라위로 돌아오셔서 사역을 하신다. 그런 큰 위기는 이들 가족의 말라위 선교 활동 의지를 꺾지 못했다. 사모님에게 시온이에게 맞는 말라리아 약을 찾아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말씀드렸다.

계속 집에만 있었기에 주변 학교에 가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한 다음 저녁에는 삼겹살 파티를 했다. 말라위에서 먹는 삼겹살이란.. 말라위에서는 돼지고기가 없기 때문에 선교사님이 잠비아를 여행하면서 삼겹살을 사 잔뜩 아이스박스에 담아왔다고 하신다. 말라위에서는 세금이 비싸기 때문에 가전제품을 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세금이 100%이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전 제품을 구비하기 위해 1년 반이 걸리셨다.

어제 잠깐 교회에 같이 나간 장한솔 청년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해병대를 제대하고 인생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아프리카로 가서 봉사를 하라는 계시를 받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종교를 떠나서 우리나라 정부는 대외 원조가 경제규모에 비해 열악한 편인데, 부족한 부분을 교회가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없는 말라위에서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활동을 하고 계신다. 일본의 JAICA는 대대적으로 지원을 하던데..

내일은 선교사님이 사역을 하고 계신 곳에서 하루 체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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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교회에 꽉 찬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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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화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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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중인 목사님. 공항 경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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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하고 조그만 건물이래도 사람들의 예배를 하는 자세는 진지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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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교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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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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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옥수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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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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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아이들에게 나눠 줄 털 모자. 더운 지역이지만 자주내리는 비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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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나눠주자 구름같이 몰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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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과 목사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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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받고 저마다 써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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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야릇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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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교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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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자마자 말라위에 온 한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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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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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 된 미션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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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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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축구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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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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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