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목)

킬리만자로산은 킬리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휴화산이다. 아프리카 대지구대 위에 솟구친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는 세 개의 분화구로 구성되어 있다. 5895미터의 키보(Kibo), 5149미터의 마웬지(Mawenzi), 4006미터의 쉬라(Shira). 정상을 향해 가는 동안 풍경은 끝없이 변한다. 열대 우림에서 시작해 황무지를 거쳐 얼음과 빙하의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정상의 아이스 돔은 한때 그 높이가 20미터에 1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크기였으나 지난 100년 사이에 85퍼센트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가 계속 된다면 50년 안에 킬리만자로는 눈이 없는 봉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직접 볼 차례이다. 킬리만자로 등반 성공률은 30%라고 한다. 우리 세명 다 성공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자료 수집을 위해 우리 중에 한명이라도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

오전 8시 30분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바로 북쪽으로 킬리만자로가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본다. 며칠 뒷면 저 곳에 올라가 있겠지?

New Castle 호텔로 가 어제 계약을 체결한 여행사를 찾았다. 기다리고 있던 여사장은 우리를 장비 업체로 데리고 간다. 우리 일행 특히 난 등반을 위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장비를 빌려야 했다. 침낭, 장갑, 윗옷, 아래옷, 폴대, 목토시, 등산화 심지어 웜양말까지.. 장비 업체는 여행사와 계약이 체결 된 상태이기 때문에 필요장비를 모두 빌려도 상관없다. 또한 무게가 얼마나 되든 상관없다. 작은 짐을 제외한 모든 짐은 포터들이 들기 때문에 필요한 건 다 빌려야 한다. 꼼꼼하게 빌렸지만 결국 작은 배낭을 빼먹어 마랑구에서 10,000실링(6$) 주고 빌렸다.

장비를 빌리고 잔금을 치른 후 가이드인 오스왈트와 길버트와 함께 마랑구행 버스를 탔다. 미니버스로 1시간을 간 후 택시로 갈아 타 마랑구에 다다랐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어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1,570$(520$×3명+VISA수수료 10$)를 결재하고 등정을 시작했다.

마랑구 게이트(Marangu Gate 1980미터)에서 만다라 헛(Mandara Huts)까지 향하는 첫날은 짧고 편한 길이다. 울창한 열대 우림을 가로지르는 길로, 숲이 우거져 있고 길도 편하게 나 있다.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포터를 따라 출발했다. 포터는 ‘폴레 폴레’라고 말하며 천천히 걸으라고 요구한다.

킬리만자로는 고산병과의 싸움이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져 산소량이 줄어든다. 때문에 산을 빨리 오르게 되면 몸이 고도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산소 부족으로 두통과 호흡 곤란이 오고 입술이 새파래진다. 또한 설사·구토가 동반되거나 졸음이 몰려온다. 심각하면 폐수종 등으로 사망한다. 때문에 마랑구 게이트엔 ‘고산 적응을 위해 천천히 움직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킬리만자로 등반에 관한 모든 자료에는 서둘지 말고 무조건 천천히 움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1시 40분 만다라로 가는 중간에 점심 식사 지점이 지정되어 있다. 미리 챙겨 준 도시락을 꺼내 소풍 온 기분으로 먹으려고 하는데 까만 새들이 주변을 서성인다. 그 중 한 마리가 우리에게 접근하더니 닭다리를 물고 달아난다. 너무도 당연하게 다가와 미처 막지를 못했다. 할 수 없이 닭다리를 나눠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옆에 두었던 카메라나 캠코더를 가져갔다면 크게 낭패를 봤을 것이다.

우리 뒤에 올라 온 중국팀도 ‘꺅~’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 새들에게 당한 모양.~ 아무래도 상습범인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2시에 다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있어 가이드가 올라가면서 알려주었다. 볼화이어 꽃과 고사리도 보인다. 나무를 감싸 고사 시키는 연두색 기생 식물이 많이 있는데 현재 킬리만자로의 식물군에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한다.

오후 3시 30분 만다라 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2720m로 오늘 1,000m정도를 올라왔다. 도착하자마자 방갈로(Hut)를 배정 받았는데 작은 오두막에 4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린 세 명이라 방갈로 하나를 통째로 배정받았다. 도착하면 포터가 티타임을 준비하는데 커피, 코코아, 차, 우유등 기호대로 음료를 즐길 수 있다.

티타임 후 재용이는 피곤해서 방갈로에서 쉬고 나와 상걸이는 만다라 산장 부근의 Maundi 분화구를 둘러보았다. 분화구에서는 광활한 사바나 지역이 보이는데 케냐 지역이라고 한다. 날씨만 좋으면 킬리만자로 정상을 분화구에서 볼 수 있는데 못 봐서 아쉽다.

산장마다 식사를 하는 건물이 있는데 포터가 먼저 도착하면 테이블보로 자리를 맡는다. 장으로 돌아오니 저녁 식사로 빵과 스프를 준다. 좀 부실하다고 생각하고 얼른 먹고 자리를 뜨려는데 오스왈트가 아직 본 식사가 안 나왔다고 한다. 본 식사는 돼지고기, 감자, 아보카도 샐러드가 나왔는데 양이 많다. 고도가 높아지면 식욕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모처럼 포식을 했다.

식사 후 할 것은.. 오로지 잠..?

전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활동을 하기에는 약한 전기이다. 내일 본격적인 등반을 위해 일찍 자기로 했다.

이렇게 오후 7시 반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1월 20일(금)

새벽에 깨어 방갈로 밖으로 나가니 짙은 어둠의 장막이 펼쳐져 있다. 대신 하늘 위는 별천지이다. 올라가면 더 잘 보이겠지?

아침에 포터가 가져다주는 따뜻한 물로 세면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다. 아직까지는 고산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옆 방갈로의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벽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포터가 실수로 바깥문을 잠갔다.

식빵과 계란, 소세지로 아침식사를 한 후 곧장 호롬보 산장(Horombo Huts)으로 출발했다.

가이드인 오스왈드와 길버트는 앞장서서 우리를 리드했는데 답답하리만치 천천히 걷는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터.. 가이드의 리드대로 산을 탔다.

나무는 점점 작아지고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경사도 조금씩 급해진다. 다행히 구름이 깔려 있어서 햇빛을 받지 않고 산을 탈 수 있었다. 그만큼 물 소비가 덜 했다. 오스왈드가 무언가를 따서 주는데 산딸기이다. 이곳 산딸기는 색깔이 주황색인데 맛은 우리 산딸기와 같다. 선인장과 비슷한 모양의 시네시오나 로벨리아가 듬성듬성 솟아있는데 킬리만자로에서만 나는 식물이라고 한다.

점심 식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도시락이다. 닭다리, 계란, 과장, 바나나, 오렌지 등인데 어제 닭다리를 강탈 했던 새들과 같은 종류의 새가 우리 주변을 서성인다. 재용이가 돌을 던지자 저 멀리 날아간다. 두 번 당할 순 없지.^^

오후 2시 40분 두 번째 베이스캠프인 호롬보 산장(Horombo Huts)에 도착했다. 이곳은 3,720m로 이미 백두산보다 1,000m 위인 지점이다. 킬리만자로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정상에서 내려 온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하루 머물기 때문에 킬리만자로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숙소를 배정 받으려고 하는데 한국분과 마주쳤다. 나이로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정종선 참사관님의 사모님 일행이다. 일행 중에 김응수 나이로비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 계시는데 킬리만자로에 네 번째로 오셨다고 한다.

방갈로에 짐을 풀고 있는데 서양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신다. 매우 지친 표정으로 오늘 킬리만자로 정상 도전을 했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신다. 코가 심하게 빨간 걸 보니 고생을 많이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성공했는지 묻는 건 실례라고 생각되어 묻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식사 후 바로 골아 떨어지셔서 다음날 아침까지 깨지 않으셨다. 그만큼 킬리만자로가 힘듦을 반증한다.

식사를 하면서 김응수 교장선생님의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다. 공군에서 재직하시나 대령으로 전역하시고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시고 나이로비로 오셨다. 나이로비에 한글 학교를 세워 민간단체로는 처음 세종 학당 인가를 받아 케냐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계신다. 백방으로 뛰어다니셔서 케냐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시고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계신다. 나이로비로 돌아오면 꼭 한글학교를 들리라고 하시면서 치즈와 초코바를 주셨다.

재용이가 머리가 약간 머한 것 빼고는 아직 고산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은 킬리만자로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험난한 하루가 예정되어 있다. 킬리만자로 등반의 성공과 실패가 내일 달려있기에 오늘 역사 고소 적응을 하며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