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4의 뒤죽박죽 몽골 여행기 9 다시 초원으로 (Arvaikheer 7.31)

7월 31일(월)

7월의 마지막 날이다. 돌이켜보면 2002년부터 지금까지 7월의 마지막 날은 항상 외국에서 보냈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변비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만나기 싫은 것이 바로 변비이다.

며칠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아 혼자서 끙끙 앓았었는데 쑥 나온 대변과 함께 내 마음의 짐도 확 날아갔다.

게르에서 제공한 밀가루 스틱을 대충 입에 집어넣고 오전 9시 20분쯤 출발했다. 오늘 도착 예정인 Arvaikheer(아르바이키르)까지는 320Km가 넘기 때문에 오랜 자동차 여행이 될 것이다. 오전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내몸을 감싼다.

오전 10시 10분쯤 갑자기 차가 멈춘다. 이곳에서 멈추면 골치 아파지는데? 에케메는 차에서 내려 뛰어나간다.

우리차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저 멀리 고장 난 차가 후래쉬를 이용해서 구조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차 몇 대가 멈춰서 고장 난 차량을 도와준다. 몽골인들의 따뜻한 인정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체 되 11시에 다시 출발을 해서 북쪽으로 향했다. 더위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은 이제 쓰기도 지겨울 정도이다.(그렇지만 정말 고생했다.)

형준이가 사막 기후에 적응이 안 되서 그런지 며칠째 설사를 한다. 걱정이 되지만 본인은 별 것 아니라며 웃는다.

오후 1시 반 우물가에 멈춰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라면.. 라면 물을 끓이고 있는데 어린 3남매가 수레에 물통을 싣고 우물로 다가온다. 오토코(에케메 아들)가 줄을 우물에 빠트려 물을 뜰 수 없었지만 3남매 중에 큰애가 주변의 철사를 이용해서 줄을 꺼낸다.

물을 뜨러온 3남매는 외국인이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 3남매가 순수해보이기도 했지만 애처롭기도 하다.

상걸이와 재용이는 물을 뜨는 것을 도와주고 난 막대 사탕을 가져와 6개씩 나눠줬다. 3남매는 고마워하며 사탕을 쭉쭉빤다.

라면이 다 되고 점심식사를 할 때 에케메와 나라가 포크를 들고 라면 주위로 온다.

사실 나는 며칠 전부터 에케메와 나라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처음 여행을 떠날 때 운전사의 식사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가족을 동행하는 것을 받아준 것도 같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이 그렇게 딱딱하지 않지 않은가.. 따뜻한 식사를 하는 우리에 비해 빵으로만 떼우는 에케메 가족에게 하나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제 에케메 가족은 우리가 하는 식사에 허락 없이 끼어들고 우리가 사 놓은 햄과 과자를 허락 없이 집어먹는다.

또한 아직 어린 오토코를 돌보지 않아 착한 상걸이가 돌볼 때가 있는데 마치 에케메 가족 여행에 우리가 동원 된 느낌이다. 대장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완전히 주객전도이다.

음식 몇 푼으로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쪼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에케메는 우리가 고용을 했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우리의 여행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형준이가 오토코를 보라고 한다. 오토코가 라면을 먹으면서 멸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마치 자랑을 하듯이 3형제 앞에서 라면을 먹는다.

어른들이 계속 오냐오냐 하니까 완전 버릇이 나빠졌구나.. 난 라면을 뺏고 혼내주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오늘 목적지에 도착하면 4명이서 회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라면을 다 먹고 다시 북쪽으로 출발했다. 3형제는 우리가 떠날 때 안녕하며 손짓을 하며 아쉬워한다. 꼭 커서 성공했으면 한다.

북쪽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풀의 길이가 길어지고 사막지형이 사라진다. 걱정했던 형준이도 사막지역을 벗어나니 얼굴에 생기가 돋는다.

오후 5시에 Guchin-Us(구친어스)에 도착했다. 가게에 들려서 시원한 음료수(700투그릭)를 사서 들이키니 살 것 같다.

차에 오르니 뒤에 형준이가 웃는다. 이유를 물으니 청바지 엉덩이 부근이 완전히 떨어져서 엉덩이가 허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동안 3번의 여행을 같이 했는데 이제 이별을 해야 할 것 같다. 내일부터는 반바지를 입어야겠다.

아침에 출발해서 거의 10시간만인 오후 7시에 Arvaikheer(아르바이키르)에 도착했다. 인구는 22,000명으로 울란바토르를 떠난 후 우리가 만난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이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샤워를 하려고 샤워장에 갔다. 원래 요금은 1인당 1100투그릭인데 외국인이라고 2000투그릭을 달랜다. 당연히 뒤돌아섰다.

오늘의 게르(1인당 4000투그릭)에 도착했다. 게르 시설도 괜찮고 무엇보다 전기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노트북에 기록할 수 있었다.

형준이는 남은 햄과 감자와 갖은 양념으로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면서 에케메 가족이 우리 식량을 허락없이 축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식사 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니 디카 액정이 깨져있다. 에그.. 내가 디카를 막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그리도 상걸이와 형준이 디카가 있으니 큰 걱정은 안 된다. 다음에는 조심해서 써야겠다.(노트북 액정이 아니길 정말 다행으로 생각)

김치에 감자조림, 익힌 햄으로 만찬을 준비했다. 식사를 하면서 에케메 가족에 대해 회의를 했다. 통조림을 비롯한 소모품 식량은 배낭에 보관을 하고, 앞으로 점심은 우리 몫만 만들기로 했다. 상걸이에게는 오토코를 돌보는 일이 없도록 당부했다.

그래도 우리 E4는 여행을 하면서 단 한번도 의견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배려를 해가며 잘 여행을 하고 있다. 정말 환상의 여행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찬이 끝나고 노트북에 저장된 영화를 틀었다. 오랜만에 예술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나를 제외한 E4 대원은 잠이 들고 난 새벽 2시 30분인 지금까지 여행기를 적고 있다. 내일 오전에 인터넷 카페에 가서 홈페이지에 여행기를 올려야겠다.

여행기를 실사간으로 작성하는 이유는 단 하나.. 여행을 기분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여행을 하는 지금뿐이기 때문이다.

총 이동거리 - 33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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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지 좀 된 듯한 소머리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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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사막이 또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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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메가 고장난 트럭으로 가는 모습(결국 1시간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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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에 외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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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길러 온 세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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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의 물을 퍼담는 일은 꼬마들이 전담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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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과 한 컷(사탕을 주니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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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맥이 보인다. 아마 20Km 이상 떨어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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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 쌓여 있는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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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풀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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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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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Guchin-Us(구친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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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슈퍼에서 발견한 옷. 한글이기는 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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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축들이 차를 보고 달아난다.(규모가 너무 커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