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수)


 다카르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감비아 반줄로 떠났다. 다카르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굧통편은 Gare Routiere Pompiers에서 출발한다. 버스는 거의 없고 승용차를 합승해서 가는 형태이다.


 어제 학습한대로 숙소에서 23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버스가 Gare Routiere Pompiers까지 직접 가지는 않기 때문에 구글맵 어플을 이용했다. 구글맵은 GPS 기능을 상용하기 때문에 현재 내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미리 맵을 다운 받아놓으면 와이파이가 통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장소를 알 수 있다. 다운 방법은 어플 상에서 지도 확대를 하면 자동으로 다운된다.


 빠른 시간에 출발할 줄 알았지만 문제는 버스.. 과도한 승객을 태운 덕에 작은 턱을 넘지 못한다. 결국 승객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고 나서야 다시 출발했다. 시내 한가운데서 참.. 뭐 여긴 서아프리카이니까.. 버스비는 200CFA로 택시비의 1/10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대형마트가 보인다. 호기심에 대형마트에 들려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니 2,400CFA이다. 아낀 택시비를 상쇄하는 비용이지만 덕분에 아침 겸 점심이 해결되었다.


 Gare Routiere Pompiers는 육교를 통해 들어갔는데 육교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수많은 차량이 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빡빡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가히 서아프리카의 중심 도시답다.


 표지판을 중심으로 차량이 서 있기 때문에 목적지 표지판으로 가서 순서대로 차량에 탑승하면 된다. 출발직전의 차량에 탑승했는데 자리가 너무 안 좋아 다음 차량에 탑승했다. 다카르에서 국경도시인 Karang까지 6,000CFA인데 짐 값까지 7,000CFA를 부른다. 현지인들은 뻔히 6,000CFA로 알고 있는데..


 출발하고 나서 아차 싶은 게 있다. 바로 태양의 방향을 계산하지 않았다. 때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태양빛을 받으며 가야 했다. 덕분에 비타민 D는 풍족하게 생산되었을 것이다.


 다카르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교통체증도 그렇지만 곳곳에서 도로 공사를 한 탓이 크다.


 여행기를 쓰면서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는데, 다카르에서는 1년에 한번 유명한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 바로 다카르랠리이다.


 다카르 랠리는 여느 자동차 경주와는 달리 포장도로를 비롯해 사막, 계곡, 산길, 비포장 도로, 밀림 등을 주로 달린다.


 ‘죽음의 랠리’라 불리는 다카르 랠리는 프랑스의 모험가 티에르 사빈의 ‘실패한 모험’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 중반 모터바이크로 사하라사막 횡단에 나섰다가 길을 잃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는 오히려 극한 상황을 넘나드는 모험의 매력에 빠져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는 자동차 경주를 계획한다. 그는 결국 1979년 파리를 출발해 알제리, 니제르, 말리를 거쳐 세네갈 다카르에 도착하는 ‘파리 오아시스 다카르’ 랠리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2008년 아프리카의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개막 하루를 앞두고 대회가 취소되었으며 이후 2009년 대회부터는 남미의 아타카마사막을 거치는 코스로 변경하였다.


 다카르 랠리의 고성능 차량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달리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한다는 비난을 많이 받아왔다. 그동안 다카르랠리에서 창시자인 티에르 사빈을 비롯해 60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모든 출전 차량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위성합법장치(GPS)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운전자 옆 좌석에 동승하는 항법사(코드라이버)는 GPS를 수시로 참조, 운전자에게 차량 진행방향을 알려준다. 자동차, 트럭, 모터사이클 등 세 개 부문으로 대회가 치러지며 자동차 부문은 차량 개조 허용 정도에 따라 다시 T1(개조 금지)/T2(부분 개조)/T3(완전 개조) 등 세 부문으로 나뉜다. 코스 폭이 10㎞를 넘는 데다 험난한 코스 때문에 완주율도 낮아 매년 출전 차량의 평균 완주율은 30∼50%대에 머물고 있다.


 올해 다카르랠리 장소를 찾아보니 역시 남미에서 열린다. 세네갈로서는 매년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상실한 셈이다. 그나마 대회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차량이 다카르를 벗어나서 속력을 내나 싶더니 이내 도로 사정이 악화되어 느리게 진행을 한다. 결국 오후 5시가 되어서야 Karang에 도착했다.


 옆 좌석의 청년과 친해졌는데 그는 감비아인으로 이름이 다니엘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를 믿고 있다. 다니엘과 함께 세네갈 국경을 금새 통과하고 감비아 국경에 들어서니 이민국 직원이 한국인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비자피 1000달라시(감비아 화폐)라고 한다. 달러로 낼 수 없는지 물으니 40$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론니에 1$에 30.8달라시로 되어 있는데 40$면 1200달라시이다. 200을 손해보느리 밖에서 환전을 하려고 하자 이민국 직원이 화를 낸다. 일단 충돌하고 싶지 않아 40$를 주었다. 이민국 직원은 환한 얼굴로 즉시 일을 처리해 준다.


 입국 작업을 끝내고 환전상에서 50$를 환전하니 1,950달라시를 준다. 뭐지? 1,500달라시 아닌가? 확인해 보니 감비아에서 환율이 폭등해서 1$에 40까지 올랐다고 한다. 결국 이민국 직원에게 600달라시는 더 준 셈.. 일단 국경 하나를 더 통과했다는데 의의를 두지만 혹시 감비아를 육로 통과하시는 분은 꼭 1,000달라시를 준비하길 바란다.


 국경에서 Barra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Barra에서 감비아 수도 반줄까지는 페리를 타고 건너야 하는데 우리가 도착하니 마지막 페리가 떠났다고 한다. 이제 6시.. 밤 10시까지 페리가 뜨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트를 타고 갈 수도 있어 뛰어가서 보트를 타려고 하니 마지막 보트가 막 떠났다. 배를 놓치고 나서 감비아 하구의 석양을 보니 아름다운 모습이다. 강을 배경으로 일몰을 보다니..


 잠시 일몰을 감상하고 다시 현실로.. 할 수 없이 Barra에서 하루 머물러야 한다. 선착장 근처에는 Barra Motel이 있는데 다니엘과 둘이서 400달라시에 방을 잡았다. 1인당 200달라시(6,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이지만 방은 그야말로 열악하다. 뭐 여기서 방을 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반줄로 건너가서 숙소를 찾아 헤매는 것 보다는 여기서 눈을 붙이고 내일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건너 시에라리온 대사관에 가는 게 더 수월하다.


 다니엘과 페리터미널 2층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저렴하고 먹을만 했다. 다니엘은 세네갈의 남아공 대사관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한다. 감비아에는 남아공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갔다 왔고 비자가 나오는 다음주에 다시 가야 된다고 한다. 남아공에서는 1달 정도 있을 거라고 한다. 다니엘 덕분에 수월하게 이곳가지 와서 고마운 마음에 저녁 식사비를 내니 무척 고마워한다.


 열악하고 청결하지 않은 숙소이기에 빈대와 이에 대비를 해야 한다. 자는 도중에 몸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긴팔을 입고 긴바지를 입고, 긴바지는 양말로 둘렀고, 담요로는 팔부분과 배 부분을 둘러 빈틈이 없게 하였다. 그동안 여행 경험으로 빈대에 물리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한 조치이다. 다음날 아침 확인 결과 빈대에 물리지 않는 쾌거를 달성했다.^^



1월 16일(목)


 창고와 같은 열악한 현지인 숙소를 이용하면서도 푹 잠든 나도 참 대단하다고 자부한 아침이다. 오히려 다니엘이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 모양이다.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다니엘을 깨웠다. 오전 7시 배를 타기 위해 짐을 챙겼다.

어제 선착장에서 다니엘의 교회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를 깨우고 함께 선착장에 갔다. 열대지역임에도 해는 늦게 떠 아직 어두운 새벽이다. 배 티켓(15달라시)를 다니엘이 끊어주고 배에 탑승했다. 배에는 어제 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 출근하는 양복을 입은 청년들 등 많은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다.


 아침 첫배를 타는 덕분에 특별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바로 강위에서의 일출.. 감비아 강을 배경으로 해가 뜨는데 그 모습이 환상적이다. 마치 세상을 서서히 밝히듯이 강위에서 해가 떠오른다. 배는 40분 정도를 이동해서 반줄에 도착했다. 잠시간의 평화로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여정의 시작되었다. 다니엘과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오늘의 미션은 시에라리온 비자를 받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에라리온 비자가 가장 불안했는데 오늘 해결이 되면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선착장 근처의 시에라리온 대사관에 가니 경비원이 오전 10시 이후에 오라고 한다. 1시간 반 정도 남았기에 시장과 해변을 둘러보았다.


 감비아는 감비아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네갈 속에 쏙 들어 있는 형태의 작은 나라다. 그 이유는 주변은 프랑스 식민지였지만 감비아강은 영국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1455년 포르투갈인 발견하였으며, 1588년부터 영국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17세기 후반부터 1780년대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감비아 쟁탈전을 벌여 1783년 이래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시에라리온과 일괄적으로 통치되었다. 1889년 프랑스와의 협정으로 세네갈과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1965년 2월 18일 영국연방 내의 독립국이 되었다.


 1980년대 세네갈과 통합을 해 세네감비아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도 했지만 1989년 양측의 합의하에 다시 독립을 한다. 1994년 7월 중위 야햐 A.J.J.자메(Yahya A.J.J.Jammeh)가 무혈쿠데타에 성공하면서 지금까지 감비아를 통치하고 있다.


 Albert market를 둘러보니 많은 수산물과 생필품을 팔고 있다. 마켓에서 벗어나니 대서양 해변이 쫙 펼쳐진다.


 시내와 해변을 둘러보고 대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밥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얼마 만에 보는 쌀인지.. 얼른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25달라시)


 시에라리온 대사관은 서양 할아버지 한분과 들어갔는데 할아버지 이름은 폴이고 폴란드인이며 은퇴 이후 전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비자 정보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알려주신다.


 할아버지는 어제 기니비사우 비자와 세네갈 비자를 받았다고 하신다. 둘 다 금방 비자가 나오며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하다고 하신다. 기니비사우 대사관은 론니플래닛에 표기 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이야기 해주신다. 근처에 있는 기니 대사관은 비자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자신도 오늘 시에라리온 비자를 받으면 성공이라면서 받을 수 있는지가 확실치 않다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어제 택시를 타고 다니시면서 얻은 정보들을 고스란히 알려주셔서 나는 물론 이 여행기를 보는 서아프리카 여행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시에라리온 영사는 내 여권을 보더니 어떻게 시에라리온에 들어 갈 것인지 묻는다. 입출국 항공권을 보여주면서 기니에서 육로로 들어가서 라이베리아로 빠질거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안 되는 건가?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다소 비싼 100유로(100$로 알고 있는데..)를 지불하고 오후 1시에 비자를 발급받았다. 다른 곳에서는 2~5일 정도 대기해야 하는데 여기는 3시간 만에 발급받았다. 그만큼 시간을 번 셈이다. 폴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은지 자신아 묵고 있는 리조트에 지불을 이미 했으니 함께 묵자고 한다. 좋은 시설이긴 하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내친김에 기니비사우 비자도 받기로 했다. 반줄에서 15Km 정도 떨어진 Westfield까지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이슬람을 믿으라며 계속해서 설교를 한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받아줬지만 계속되는 설교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미니버스에서 내릴 때쯤 되니까 내 버스요금(10달라시)도 내준다.


 시내 중심인 Westfield에서 기니비사우 대사관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고 그저 택시를 타라고만 한다. 세네갈 대사관이 있는 북쪽으로 걷다가 여행사가 보이기에 들어가 대사관을 물어보니 최근 대사관이 옮겨졌으며 Kololi 지역의 Palma Rima 호텔 맞은편에 기니비사우 대사관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택시를 잡아(100달라시) 타고 Palma Rima 호텔쪽으로 가니 기사는 대사관 앞까지 태워줬다.


 대사관에 들어가 비자를 신청하려고 하니 2500달라시를 내라고 한다. 근처에 환전 할 곳을 묻자 친절하게 환전 가능한 장소를 알려준다. 환전소에서 환율을 확인하니 1$에 39달라시이다. 작년에 나온 론니에는 1달러당 30.8인데.. 그만큼 경제 사정이 안 좋다는 반증이리라.


 환전을 하고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하니 다른 서류는 일체 받지 않고 “빨리 비자를 받으려면 3000달라시를 내야해.”라고 말한다. 이건 협상이 가능할 듯^^ 돈이 부족하니 2500에 해 줄 수 없는지 물으니 영사는 1시간 뒤에 오라고 한다. 비자 가격을 협상하다니 참..


 더운 날씨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갈증이 심하게 났다. 부근의 해변에 가서 맥주로 갈증을 달랬다. 해변의 레스토랑은 낮 시간에는 맥주를 싼 값(25~35달라시)에 마실 수 있다. 그만큼 관광객이 없어서 그렇다.


 1시간 뒤 대사관에 가자 비자가 나와 있었다. 다소 친해진 직원에게 대사관 영업(?) 시간을 물어보니 월~목 오후 4시까지라고 한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내일 왔으면 못 받았을 것이다. 기니비사우 비자는 세네갈 남쪽의 징겐쇼르(Ziuinchor)에서는 20분 만에 받을 수 있고 30$라는 몇 년 전 정보가 있지만, 금요일에 대사관을 여는지가 확실치 않고 서아프리카 비자 상황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나는 시간이 중요하니까..


 하루에 비자 두 개를 받다니 여행의 큰 짐을 던 기분이다. 아직 기니비자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비사우에서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비사우에는 월요일 전에만 가면 되기에 감비아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폴할아버지와 약속(일방적이지만)한 게 있어서 일단 반줄의 아틀란틱 리조트로 향했다. 기니비사우 대사관 앞에서 Westfield까지 100달라시에 가고 있는데 한 외국인 커플이 같은 택시를 잡고 같은 목적지로 간다. 택시기사는 이왕 이렇게 가는 것 요금을 좀 더 내고 반줄까지 태워주겠다고 해서 150달라시(커플은 200달라시)에 반줄까지 올 수 있었다.


 반줄국립박물관에 들렀다. 국립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참 소박한 규모이다. 관람을 하고 리조트에 가니 폴할아버지는 아직 오지 않으셨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그렇구 정중히 사양하는 쪽지를 남기고 다시 Westfield로 이동.

숙소를 저렴한 Westfield 근처의 Praia Hotel로 잡았다. 하루에 600달라시를 불렀는데 이틀에 1100달라시에 묵기로 했다. 방은 2층이었는데 숙박객은 나밖에 없다.(다음날도..)


 오늘은 두 개 비자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짐을 덜었다. 혹시 비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려면 감비아의 반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반줄의 공항 도착비자가 되는지 여부만 확실하면 이곳에서 세네갈, 기니비사우, 시에라리온 비자를 취득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