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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그래왔지만 오늘은 특히나 빡빡한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인 데티포스(Dettifoss)와 셀포스를 들려야 하고 크라플라(Krafla) 화산군과 흐베리르(Hverir) 화산을 비롯해 미바튼 호수를 둘러보는 것이 목표이다. 첫 번째 목표인 데티포스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170Km거리이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715분에 숙소를 나섰다.

 

 도시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덥혀있고, 시내의 제설차량들은 분주히 제설에 나서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하얀 세상이 우리를 둘러싼다. 평지를 달리거나 고개를 넘던 계속 되는 하얀 세상을 헤쳐나갔다. 운전을 하면서 다운 받은 라디오 방송을(팟캐스트) 듣곤 했는데 차량에 블루투스 기능이 되지 않아 휴대폰 볼륨을 키워 방송을 들었다. 도중에 멋진 경치가 나오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1시간 정도 달리자 바람이 강해지고 눈보라 블리자드가 우리를 덥는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이 더 무섭다. 차를 천천히 움직이기는 했지만 눈이 많이 쌓인 도로에서는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이 이어진다. 미끄러지면 브레이크를 잡지 말고 기어브레이크를 걸면서 침착하게 빠져나왔다. 차량이 진행하지 않고 멈출 경우 바퀴가 빠져나오지 못 할 수도 있어 빨리 달려 미끄러지지 않으면서도 속도가 낮아 바퀴가 눈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고개를 조심스럽게 넘는데 바람에 매우 세지며 순간적으로 화이트아웃 현상이 일어난다. 화이트아웃(white-out)은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없지만 강설로 인해 가시거리가 크게 제한을 받는 상황을 가리킨다. 화이트아웃을 일으킬 수 있는 기상 상황은 눈보라나 집중적인 폭설 등인데 마치 안개가 끼었을 때 전조등을 켜면 전조등의 빛이 눈으로 반사되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인 상황으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북극이나 남극탐험 다큐에서나 보는 화이트 아웃을 이곳에서 경험할 줄이야.

 

 화이트아웃 현상에서도 조심스레 차를 몰았지만 오전 850분경 차는 결국 눈에 고꾸라지고 만다. 순간적으로 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점에 차량이 들어선 것이다.

 

 비상등을 켜고 다시 시동을 거니 바퀴는 헛돌 뿐 움직이지 않는다. 장갑을 끼고 옷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차 밖으로 나가니 매서운 눈바람이 나를 때린다. 바퀴의 눈을 파내 다시 시동을 걸어 움직였지만 차는 꼼짝 않는다. 이러다 여기에 갇히는 것 아니야!

 

 다행히 우리가 왔던 도로 쪽으로 트럭한대가 왔다. 차 주변의 눈을 계속 파는 동안 와이프가 트럭운전사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트럭운전사는 구조요청을 해놨으니 구조차량이 올 거라며 아이슬란드에서는 보통 일어나는 일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게 보통일이라니.. 손 놓고 있을 수 없기에 앞바퀴를 움직이게 눈도 치우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우리가 진행한 도로 반대쪽에서도 트럭이 왔다.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한 뒷 트럭과 달리 앞 트럭 운전사는 우리 차량으로 와 살펴보더니 뒷트럭 운전사와 같은 말을 한다. 고립되기는 했지만 앞뒤로 트럭이 있어 안심이 되었다.

 

 30분을 기다리니 제설차량이 나타난다. 제설차량은 우리 차 주변의 눈을 치운 다음 제설요원은 온몸으로 뛰어들어 바퀴와 차주변의 눈을 제거한다. 내가 치우던 속도와 비교해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 다행히 차량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설차량은 다음 임무를 향해 떠났다. 눈이 많이 쌓인 도로라 천천히 속도를 내 나아가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화이트아웃 현상이 일어났고 차량은 또 눈에 빠졌다. 이거 참 낭패네.. 괜히 아이슬란드로 겨울 여행을 왔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 때는 함께하는 것이 힘이 된다. 앞 트럭 운전사는 차량 주변의 눈을 제거해주며 운전석에 앉아 직접 차량을 눈에서 빠져나오게 조절해 주었다. 눈물 나게 고마운 분이다.

 

 앞트럭 운전사는 오늘은 상황이 매우 나쁘니 운전은 자제하고 가까운 미바튼 호수에 숙소가 많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가깝다고 하지만 미바튼 호수까지는 70km가까이 된다.

 

 뒷트럭 운전사에게 우리를 앞질러 길안내를 해달라고 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눈 쌓인 도로에 트럭이 만들어 놓은 타이어자국 위를 조심스럽게 달렸다.

 

 신혼여행에 와서 눈보라 조난을 당하다니? 신혼여행치고 특별한 경험이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멘탈을 회복하고 여행의 본능을 되찾았다. 다행히 블리자드는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데티포스는 링로드를 기준으로 두 갈래 길이 있다. 폭포 동쪽을 볼 수 있는 864번 도로와 서쪽을 볼 수 있는 862번 도로이다. 링로드에서 864번 도로에 다다르니 35Km 정도를 비포장도로로 가야 한다. 오늘은 상태로는 불가능할 뿐더러 아예 진입 금지가 되어있다.

 

 다시 링로드로 서쪽으로 달려 862번 도로의 갈림길로 갔다. 도로는 있지는 않지만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했다. 아침보다 날씨가 좋아졌기에 고민 끝에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862번도로는 데티포스까지 22Km이며 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눈이 싸여있어 조심스레 운전을 해야 했다. 도중에 눈이 많이 쌓인 지점이 있으면 비교적 덜 쌓인 부근을 찾아 운전을 했다. 3번 정도의 위기가 있었지만 특히 데티포스입구 마지막 3km가 눈이 많아 어려웠다. 이곳은 메인도로가 아니라서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길을 뚫고 나갔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오전 1010분 데티포스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데티포스 입구에는 아무것도 없다. SUV 차량을 타고 온 몇몇 관광객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는 800m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길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무릎까지 싸인 눈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까 차를 꺼내는 과정에서 신발이 흠뻑 젖어 동상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SUV 차량도 오지 못하는 곳을 폴로 차량으로 왔다. 운전 레벨이 상승했다는 미량의 경험치를 갖고 눈물 머금고 차량을 돌렸다. 정상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리는 마음이 참 공감이 간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 낸 타이어 자국을 따라갔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했지만 한번은 미끄러져 도로를 벗어날 뻔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숙소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시 22Km를 돌아와 링로드에서 서쪽으로 30km를 달려 미바튼 호수에 도착했다.

 

 미바튼(Mývatn)은 크라플라(Krafla)화산 근처에 있다. 유기물과 영양염류의 농도가 높은 호수로 수심은 얕은 편이다. 2,300년 전 화산의 용암이 분출하면서 생성되었으며 주변은 용암기둥을 비롯해 온통 화산지대 풍경이다. 아이슬란드어로 미(mý)는 작은 곤충, 바튼(vatn)은 호수를 뜻한다. 여름이면 호수에 엄청난 파리 떼가 들끓는다 하여 미바튼(Mývat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미바튼은 호수뿐 아니라 주변 거주지의 이름이다.

 

 숙소는 호수 동단에 있는 Dimmuborgir Guesthouse로 예약을 했다. 바로 앞으로는 호수가 있으며 화산 지형인 주변 풍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79유로(10만원 정도) 이번 여행을 하면서 두 번째로 비싼 숙소이지만 론니를 살펴보니 여름철에 비해서는 반값이다.

 

 정오에 도착 해 체크인 시간보다 왔지만 직원은 정리가 된 방의 열쇠를 준다. 숙소 안은 따뜻했는데 아침의 사건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나릇나릇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멈추면 안되지! 쉽게 올 수 없는 아이슬란드이기에 시간은 일분일초도 아껴서 잘 활용해야 한다. 다뜻한 라디에이터에 신발을 말리고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숙소 부근의 Hverfell분화구를 등반하기 위해 입구로 이동했다. 그러나 길이 얼음과 눈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보고 이내 차를 돌렸다. 대신 미바트 호수를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호수는 얼음과 물이 조화를 이루지만 나머지 풍경은 하얀 세상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북쪽의 메인 마을인 Reykjahlio의 마트에 들렸다. 마트에는 식료품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비싼 편이다. 호수를 둘러보고 지금도 화산활동을 하고 있는 흐베리르(Hverir) 오늘 하루 제대로 본 유일한 볼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은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와 용암지대 웅덩이가 보이며 마그마로부터 끓어서 발생한 뜨거운 수증기가 보인다. 화산활동의 모습을 뒤로 하고 오후 3시에는 여행 전 준비했던 수영복을 사용할 기회가 왔다.

 

 미바튼 네이처 바스(Myvatn Nature Baths)는 담수온천으로 그 유명한 블루라군보다는 작지만 경치가 좋아 북쪽의 블루라군으로 불린다. 입욕료는 3000kr(17,000원 정도)인데 국제학생증으로 2000Kr로 할인받을 수 있다. 되돌아보니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내는 입장료이자 학생할인 셈이다. 14년 동안 여행하면서 국제학생증을 유용하게 썼는데 이제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기에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밖을 나서니 매서운 추위가 온몸을 휘감는다. 하지만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서는 이내 환희로 바뀐다. 온천에 입욕하는 순간 아침부터의 고생과 차가움은 이미 망각 속으로 빠졌다.

 

 북극의 겨울에서의 야외 수영을 하다니.. 온통 휘감는 추위에도 따뜻함을 주는 온천과 하얀 세상에 수영복을 입는 내 모습.. 이러한 부조화가 특별한 경험과 추억으로 다가온다. 단지 머리를 오래 내밀고 있으면 이내 차가워지기 때문에 자주 잠수를 해야 했다. 와이프는 수영을 전혀 못하고 잠수를 할 줄 몰랐는데 이곳에서 잠수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신혼여행을 와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드디어 신혼여행다운 모습을 처음 찾았다.

 

 온천에는 조용히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과 달리 시끌벅적한 중국 관광객들 종종 보인다. 한국인도 잘 안가는 아이슬란드까지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을 보면서 몇 년 새 차이나머니 파워가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3시간 동안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햅반에 어제 장을 본 음식들로 저녁상을 차렸다.

 

 식사를 하는 도중 중국 청년 둘과 인사를 했는데 그들은 한국라면으로 저녁거리를 한다. 눈은 멈췄지만 날씨는 흐리다. 숙소 주변에는 불빛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에 오늘 같은 날 오로라를 기대해 볼만하다.

 

 외진 숙소임에도 와이파이는 잘 터진다. 구글맵을 이곳은 그린란드 중부와 비슷한 위도이며 아이슬란드 섬 북쪽에 위치해 있어 북극의 바람에 그대로 닿는 곳이다. 이 또한 멋진 추억으로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