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신혼여행


 2002년 여름 티베트로의 첫 여행을 한 이래로 여행을 하면서 항상 품은 의문은 과연 ‘결혼을 해도 지금처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1993년 여행자유화가 실시 된 이래로 2000년대 초반은 배낭여행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인터넷은 여행 관련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정보 교류가 시작되었고, 또한 특별히 분쟁 지역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 거의 모든 오지를 여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모험적인 여행을 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에 대한 무용담으로 팬덤이 형성되기도 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여행으로 날리던 분들의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여행을 중단하게 되거나 아니면 특기를 살려 여행을 생업으로 하게 되면서 대부분이 사라지게 된다.


 이 시기 여행을 하기 시작해 주로 오지여행을 했던 난 의무감 때문인지? 여행의 세계에서 망각되는 것이 싫어서인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해 꾸준히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의 기록이 텍스트 위주의 여행기에서 블로그로 넘어갔음에도 꾸준히 텍스트를 지향하는 나 역시도 결혼은 현실로 다가왔다.


 2015년 2월 14일(토) 결혼을 했고 신부는 나와 동갑으로 역시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이다. 여행으로 이루어진 우리는 결혼 이후에도 꾸준히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기보다는 서로의 결혼 첫 순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 고민하는 한 것이 신혼여행이다. 2014년 11월 신혼 여행지를 고민할 때 우리 둘은 섬의 풀빌라에서 지내는 신혼여행은 아예 고려대상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특별한 신혼여행을 꿈꾸는 우리는 아프리카 잔지바르, 아이슬란드, 남미 중에 고민을 하게 된다.


 2014년 11월 초 에어프랑스와 KLM항공사의 연합인 플라잉블루 마일리지 회원에게 프로모션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다. KLM을 검색하니 결혼 예정 기간에 인천공항에서 아이슬란드 프로모션 가격을 살펴보니 1인당 109만원.. 더 이상 고민 할 것은 없었다. 당장 두 사람의 비행기를 예약했다.


 겨울철 아이슬란드 여행은 날씨와 도로 사정에 있어서 어려운 여행이 예상이 된다. 하지만 그만큼 모험심을 자극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한 모험을 마다하기 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도 신혼여행을..

 


2월 15일(일)


 결혼식 다음날로 서울에서 오페라 운영전을 보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KLM항공부스가 열기 전 셀프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발송하려고 하는데 데스크 건너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JTBC에서 여행을 주제로 인기리에 방영중인 ‘꽃보다 할배’ 멤버들이다. 박근형, 백일섭, 이순재 그리고 이서진 모습을 직접 볼 줄이야.. 이번 방송은 그리스편인데 항공은 에미리츠 항공을 이용을 한다. TV에 출연한다고 직항을 타는 건 아니구나.. 건너편에서 체크인 중인 이순재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드리니 눈인사를 하신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셀프체크인의 효과가 있었는지 빠르게 수속을 밟고 여유 있게 인천공항을 둘러보며 탑승을 준비했다. 16일로 넘어간 00시 55분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을 향해 출발했다.

 


 2월 16일(월)

 비행기는 밤새 이동해 새벽 4시반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1시 20분까지는 시간이 있음으로 잠시 입국을 해서 암스테르담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 전에 확인 할 게 하나 있다. 올해 학교를 옮겨야 해서 평창까지 발령이 난 것까지는 확인을 했는데 평창 어느 학교로의 발령이 아직 나지 않았다. 다행히 스키폴 공항은 쉽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어 발령 학교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평창의 진부초등학교.. 앞으로 내가 근무하게 될 새로운 학교이다.


 오전 6시에 네덜란드 입국을 하는데 이민국 직원의 태도가 까다롭다. 미리 발권 받은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를 표를 보여주며 몇 시간 머물다 간다고 했는데도 돌아가는 리턴 티켓을 보여 달라고 한다. 뭐 이렇게 까다로워..


 이 당시는 몰랐지만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 입출국이 자유로운 쉥겐조약에 가입을 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서 도착하는 비행기는 따로 입국심사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대신 입국 심사를 하는 셈이다. 아마 트랜짓으로 이동했어도 똑같이 입국심사를 했을 것이다.


 스키폴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시내로는 기차(5.1유로)로 20분 정도가 걸린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시내를 나가니 어둠이 깔려있고 한산한 모습이다. 이제 새벽 6시 20분이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로 암스테르(Amster)강에 댐(Dam)을 설치해 정착해서 살았다는데 명칭의 기원이 있다. 유럽 대륙이 항공, 철도, 도로의 요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세공과 항공기 제작, 조선, 기계, 화학, 피복, 음료 등의 공업이 발전된 도시이다. 부채꼴 도시 형태를 갖춘 암스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운하로 둘러싸여 있는 반원형 도시이다. 역에서 벗어나 담락거리를 걸어 담(Dam)광장으로 가니 전쟁위령비가 서 있다. 네덜라드는 1차 세계대전은 중립국으로 피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전화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이에 대한 교훈을 도시 한가운데 기념물을 세워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담광장에서 직진을 하니 문트(Munt)광장의 문트탑(Munttoren)이 보인다. 이 탑은 성벽의 일부로 1490년에 세워졌다. 문트는 주조의 의미로 옛날에 우체국과 화폐공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운하를 건너니 꽃시장이 보였지만 새벽이라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다.


 운하 옆으로는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는데 집들은 모두 옆집과 붙어 있다. 암스테르담 지반이 약해 침하를 방지하기 위해 옆집과 붙인 것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도시가 발달 한 이곳은 각종 세금을 매겼는데 집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서 집을 좁게 지었다는 어린시절 읽은 ‘먼나라 이웃나라’ 설명이 생각난다.


 하이네켄 맥주 박물관을 지나 국립박물관으로 가니 웅장한 건물이 보인다. 선사시대 유물부터 15~19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곳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특이한 것은 건물 중앙으로 터널이 있고 자동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국립박물관을 통과하니 공원이 보이고 암스테르담의 상징이 된 <I-am-sterdam> 문구가 보인다. 암스테르담의 스펠링을 절묘하게 상징화 시켰다. 이걸 보니 Seoul을 IT 강국을 강조한 E-soul로 상징화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안네프랑크 하우스를 향해 암스테르담 운하를 걸었다. 아침이 되자 자전거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네프랑크 하우스에는 몇몇 여행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제 8시 10분인데 9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아 아침식사를 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왜 벌써부터 줄을 서 있지?


 안네프랑크 하우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인 안네프랑스 가족은 나치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집을 개조하여 은신처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안네는 일기장을 키티라고 부르며 은둔 생활의 유일한 친구로 삼는다. 일기장에는 밀실 생활과 일상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안네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 말미에 게슈타포에게 발각이 되 수용소로 끌려가 희생당했으며 유일하게 안네의 아버지만 살아남아 집 안에 버려진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일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비극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실제 안네 가족이 살던 집은 안네하우스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린 시절 안네의 일기가 기억이 나 암스테르담에 들르면 방문 1순위로 정해놓았다.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9시가 넘어 안네프랑크 하우스에 가니 기나긴 줄이 보인다. 모두 안네하우스를 관람하려는 줄로 최소 1시간 반정도를 기다려야 입장 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기에 중앙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1648년에 건축된 왕궁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암스테르담의 마지막 일정. 다시 공항으로 GO~ 암스테르담과의 짧은 만남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돌아 올 때 한번 더 들를 것이다.


 오후 1시 20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은 음료수를 한잔 주는데 메뉴판이 있어 추가로 더 먹을 것은 돈을 받고 구입이 가능하다.


 3시간 정도 북해 건너니 모든 것이 눈으로 덮힌 하얀 세상이 나타났다. 착륙 순간 비행기 차창밖으로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것이 보인다. 여기가 아이슬란드구나..


 아이슬란드는 쉥귄조약 회원국임으로 따로 입국심사를 하지 않고 짐검사만 한다. 짐을 찾기 직전 면세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맥주와 먹을거리를 많이 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섬이라 맥주값이 비싸겠지? 1인당 12캔만 허용이 되기에 총 24캔을 사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


 KLM 항공편을 예약할 때 렌터카도 한꺼번에 예약을 해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 렌터카 인수는 당연히 공항.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버스가 거의 2만원 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항에서 자동차를 인수하는 것이 좋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렌터카 여행을 하기 때문에 렌터카 부스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직원이 1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다고 자동차를 설렁 인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직원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질문하고 계약서 싸인 하다보면 팀당 10~20분이 걸린다. 1시간 정도 지나서야 우리 차례가 왔다.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는데 직원은 우리에게 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에 대한 추가 보험을 요구한다.


 유럽의 렌터카는 자차에 대해서는 보험이 적용되지만 유리와 타이어는 보험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유리와 타이어에 대해서는 따로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10일 동안 160유로를 요구한다. 렌터비가 365유로의 절반 안 되는 정도? 그 보험은 거절했다. 계약을 진행하는 동안 다급한 표정의 사람들이 렌터카 부스로 달려와 공항을 빠져 나가질 못한다고 한다. 바깥에는 눈보라가 치기 때문에 앞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직원이 친절히 설명하느라 시간은 더욱 지체.. 뒤에 선 여행자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절차를 마치고 아이슬란드에서 함께 할 차량을 만나러 갈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차량은 폭스바겐의 폴로이다. 여기서도 폴로를 만나다니.


 폴로는 나와는 인연이 많은 차이다. 아프리카 나미비아를 여행 할 때 처음으로 폴로를 만나 차량의 성능에 감화를 받아 2013년 우리나라에 출시되자마자 폴로를 구입해 지금은 나의 애마가 되어 있다. 여기서도 귀여운 하얀색 폴로를 만나 여행을 하게 되었다. 폭스바겐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기아 차량이 눈에 많이 띈다.


 공항에서 레이캬비크는 50Km 정도인데 차량을 몰자마자 데스크에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러 왔는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워낙 눈보라가 심해서 가시거리가 10m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막막하기는 했지만 침착하게 앞차를 따라가며 공항을 벗어났고 41번 도로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처음 아이슬란드에서 렌터를 하고 광활한 화산 지형을 달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심한 눈보라에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현실. 도로도 눈에 싸여 차선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앞 차의 후방등에 의지하며 천천히 도로를 달렸다. 이마져도 일정한 간격유지를 해야 하는데 앞차와 간격이 가까우면 눈덮힌 길이라 브레이크를 밟으면 미끄려져 부딧칠 위험이 있었고, 멀어지면 눈보라 때문에 앞차를 놓칠 수 있었다.


 눈보라와 사투로 50Km 거리를 1시간 반이 되어서야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내는 온통눈이긴 하지만 의외로 체인을 감은 차량은 없다.


 아이슬란드는 북아메리카와 유럽 사이에 있는 나라로 영국의 북쪽 노르웨이의 서쪽 북극권인 그린란드와 인접해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1천km가까이 떨어져 있는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란드. 국토 면적이 10만 3천㎢로 남한 면적과 비슷하지만 전체 인구는 32만 명 정도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우리나라 전체 면적에 원주시(33만) 인구가 산다고 보면 된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적인 특징은 국토의 79%가 빙하나 호수, 용암지대 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은 한정이 되어 있다.


 브래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아이슬란드는 고대에 지중해 여행자들이 아이슬란드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초기 정착민은 아일랜드의 은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은둔자들은 9세기말에 이교도 노르웨이인들이 도착하자 섬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아이슬란드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영구적인 노르웨이인 정착지는 874년 지금의 레이캬비크 자리에 자영농장을 세웠던 인골푸르 아르나르손과 그의 아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새 정착민의 수는 9세기말이 되면서 증가했고 그들은 대부분 노르웨이 태생이었다. 930년경에 이르러 알싱과 함께 아이슬란드 연방이 형성되었다. 10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으며 알싱은 선교사업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000년에 이르러서는 나라 전체가 그리스도교화되었다. 10세기부터 노르웨이는 아이슬란드를 정복하려 했는데, 13세기에 내분으로 아이슬란드 내전이 일어나자 아이슬란드 귀족들은 노르웨이의 통치(1262∼64)를 받아들였다. 1380년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통합으로 아이슬란드 지배권이 덴마크로 이양되었다. 종교개혁이 있기까지 아이슬란드는 정치적으로 비교적 독립해 있었으나 17세기 중엽부터 덴마크 왕실이 통제권을 강화했다. 또한 이때부터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쇠퇴했고, 독점권을 얻으려는 격렬한 투쟁 때문에 무역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기근과 역병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한편 기후변화 때문에 겨울은 점차 더 매서워졌다.


 19세기에 시귀르드손의 노력을 통해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알싱이 다시 수립되었고 부분적으로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1874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는 아이슬란드에 자체의 헌법을 허용했으나 긴장이 계속되다가 1904년이 되어서야 아이슬란드는 레이캬비크에 자체의 국민정부를 갖게 되었다. 이어서 1918년 연합법에 따라 군주제와 공동의 외교정책에서만 덴마크와 연합하는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1940년대에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한 동안 영국, 그 다음에는 미국 군대가 아이슬란드를 점령하여 전략적인 공군기지로 이용했다. 1944년 알싱은 덴마크와의 모든 공식적 관계를 끊고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이는 국민투표에서 승인되었다. 아이슬란드의 전후 문제는 주로 아이슬란드 해역에서의 어업권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의 잦은 충돌 후 마침내 320km 어업전관수역이 설정되었다. 1980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여성 국가수반(총리와는 구별되는 대통령)이다.


 아이슬란드는 금융업을 매개로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이 되었지만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아이슬란드의 금융위기는 국민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여행 가격을 다운을 시킨 효과가 있었다. 금융위기 전까지는 워낙 고물가에 여행자들이 기피하는 곳이지만 이후로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여행자를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원화 환율 강세와 유가 하락도 여행하기에는 유리해졌다. 2013년도에 이곳을 여행한 여행기를 보면 아이슬란드의 크로나와 원화 환율을 1Kr(크로나)에 10배이고 휘발유는 1L에 2300원이었는데 지금은 1Kr에 8.4로 내려갔으며 휘발유도 1L당 1650원으로 하락했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슬란드의 물가가 비싸다고는 느끼지만 우리나라와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이 아이슬란드 여행의 가장 최적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의 숙소는 Booking.com으로 예약한 Konrads 게스트하우스이다. 레이캬비크의 상징인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부근에 있어 장소도 괜찮고 가격대비 평점도 좋다. 시내는 온통 눈이 싸여 건물들을 분간 할 수 없었지만 구글맵을 통해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바깥과 다른 세상이다. 이곳의 전기와 난방은 지열발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온다. 안락한 숙소에서 여장을 푼 뒤 시내를 잠깐 둘러보았다.


 숙소 근처의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를 돌아보고 바닷가 쪽의 오페라 건물(?)인 새로운 건물을 둘러보았다. 시내는 북극의 마을같이 모든 것이 눈에 쌓여 있지만 사람들은 레스토랑이나 펍에서 일상생활을 향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숙소로 돌아와 도로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슬란드 도로는 vegagerdin.is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확인 할 수 있다. 내일 목적지로 정한 골든서클의 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 과연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우회를 해야 하나? 우회하는 도로 사정도 눈이 덮혀 있어 좋지 못하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는 관광버스가 많이 다니는 구간이라 도로가 다져져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내일 골든서클로 향하기로 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신혼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