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여행기 3 (정겨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스마일리, Laric 05.7.31)

7월 29일(금)

 어제 여행기를 쓰느라 늦게 잔 탓인지 아침 10시가 돼서야 일어났다. 이즈마일리에서 오늘 탐방하게 될 Laric 까지는 버스가 있기는 한데 정확하게 몇 시에 출발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호텔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주면서까지 상세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오후 1시에 버스가 있다고 한다. 시간 관계상 택시를 타야할 것 같기는 한데 그러기는 싫고..

 그냥 Laric는 포기하고 샤치로 갈까?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Laric는 포기할 수 없지..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버스를 찾으려는 순간 바로 옆으로 Laric행 버스가 지나간다.

 급히 세워서 버스를 타고 Laric으로 향했다. 이런 행운이 있을 수가.. 역시 궁하면 통한다.^^

 이즈마일리에서 Laric으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에 3편이 있고, 각각 오전 7시 반, 11시, 오후 1시에 출발한다.

 낯선 동양인이 신기한지 버스안의 사람들은 날 계속 쳐다본다. 그중에 한 젊은이가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다.

 의외인데? 이곳에서 이렇게 유창한 영어를 하는 젊은이가 있다니.. 그 젊은이 이름은 오르칸이고 이즈마일리에 살고 있으며 삼촌과 함께 Laric를 관광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귀찮을 정도로 꼬치꼬치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난 특유의 밝은 미소로 일일이 대답을 해주었다.

 Laric는 이즈마일리에서 30킬로 정도 떨어져 있지만 산악 길을 가야했기에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웅장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산악지대와 흡사한 풍경이다.

오르칸과 이야기를 하면서 Laric에 도착하니 오르칸은 같이 Laric을 다니자고 한다. 나야 현지인과 같이 여행을 해서 나쁠 것은 없지. 덕분에 내가 모르고 지나칠만한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Laric박물관이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 이지만 이곳의 유물과 골동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직원은 유창한 영어로 유물들을 설명해준다. 직원은 입장료는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박물관을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달라고 한다.

 특히 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Laric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웅장한 산에 마른강과 마을이 보이고 저 멀리 반쯤 지어진 다리가 보인다. 다리는 구소련시절 Laric와 북아제르바이잔을 연결하려고 만들었으니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다리 공사 역시 중단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나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집들 사이로 중세풍 골목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특히 마을 곳곳에 약수터가 있어서 어디서든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어쩐지 버스 안에서 오르칸이 빈 페트병 2개를 왜 들고 오는지 궁굼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다음에 도착한 곳은 학교이다. 학교 안에는 박물관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대신 학교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박물관보다는 학교 내부가 더 궁굼했다.

 교실은 책상과 칠판뿐이다. 우리나라처럼 교실 환경정리를 하거나 특별히 꾸미지는 않았다.

 학교 한쪽 벽에는 젊은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1990년 초에 발발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에 참전해서 숨진 이 학교 출신들 사진이라고 한다.

 평화롭기만 할 줄 알았던 이곳 역시 전쟁의 아픔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오르칸과 그의 삼촌은 이곳의 명소인 폭포에 가보자고 한다. 폭포라.. 론니에는 적혀있지 않던데? 뭐 어짜피 일행이 되었으니 한번 가봐야지.. 현지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산길로 들어섰고 40분 동안 산을 올랐다. 배낭을 지고 있는지라 더욱 힘겨운 산행이다.

 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Laric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힘든 와중에서도 사진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겨우 폭포까지 올라가니 이런.. 폭포 높이가 한 3미터 되나.. 내가 사는 속초의 뒷산인 설악산에는 흔한 폭포이다.

 하지만 오르칸과 그의 삼촌에게 팬 서비스 차원에서 대단한 폭포고 정말 아름답다고 하면서 감탄해주었다.(난 훌륭한 연기자^^)

 산을 내려오고 레스토랑에서 오르칸과 그의 삼촌과 함께 식사를 했다. 오늘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져서 내가 사겠다고 했지만 오르칸 삼촌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나이든 사람이 사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문화이네..

 오후 4시 버스를 타고 이즈마일리로 돌아갔다. 원래는 잠깐 Laric을 보고 곧장 샤치로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어제 머물렀던 호텔에 다시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오르칸과 그의 삼촌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것이다. 사실 많이 피곤해서 호텔에 머물고 싶었지만 내가 머물면 행복할거라는 오르칸의 말에 하룻밤을 현지인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오르칸의 집은 넓은 정원도 있고 아늑했다. 특히 오르칸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마침 이즈마일리에는 영어 연극 공연이 있어 오르칸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나 여행을 시작하기직전 공연을 올린지라 관심이 많은 공연이다.

 영어 연극은 미국 정부에서 파견한 봉사단체에서 주관을 했다. 이곳까지 미국정부의 손길이 미치다니.. 연극 수준은 조명, 음향이 미흡해서 그렇지 꽤 수준이 높았다.(그래도 우리학교 연극부 아이들이 더 잘 한다^^)

 다시 오르칸 집으로 와서 가족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많이 궁굼해 한다. 그런데 이 가족은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지?

 해답은 곧 풀렸다. 갑작스럽게 미국인 여인 2명이 나타나더니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에이미와 캐럴은 미국 정부에서 파견 온 봉사요원이다. 그들은 홈스테이를 하면서 아제르바이잔 사람의 생활 방식과 언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마침 홈스테이를 하는 곳이 바로 오르칸네 집이었다.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을 수가.. 어쩐지 영어를 잘하더라.. 에이미는 나와 함께 학교로 가서 자신의 사진을 보자고 한다.

 에이미와 캐럴을 따라 학교로 갔다. 학교 안에는 미국 정부에서 제공한 컴퓨터와 인터넷 시설이 있다. 에이미는 이곳에서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한다.

 캐럴과 함께 에이미의 여행사진을 봤다. 터키와 그루지아 사진이 많았는데 특히 그루지아의 카즈베키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1시간 정도 학교에 있다가 다시 오르칸의 집으로 가니, 마침 식사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만찬인가.. 오르칸의 대가족과 미국인 친구 2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특히 오르칸 아버지는 지금 차린 음식을 먹으면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음식은 거의 다 맛보는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발랄한 에이미는 이곳의 봉사활동과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준다.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미국인을 비롯한 오르칸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르칸과 그의 삼촌은 내일 낚시를 가니 같이 가자고 하고, 에이미와 캐럴은 자신들과 함께 트레킹을 가자고 한다.

 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인기가 있었나.. 하지만 난 다음달 19일에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입장이다.

 오르칸 가족이 한국에 대해 궁굼해 하기에 노트북을 꺼냈다.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니 흥미있게 지켜본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서 오르칸의 이모가 딱 한번 화를 냈다. 바로 아르메니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마음속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르칸의 이모는 흥분을 한게 멋쩍은 듯 미안해한다.

 캐럴과 에이미에게는 여태까지 노트북에 저장된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비록 되지도 않은 영어이지만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노트북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와 함께 새벽 2시까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나 역시 이들의 가족이 되었다.

 며칠 쉬었다 가라는 오르칸 가족들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시간만 더 있었어도..

 에이미는 대화를 하면서 한마디를 한다. ‘네가 이곳에 머무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야. 나 역시 멋진 여행자를 만나서 정말 반가워.’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데 밤이 늦어 모두들 하품을 한다.

 오르칸의 삼촌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침대에서 편하게 잤다.

 만약에 처음 계획대로 잠시 Laric에 머물다 곧바로 떠났으면 오늘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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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ic로 가는 버스.. 낡았지만 현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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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안.. 사람들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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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안에서 나와 오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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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쿠와는 달리 이곳은 산악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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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저멀리 짓다만 다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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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돌보고 있는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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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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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에서 한 할머니가 물건들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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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난만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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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많은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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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칸 삼촌과 박물관 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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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옷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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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인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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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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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안 철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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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곳곳에는 약수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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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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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규모는 작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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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책상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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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메니아와의 내전에서 사망한 이곳 학교 출신 젊은이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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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외국인이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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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주변은 산악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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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양떼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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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목되고 있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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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전경.. 말라 버린 강이 주변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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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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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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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으로 좁다란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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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안내해준 꼬마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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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포앞에서 오르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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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을 산길을 올라서 찾은 폭포이지만 사실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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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는 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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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로 돌아가는 도중 마주친 양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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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오면서 바라본 주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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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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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ric를 떠나가진 먹은 점심..(잘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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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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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마일리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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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위에 길이 아슬아슬하게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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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한 산악 한편에 아담한 집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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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내가 자게 된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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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칸의 공부방..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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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관람하게 된 연극..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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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데우는 기구.. 석탄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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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인터넷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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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에이미와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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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칸 가족과 함께 한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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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실컷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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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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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칸 과족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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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칸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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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노트북에 저장된 내 홈페이지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