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50분. 역시 몽골의 여름밤은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일어나 잠바를 입고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어 디카 배터리를 충전시켰다. 9시에 출발해서 우선 물통에 물을 받으러 갔는데 물 파는 곳도 잠기고 마트도 잠겨 있어서 그냥 가려고 했더니 에케메가 급수차량이 있는 곳을 발견해서 50투그릭 어치 물을 받았다. 우리는 아침에 설거지 한 물도 아껴 쓰고, 얼굴 씻은 물로 발을 씻는 등 물을 최대한 아꼈다. 한국에서 맘대로 쓰던 물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몸소 알게 되었다.




  11시에 ‘National Museum'이란 게르 앞에 도착했다. 아이스 밸리로 가는 입구인데 입장료를 내는 곳이었다. 원래 1인당 30투그릭이었는데 형준이가 학생증을 보여주고, 에케메가 잘 말해줘서 4명이 6000투그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길 양쪽 바위산이 웅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양 무리도 지나가고 칭기즈칸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했을 때 잡아먹었다는 투르바가와 각종 새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의 밀양이라는 곳에도 얼음골이 있는데 그곳은 동굴인데 반해 이곳은 계곡 중간에 햇볕이 안 드는 곳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계곡을 빠져나오니 1시가 되어 있어서 풀밭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설거지 할 물도 아낄 고 시간도 아낄 겸해서 라면 봉지에 라면을 담아 먹고 바로 쓰레기 봉지에 버렸다. 몽골 사람들은 땅을 조상이 물려준 것이라고 해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라면을 먹은 후 수태차도 마셨는데 녹차를 끓이다 우유를 넣고 소금을 쳐서 만든 차이다. 기후가 건조하고 비타민과 염분을 얻기 위해서는 매일 마셔야 한다고 한다.




  밥을 먹고 프랑스 팀과 헤어져 3시간을 달려 Bayanzag라는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했다. 이제는 다른 동물들보다 낙타가 많이 보이고 낮에는 게르 박에 나가면 더위가 느껴지는 게 고비 사막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가 조금 나올 것 같아 미리 저녁거리를 만들어놓고 쉬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와서 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가보니 염소가 누워있었다. 심장이 나와 있었는데 피를 흘리지 않게 몸 밖으로 빼서 비틀어 놓고 곧장 숨통을 끊었다. 게르 안으로 옮겨 분해작업에 들어갔는데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해체작업을 도와주었다. 가죽을 다 벗기고 곧장 창자를 빼냈다. 초식동물이라 그런지 창자가 길었다. 냄새가 심했지만 참고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내장을 빼내고 피를 따로 담은 후 부분부분 조각을 냈다. 오토코 녀석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풍선을 불며 놀고 있다. 피 묻은 손을 씻고 화장실에 갔는데 위에 지붕도 없고 앞문도 없고, 옆과 뒤만 50cm정도 나무판자로 막아놓아서 처음엔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금방 익숙해져서 민망하지 않게 일보는 요령도 터득할 수 있었다.




  게르에서 나오자마자 어떤 할아버지가 불러서 가보니 염소고기를 끓이고 있었다. 간을 내주길래 먹어봤더니 돼지간과 비슷하지만 더 비릿한 맛이 났다. 간을 씹으며 우리 게르로 돌아오자 모두가 정말 잘 먹는다고 놀란다. 잠시 후 나라가 다시 불러서 성대한 저녁 만찬에 초대되었다. 이렇게 염소까지 잡아서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귀한 손님에게만 가능하다는데 그 이유는 같이 칼을 나눠 쓰는 사이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여기가 오토코의 외가 즉, 나라의 부모님 댁인 듯 하다. 그래서 djwip 나라가 목욕탕에도 다녀오고 오늘 아침 화장도 한 것 같다. 우리가 차 빈자리도 내주고, 양털 줍는 것도 도와주고, 오토코와 놀아주고, 먹을 것도 나눠먹으니 에케메도 그냥 돈 내고 여행하는 사람이 아닌 친구처럼, 아니면 시끄럽지만 정이 가는 동생들처럼 여겼나보다. 아무튼 오코토의 친척, 가족들과 한 저녁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양고기라 비린내가 나긴 했지만, 고추장과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한결 나았다. 오아시스의 멋진 저녁노을과 평화로운 모습의 동물들을 보니 다시 한번 이번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각박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왠지 요즘은 내가 시간에 쫓겨 사는 듯했기 때문에 이런 경치가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양고기를 먹을 때 몽골 사람들을 보니 고추장은 잘 못 먹는데, 김치는 매우 좋아했다. 우리도 답례로 보드카와 캔맥주로 대접했다. 여기는 사막이라 근처 가게도 없기 때문에 캔맥주를 주니 아주 좋아했다. 오토코의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코담배도 주었는데 나는 한 번 들이키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 할아버지는 또 우리에게 여러 나라 화폐도 보여줬는데 구경해보니 핀란드 화폐와 미국 달러,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1유로 등이 있었다. 우리도 재요잉가 한국 돈 천원과 뉴질랜드 동전을 선물로 주었다. 저녁을 먹고 오아시스 구경을 갔다. 개미집도 구경하고 돌아와서 점수만큼 팔굽혀펴기를 하는 건강고스톱도 했다.




  밤참으로 부대찌개를 해서 밥 한 공기씩을 먹고 게르 밖으로 나왔다. 땅은 까맣게만 보였지만 하늘의 별들은 내가 살아오며 본 가장 멋진 밤하늘이었다. 하늘을 가로질러 사막 끝까지 이어진 은하수와 별똥별도 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먼 지평선에선 번개가 치면서 번쩍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오아시스에서의 멋진 추억들을 간직하고 침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