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다. 에케메가 다른 차를 타라는 말을 했다며 모두 호가 나 있었다. 혼자 호텔에 남아 지키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근처 전화국에 가서 UB게스타 하우스 김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혼자 영문도 모르고 앉아있는데 에케메가 들어와서 영어와 몽골말을 섞어가며 장황하게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중에 UB게스트하우스 김사장님이 에케메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말해줬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무슨 사태인지 파악이 됐다. 에케메는 이 호텔에서 자지 않고, 원래 모론에서 자려던 게르로 가서 잤단다. 그런데 호텔 종업원이 형준이와 재용이에게 에케메가 울란바타르로 갔다며 다른 차를 타라고 했단다. 그런데 에케메와 연락이 안 되고 일방적으로 기다려야 하니 오해가 생긴 듯 했다. 에케메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인터넷을 하러 갔다. 맨 처음 찬수형이 혼자 할 때는 속도가 빨랐는데 우리 넷이 동시에 접속하니 많이 느려졌다. 뉴스를 보니 동해안은 피서철 인파가 엄청나게 몰렸다는데 사북 친구들은 사람들 피해서 잘 놀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부터 홉스굴에 3박 4일 있을 예정이어서 모론 시내에 있는 슈퍼마켓을 4군데나 돌아다녔다. 슈퍼에서 파는 품목마다 가격이 달라서 장보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계란도 있었지만 개당 180투그릭이라 비싸고 운반할 때 깨질수도 있고, 상하는 문제도 있어서 사지 않았다. 김치도 몽골 김치만 팔아서 홉스굴에서는 김치 없이 지내보기로 했다. 다행히 칠리소스를 구해 고추장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낮 1시가 되어서야 모론 시내를 벗어났는데 오늘 아침 일도 있고 해서 나라가 몽골 음식을 사주었다. 부침개를 반 접어 그 안에 고기를 넣은 음식인데 시장기가 동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우리도 화해의 표시로 사과를 나눠주었다.




  4시까지 곧장 달려 홉스골 최남단에 위치한 하트갈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려는 게르 가격도 5000투그릭이고 너무 더러운데다 호수까지도 너무 멀어서 모두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에케메 차를 타고 좀 더 위쪽으로 가서 살펴보기로 했는데 처음에 간 게르는 호수 바로 앞이긴 하지만 1인당 하루 숙박비가 10000투그릭이라고 해서 나와 버렸다. 더 올라가보려고 했더니 에케메가 북쪽으로는 산을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따로 패트롤비용을 요구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와서 언덕에 있는 게르가 어떠냐고 물어왔다. 처음에는 5000투그릭을 부르다가 우리가 3일 머물 거라고 하자 하루에 1인당 3500투그릭만 받기로 했다. 청년은 19살이고 러시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내려왔단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나중에 물고기도 1마리에 150투그릭이니 필요할 때 말하란다. 청년이 가고 저녁 요기로 샌드위치를 해 먹었다.




  청년이 가고 이번엔 주인아저씨와 딸이 같이 들어왔다. 맨 처음 들어올 때 한국 사람이 델을 입고 놀러오는 줄 알았다. 아저씨는 러시아에서 살다가 울란바타르에 본가가 있고, 홉스골에는 여름에 와서 영업을 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호감이 생겼는지, 아니면 여기가 새로 생긴 게르라 홍보차 그랬는지 딸에게 영어로 통역을 시키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알고 보니 가족들이 거의 러시아 유학을 다녀와서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가족들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새로 짓고 있는 목조건물이었는데 외국인의 시각으로 어떤지 봐달라고 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도 멋있고, 특히, 나는 아담한 테라스가 마음에 들었다. 테라스에 서 있으니 가족들이 의자를 가져다주어서 앉아서 호수경치를 감상하다가 호숫가에 직접 내려가 보기로 했다. 호수는 화이트 레이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했다.




  게르로 돌아가 쉬고 있으니 어떤 청년이 들어와 이번엔 난롯불을 지펴준다. 청년이 나가고 이번엔 주인아주머니가 딸들과 들어와 이불에 모두 커버까지 씌워줬다. 찬수형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보여주었더니 아주머니가 나머지 가족들을 불러서 보게 했다. 맨 처음 우리를 안내해준 청년이 우리 이름을 몽골문자와 키릴 문자로 써 주었다. 부모님 세대에는 키릴문자로만 배웠었는데 요즘은 중, 고등학교에서 몽골문자도 배우는 추세라고 한다. 갑가지 주인 내외가 우리에게 지도를 선물로 줬다. 원래 5달러짜리 지도여서 우리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떠안기듯 주고 가버렸다.




  어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과 함께 아까 목조건물로 갔더니 간이발전기를 돌려 오디오를 틀어주었다. CD로 3,4곡 들었는데 몽골학생이 부른 한국어노래도 있고, 몽골 전통 음악도 있었다. 나와 찬수형은 먼저 나와 게르로 가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 둘이 보드카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한참 있다가 재용이와 형준이도 들어왔다. 그 청년이 여기선 대화할 사람이 없어 심심해한단다. 게르에 촛불을 켜고 얘기를 했는데 이 게르가 있는 곳이 조용하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잘 잡았다고 생각되었다. 원래 블루펄이라는 곳이 유명하긴 하지만 사람들도 많고 시끄럽지만, 여기는 요르크 산에 있는 새로 생긴 게르라 깨끗하고, 관광객도 거의 엇어서 우리들이 쉬고 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자기 전 잠시 게르 문 앞에 서서 달과 호수에 비친 달빛을 봤다. 여기 사람들처럼 깨끗하고 맑은 달빛이었다.